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일(1941~ 1999)

큰 바위 밑
응달진 곳
한줌도 안되는 흙 위의

외톨이.

어디서 날아왔을까
저 바위 밀어 굴릴 수 있을까

눈감고
수행하는 이

수백 수천 미터
밑에서 재잘대는
물소리 듣고
뿌리 내린다


전율의
발광체.

―〈씨앗〉 전문  (《창작과비평》 1999년 겨울호)

 

“내 유서를 20년쯤 앞당겨 쓸 일은/ 1999년 9월 9일 이전 일이고……”. 1970년에 간행한 첫 시집의 〈간추린 일기〉마지막 구절이다. 시인이 간암 투병 끝에 작고한 건 1999년 9월 7일이니 시참이라고 해야겠다. 수십 년 전에 자신의 죽음을 예고한 이 시는 일종의 절명시다. 한줌도 안되는 흙 위에 터를 잡은 씨앗을 짓누르고 있는 바위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과 민초들의 삶을 향해 하화중생의 삶을 살아온 그의 시대를 가리킨다. 도저한 단독자로서의 위의를 선언하듯 단어 하나로 한 연을 차지한 ‘외톨이’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조차 ‘눈감고 수행하는’ 시인의 자화상이다. 시인은 씨앗이 날아다니다 멈추는 곳이면 어디든 자신의 고향을 삼으리라고 했다. 죽음의 시참을 생명의 시참으로 전환하는데 일생을 받친 씨앗의 외로움이 눈부시다.

-시인ㆍ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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