⑳ 인정스럽고 예의가 바른 대광왕

 

보리가 엄마를 찾자 선재 동자는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이코! 큰일 났다. 보리가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잘 달래서 53 선지식을 다 찾아뵈어야 하는데…’
그사이 보리는 허둥지둥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계속 엄마를 찾았다. 그러자 무염족왕이 보리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착하고 예쁜 보리야, 가족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내가 잘 보살펴 줄 테니까 선재 동자를 따라서 구도여행1)을 끝마치도록 하여라. 그리고 선재는 더 남쪽으로 내려가 묘광성에 사는 대광왕을 만나도록 하여라. 그는 한없이 인자하고 마음이 넉넉하며 예의도 발라서 그곳 묘광성의 사람들이 진심으로 따르고 존경하는 훌륭한 왕이다.”
그 소리를 듣고 선재 동자는 환희심에 펄쩍펄쩍 뛰면서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의 선지식이 묘광성 안에 있으니 나는 이제 반드시 친히 뵈옵고 모든 보살의 행하는 행을 들을 것이며, 모든 보살의 자유자재하고 청정한 법문을 들을 것이다…."
보리가 엄마 생각에 정신이 없는 사이, 얼른 그녀의 손을 잡고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보리가 딴생각하기 전에 대광왕의 인자한 얼굴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묘광성에 다다르자 대광왕은 온갖 칠보와 금은보화를 잔뜩 쌓아놓고 또 음식도 무진장 쌓아놓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재 동자가 오체2)를 땅에 엎드려 그의 발에 절하고 공경하여 오른쪽으로 한량3)없이 돌고 합장하고 서서 말하였다.
“거룩하신 이여,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며 보살의 도를 닦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제가 들으니 거룩하신 이께서 잘 가르쳐 주신다고 하여, 바라옵건대 저를 위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대광왕이 인자한 얼굴로 잔잔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선남자여, 나는 이 법으로써 왕이 되고, 이 법으로써 가르치고, 이 법으로써 거두어 주고, 이 법으로써 세상을 따라가고, 이 법으로써 중생을 인도한다. 무염족왕은 악행을 거스르고 고통으로 해탈하게 하지만, 나는 반대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달래서 지은 죄업을 깨끗하게 만들고자 한다. 따라서 가진 것이 없어 불쌍하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세상의 따뜻한 인정과 예법을 다 잘 알아서 중생들의 마음을 따라 보시하여 알맞게 나눠 주고 있다.”
그러자 보리가 물었다.
“무얼 어떻게 나눠주나요?”
대광왕이 대답했다.
“대자대비의 법으로써 중생들에게 보시하는 것, 산더미처럼 보시할 물건들을 쌓아놓고 20만 명의 보살들이 길거리에 나란히 서서 필요한 것을 알아서 예의가 바르고 친절하게 나눠주고 있단다.”
“우와 대단하다! 말도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척척 내준다고? 진짜 킹왕짱이네!”
“하하하! 킹왕짱? 그게 무슨 뜻이냐?”
대광왕이 물었지만, 선재 동자도 말뜻을 몰라 얼굴이 빨개졌다.
보리가 자기만 알고 있는 말이라 신이 나서 대답했다.
“그건요, 최고 중에서 최고라는 뜻이에요. 대광왕님이 킹왕짱이라는 소리지요.”
이번에는 대광왕이 활짝 웃었다.
“그렇구나. 근데 최고 중에서 최고는 보시바라밀이지, 육바라밀4) 중에 최고니까….남을 배려하고, 베풀며, 봉사하는 것, 몸과 마음을 다해 남을 이익하게 하고 행복하게 하려는 것, 그것이 내가 목표하는 바이다. 그러면 사람들의 근기5)에 따라 그들 스스로 기도하고 선행을 베풀며 남을 도우려고 행동하게 되지. 저기 저 구물두6) 보살의 행동이 나의 보시바라밀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몸소 실천에 옮기고 있단다. 여든 살이 넘었는데도 아주 씩씩하고 착하게 잘살고 있지.”
보리가 두 손을 짝 펴서 여덟 손가락을 만든 뒤 말했다.
“우와아! 대단하다. 여든 살이나 먹었는데도 등이 굽지 않았네. 우리 할머니보다 더 젊으신 것 같아. 오빠, 빨리 가서 인사드리자.”
구물두 보살은 아이들이 팔랑팔랑 뛰어오자 두 팔을 벌려 껴안듯 반겼다.
“아이고, 어디서 이런 귀엽고 이쁜 애들이 왔노? 대광왕님 친견7)하러 왔나?”
“네에.”
선재 동자가 합장하며 인사하고 물었다.
“할머니는 어디서 오셨어요?”나이가 들었어도 귀티가 있고, 아름다운 얼굴을 한 구물두 보살이 웃자, 보조개가 쏙 들어가서 더욱 예뻐서, 셋은 서로를 바라보며 하하하 웃었다.
“나는 여기서 백리8)가 넘는 곳에서 기도하러 왔지, 여기 대광왕님께서 우리 아이들 어렸을 적에 성문 앞에 서 있기만 해도 필요한 음식과 옷 등 생필품이며 생활비를 다 내어 주셨지. 아이가 자그마치 열 명이나 되었는데 그 많은 아이를 키우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었거든….”
보리가 깜짝 놀라 말했다.
“우와, 많이도 낳았네…. 근데 애들 아빠는 없어요? 왜 할머니가 다 키우셨어요?”

삽화=서연진 화백
삽화=서연진 화백

 

구물두 보살은 보리의 버릇없는 질문에도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많기도 하지…. 근데 우리 나이 때는 다 많이 낳았어. 생기는 대로 낳았으니까…. 어쨌든 할아버지는 병에 걸려 아이들이 다 크기 전에 돌아가셨어. 먹고 살기가 막막했는데…. 대광왕님께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리신거나 마찬가지야.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 일인지 몰라…. 이제는 내가 은혜를 갚을 차례야.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고 감사의 절을 올리고 있단다.”
조용히 보살의 말을 듣고 있던 선재 동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열 명의 자손은 다 어디 있어요?”
“첫째와 셋째까지는 농사를 짓고 있고, 넷째와 다섯째는 국수 만들어 팔고 있고 여섯째 딸과 일곱째 딸은 옷을 만들어 팔고 있지”
“그럼, 여덟째는요? 아홉, 열 번째 아이는….”
구물두 할머니가 대답하지 않고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감았다.
“ ...... 여덟째는….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해서 사원으로 들어갔어, 동자승이 되어 여태도 스님 공부를 하고 있고….”
보리가 숨을 꼴깍 삼키며 되물었다.
“그러면 나머지는요?”
“ ....... 나머지 둘은 열병에 걸려 약도 못 쓴 채 하늘나라로 갔지. 그래서 11월부터 다음 해 이월까지는 히말라야 설산에 올라가 아이들의 극락왕생을 빌고 있어. 못난 어미 때문에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죽은 아이들을 위해 백일동안 매일 백팔배를 올리며 부처님께 돌봐달라고 간절히 기도한단다.”
보리도 갑자기 슬픈 얼굴이 되어 조용히 물어본다.
“그걸 언제까지 하실 거예요?”
“내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해야지... 또 설산을 올라가지 못할 때까지….”
“할머니..... 정말 슬픈 이야기네요. 슬프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보리의 말에 이어 선재 동자가 말했다.
“할머니, 우리도 같이 기도해드릴게요. 근데 할머니도 오래 기도하시려면 건강하셔야 해요. 먼저 간 자식들보다 할머니 건강이 우선이시잖아요.”
“맞아! 하지만 할머니 돌아가시면 누가 할머니를 위해 빌어주나요? 평생 자식 걱정만 하고 사셨는데….”
구물두 할머니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나야…. 부처님도 계시고, 대광왕님도 계시고. 내딸 스님도 계시니 죽어도 행복할 거야…. 다만 첫째와 둘째, 셋째 농사짓는 걸 도와주지 못하고, 넷째와 다섯째 국수 뽑는걸 못 도와주고 두 딸 옷 만들면 실밥이라도 떼줘야 하는데 그걸 못 해줘서 아쉽지….”
보리와 선재 동자가 숙연해져서 고개를 못 들고 있을 때 대광왕이 구물두 보살을 가리키며 말했다.
“보아라! 저것이 진정한 보시바라밀이다. 나보다 남을 배려하고 또 이익됨을 찾으려 아니하고, 줄 수 있는 것을 모두 내어 주는 게 진정한 믿음이고 자비행이지. 아마도 구물두 보은 나중에 공덕의 보배 좌에 앉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 묘광성 사람들은 나의 행을 보고 배워, 중생을 두루 거두고 뛰놀며 마음을 깨끗하게, 하여 모든 업을 소멸시킬 것이다.”
선재 동자는 구물두 보살의 마지막 말이 너무 슬퍼 같이 실밥을 떼어주고 싶은 생각에 눈물이 나왔다.
“그러나 착한 선재여, 나는 무진장한 생필품과 배려로 중생들을 구제하지만, 내가 어떻게 복덕의 큰 산을 측량하고, 그 공덕의 별을 우러르며, 그 서원의 바람 둘레를 관찰하고, 대자비한 구름을 어찌 찬탄하겠는가? 저 남쪽 선주 성, 부동 우바이에게 보살행과 덕을 물어보아라.”
보리와 선재 동자는 구물두 보살과 대광왕에 대한 존경심으로 예를 갖추어 절을 한 뒤, 남쪽으로 향했다. 자신들은 큰 공덕을 짓고, 자비를 베풀면서도 겸손하고 집착과 아상이 없고 다음 선지식의 그 덕행을 칭찬하는 그 모습에 울컥 눈물이 났다.

-한국불교신문 2022년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

【각주】
1) 깨달음을 구하러 가는 여행. 
2) 사람의 온몸, 머리와 팔 다리.
3) 한없이 많은 양. 
4) 보살의 여섯가지 수행덕목으로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반야 바라밀.
5) 참고 견디는 힘.
6) 흰색이나 푸른 꽃이 피는 수련. 산스크리트어로 kumuda(쿠무다).
7) 친히 보러옴.
8) 40 킬로미터 길. 십리는 4 킬로미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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