㉘ 탐욕과 집착을 없애는 바수밀다 여인 (2)

 

못다남의 장례식이 끝나서 모두들 집으로 돌아갔지만, 선재 동자와 보리는 자리를 떠날 수가 없었다. 보리가 고열에 시달려서 몸을 움직이지 못하자, 파출소장인 단냐타의 도움으로 장례식장의 구석진 작은 방에 뉘었다. 선재는 보리가 처음 이렇게 앓아 누운 모습을 보고 너무나 놀라서 바수밀다에게 물었다.
“거룩하신 선지식이여! 보살도를 구하러 왔지만 지금은 제 동생인 보리가 너무 아프고 고열이 왜 나는 지 그 까닭을 묻고 싶습니다.”
바수밀다가 아주 부드럽고 고운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이제 열두 살밖에 안된 여자아이가 눈앞에서 어른, 뭇다남이 죽는 것을 보았으니 아마도 큰 충격에 빠졌을 것이야. 내가 아이의 이마를 만져 기도하였으니까 곧 열이 내리게 되면 정신도 차릴게다. 또 너희들은 걱정할 것 없이 늘 문수보살님과 부처님께서 지켜 주시니 걱정할 것 없지 않겠니?”
선재가 고마운 마음에 합장을 하고 큰 절을 올렸다.
단냐타 파출소장도 함께 절을 올리며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저의 친구 못다남의 장례식을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리도 보살펴주시고, 시장 사람들에게 늘 친절을 베풀어 주시니 이 기회에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군요. 우리 동네에서 없어서는 안될 귀하고 귀한 선생님이십니다. 아이가 깨어나면 저희 파출소로 이동 하시지요. 시장 골목이라 좀 시끄럽긴 하지만 그래도 정이 넘치는 곳 아닙니까. 하하하”
바수밀다와 선재가 낮은 목소리로 함께 웃는 사이, 보리가 깨어났다.
“오빠, 너무 무서운 꿈을 꿨어. 할머니가, 엄마가, 갑자기 다 죽어 버렸어. 못다남 아저씨처럼 하하하! 웃다가 갑자기 쓰러지면서 죽었어. 흑흑, 나 이제 어떡해 ? 빨리 집에 가 봐야 될 것 같아. 엉엉엉.”
바수밀다가 가만히 보리의 손을 잡아 그녀의 가슴에 얹고 말했다.
“아가! 가엾은 아가야. 아저씨가 죽는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랐구나. 하기는 처음 본 모습이라 놀랄만도 해.”
선재는 보리가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말에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문수 보살님을 불러야 하나! 저러다 정말 가면 어쩌지?'
바수밀다가 이번에는 선재 동자를 쳐다보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착하고 착한 선재야, 네가 걱정하고 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게야. 아이가 충격을 먹어서 그렇지 곧 바른 정신으로 돌아올 것이다. 나는 탐욕과 집착을 없애는 경계의 삼매를 얻어 많은 중생들에게 욕심과 탐착을 버리도록 하고 있어. 보리도 내 손을 잡았으니 사랑하는 마음에도 많은 욕심을 부리지 않도록 할 것이야. 할머니와 엄마를 너무 사랑하지만 참을 줄도 알아야 하지, 그걸 다른 말로 하면 사랑하는 것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 애욕이라고 한단다. 집착도 마찬가지고... 모든 것을 소유하려고 하지 말고 서로 참고 견디며 사랑을 승화시키는게 제일 탈이 없단다.”
계속 흐느끼며 울고 있던 보리가 바수밀다의 손을 슬그머니 빼며 물었다.
“그럼, 바수밀다 선생님은 보고 싶은 사랑을 어떻게 참고 이겨내시나요?”
아름다운 목소리와 검푸른 머리카락, 매혹적인 눈매를 지닌 바수밀다가 갑자기 어두워진 표정으로 보리와 단냐타, 그리고 선재 동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옛날, 무굴제국에 샤자한이라는 황제가 여러 왕비 중, 뭄타즈 마할 왕비를 제일 사랑했는데, 왕비는 14번째 왕자를 낳다가 그만 죽어 버렸어. 샤자한 황제는 죽은 지 6개월부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무덤을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22년 동안 2만여 명이 넘는 기능공들을 불렀어.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이란, 이집트 등지에서 건축가와 기술자들이 모여 순백의 대리석으로 지었단다. 묘지의 이름은 타지마할로, 왕비의 이름을 본떠서 만들었으며 태양의 각도에 따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색깔이 바뀌지. 뭄타즈 마할은 두 번째 왕비였으나 샤자한은 너무나 사랑하여 전쟁터에도 그녀를 데려갔을 정도였어. 하지만 39세에 요절하고 그녀의 무덤을 짓기 위해 라자스탄에서 수천 톤의 대리석을 옮기기 위해 천여 마리의 코끼리가 동원되었지. 정말 기가 찰 노릇이야.

 

그뿐 아니라 값비싼 보석을 전 세계에서 수입하여 공사하는 바람에 나라는 거의 망하게 되었어. 그때 대리석과 붉은 사암에 갖가지 예쁜 보석들을 세공하여 궁전 내부에 장식하는 전문 기술자 중에 우리 아버지가 계셨지. 아버지는 돈을 많이 준다는 꾐에 빠져 타지마할 궁전에 들어갔었단다. 일을 시작할 때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에 반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하셨어. 신기한 보석들도 너무 많아 마음이 즐거웠대. 우리는 아버지가 갖고 오는 돈에 가족들이 풍요롭게 살 수 있어 좋아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는 횟수가 줄어 들었어. 표정도 너무 어두워지고…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어. 내가 바로 보리 나이쯤 될 때 였다. 어머니는 너무 슬퍼하셨고, 언니와 오빠들도 큰 충격에 빠졌지.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아버지가 돈을 벌어 오지 못한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 슬펐지. 다행히도 아버지는 보석 세공사라 부스러기 보석들을 모아 귀걸이며 브로치나 반지들을 만들어 오셨는데 그걸 어머니는 소중히 간직하고 계셨어. 그게 나중에 살림에 도움이 되었단다. 아버지의 유품에서 한 장의 편지가 나왔는데, 바로 나에게 쓴 편지였어.
‘사랑하는 바수밀다! 내가 가장 예뻐하는 막내딸! 이 편지를 볼 때쯤이면 나는 이 세상에 없을 거야. 아버지는 오랜 시간 동안 대리석에 보석 세공하는 일을 하다 보니 건강이 나빠졌어. 거기다 한밤중에 잠이 안 와 묘지 돔에 앉아 있는데 샤자한 왕이 부하들과 벽 공사를 둘러보다 하는 말을 들었어. 우리 기능공들이 다른 곳에서 똑같이 만들지 못하도록 손목을 잘라버리라는 말을 듣게 되었지. 만약 거부하면 바로 죽여버리라고…. 우리는 비록 무덤이지만 이슬람식 궁전을 우아하게 만들고 있었거든. 그때부터 나는 부처님께 기도했어. 눈을 뜨고 있거나 감고 있을 때도 항상 진언을 외우고 기도를 했어. 나의 손목이 잘려 나가지 않고 그로 인해 목숨을 잃지 않게 해달라고 말이야. 나의 불안한 마음을 없애주고, 나에게서 다가올 재난은 소멸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다행히도 손목이 잘리기 전에 대리석 돌가루를 너무 마셔 폐에 구멍이 났다고 하는구나. 나는 죽어도 손목은 잘리기 싫어. 이 귀한 손으로 너에게 예쁜 보석 반지와 목걸이, 아름다운 왕관을 만들어 시집보내고 싶었는데….’
아버지를 준비도 없이 황망히 보내고 나는 그때 깨달았어, 사랑하는 왕비를 위해 너무 욕심을 부린 샤자한은 바로 탐욕과 집착이 만든 애욕 덩어리라는 것을. 샤자한은 결국 열네 번째 아들의 반란으로 아그라 성에 갇혀서, 맞은편의 타지마할을 하염없이바라라만 보다가 죽게 되었지. 아버지 죽음으로 나는 열심히 그리고 간절히 부처님께 기도했어.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것! 탐욕 집착을 버리게 할 수 있는 힘! 삼매를 달라고 말이야. 시장통 사람들을 제도 하려면 그들이 희로애락에 젖어 정신 못 차릴 때 나를 만나 경계의 삼매에 들어가서 애욕을 버리게 되는 거지.”
그러자 마음이 진정이 된 보리가 눈을 반짝이며 탄성을 지르며 말했다.
“우와아, 애욕은 정말 나쁜 거군요, 그리고 바수밀다 선생님 아버지는 정말 대단하신 분 같아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선재 동자가 아주 조용히 다가와 물어보았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항상 외우시던 진언은 어떤 것인가요?”
바수밀다가 단냐타를 가리키며 환하게 웃었다.
“바로 쟤들 이름이야. -나무 사만타 못다남 아프라티 하타샤 사다남 타냐타 옴, 카 카 카헤 카헤 훔훔, 즈바라 즈바라 프라즈바라 프라즈바라 티싸따 티싸따 씨디리 씨디리 사빠따 사빠따 샨티까 쉬리헤 스바하-”
이에 선재 동자가 손뼉을 딱 쳤다.
“아! 불설 소재 길상 다라니.”
바수밀다가 소리쳤다.
“맞아요! 부처님이 설하시기를 재난은 소멸시키고 길하고 상스러운 일만 생기게 하는 진언!”
선재 동자가 갑자기 보리를 끌어 안으며 말했다.
“어쩐지 추억여행 팀들의 이름이 익숙하다 했더니... 보리야, 우리도 매일 매일 외우자.”

-2022년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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