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태(1948~)

어릴 적엔 떨어지는 감꽃을 셌지
전쟁통엔 죽은 병사들의 머리를 세고
지금은 엄지에 침 발라 돈을 세지
그런데 먼 훗날엔 무엇을 셀까 몰라.
                                                                       -시집 《참깨를 털면서》, 창비, 1977

 

단 네 줄로 한국 근대사를 압축했다. 고통스런 분단의 역사를 암시하는 죽은 병사들 그리고 급속한 금융자본주의로의 진입을 상징하는 돈에 이르기까지 어지간한 도서관 하나의 정보량이 이 짧은 시 한 편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전쟁과 자본의 축 사이에서 통계와 계산 같은 도구적 이성으로 무장된 삶이 행복할 리 없다. 시인은 넌지시 같은 계산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감꽃향이 묻어나는 자신의 성장기를 대척점으로 내세운다. 어떤 주장이나 설득 혹은 계몽이나 깨우침 없이 그저 유년의 고백이 잔잔히 흘러나올 때 우리가 살아야 할 세상은‘감꽃’에 있다는 메시지가 거부감 없이 스며든다. 전쟁과 자본의 셈법을 물리치는 감꽃의 셈법은 연약하지만 개인의 성장통과 근대사의 성장통을 겹치면서‘먼 훗날’의 꿈이 된다.

-시인ㆍ노작홍사용문학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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