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우리종단에는 아주 큰 경사가 있었다. 바로 아메리카-유럽교구의 창설과 구미 스님들의 대거 입적이다. 종단 창종 이래 가장 큰 사건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이런 경사는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전통성과 정통성이라는 깊은 뿌리에 근거함이 아니겠는가?그렇다면 태고종은 과연 어떤 종단이며, 그 정체성은 어떤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종도들에게 태고종을 묻거나 이 시대 이 지역의 불특정 다수에게 물었을 때 태고종 하면 과연 무슨 생각이 떠오를지 궁금하다.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백과사전인 브리테니커 인터넷 한국어판에는 다음과 같이 태고종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태고종-대처승(帶妻僧)으로 이루어진 불교의 한 종파. 보우(普愚)를 종조로 하고, 종지는 석가의 자각각타(自覺覺他)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보우의 종풍을 넓혀나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수행방법은 참선(參禪)·염불(念佛)·강경(講經) 등이 있다. 승려신분으로 결혼을 하는 대처제도는 우리나라 불교에는 없었으나, 일제강점기 한용운(韓龍雲)이 불교개혁의 차원에서 일본 불교로부터 이 제도를 수용하여 적극적으로 권장한 이래 대다수의 승려들이 결혼을 했다. 8·15해방 직후 조계종단에는 비구승보다 대처승이 훨씬 많았다. 그런데 불교계에서 일제 잔재의 청산이 중요한 과제가 되었을 때 대처제도도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 비판받기 시작했다. 1954년 5월 이승만 대통령이 사찰에서 대처승은 물러나라는 특별담화를 발표했는데, 이를 계기로 조계종은 비구세력과 대처세력으로 양분되었다. 이후 7~8년간 양파는 분쟁을 거듭하다가, 마침내 법원의 판결에 의해 대처파가 패소하면서 조계종단으로부터 떨어져 나왔다. 이들이 1970년 1월 15일 박대륜(朴大輪)을 종정(宗政)으로 태고종을 정식 선포했으며, 같은 해 5월 8일 불교재산관리법에 따라 단체 및 대표자가 등록함으로써 조계종단으로부터 분리·독립했다. 이제 우리는 내부적 정체성의 확립과 외부적으로 그 정체성을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한국불교전통문화전승관 불사가 내부적으로 안정적 기반을 확립한 불사라면, 아메리카-유럽교구를 설립하고, 초대 종무원장에 종매 스님(불교학 박사, 미국 로욜라대학 교수)을 임명한 일과 중앙금강계단에서 아메리카-유럽교구 사미(니)계 수계식을 거행한 것. 수계 스님들은 미국인인 혜문(Mose Ensley) 혜월(Nile Warner) 혜공(Derek Warner) 스님과 혜중(John Maxwell) 법사, 캐나다인 혜광(Robert Gallop) 스님, 오스트리아인 묘현(Karin Sima) 스님등 외국인 승려 6명. 이들 스님들은 많게는 20년 전 행자교육을 받고 가수계를 받아 현지에서 수행 및 포교활동을 하고 있는 외국인 승려들로서 우리 종단에 입문한 일은 전승관 불사 못지않은, 아니 전승관 불사보다 훨씬 큰 사건이라고 규정지어야 마땅할 것이다.서구의 최고 지식층인 외국인 스님들이 한꺼번에 6명이나 입종을 하고, 아메리카-유럽교구가 일거에 형성되었다는 것은 대서특필 정도가 아닌 것이다.이제 우리 종단의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에 대한 제안을 하고자 한다.첫째, 교학(敎學)의 진작이 제일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우리 종단은 항상 전통성과 정통성을 함께 지닌 종단임을 자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당연히 교학의 진작, 수행풍토의 제고, 대중교화 역할의 증대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당연히 교학적 전문지식이 없이는 어떠한 불교적 수행도 교화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절감해야 할 것이다. 종립교육기관과 종도들이 설립한 교육기관을 연계하여 내실을 다지고, 정보를 교환하여 시대를 선도할 그런 교육시스템으로 성장시켜야 할 것이다. 교학이 받쳐주지 않는 한 우리가 가진 장점은 진정한 장점으로 부각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둘째, 전문적 상담지식의 습득과 대중교화에 있어서의 활용이다. 오늘날 세계적으로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상담학과 심리학이다. 특히 종교인이나 교역자에게는 더욱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 종도들은 어느 종교, 어느 종단보다 이 부분에서 비교우위를 차지하고 있음을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현대적 방법과 접목하지 못하거나 불교학적 전문지식이 뒷받침이 안되는 채 상담만 잘한다면 당연히 ‘점바치’로 전락할 뿐 아니라 무당종단이라는 오해의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음이다.셋째, 전문적 의식(儀式) 수행능력이다. 특히 여법한 불교전통의식은 우리 종단의 전유물처럼 행해졌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 범음범패는 우리 종단의 전유물이 아님이 밝혀졌다. 이제는 발등의 불로 인식되어지고 있음이다. 총무원과 영산재보존회에서는 범음범패 교육의 과정을 통일하고 교육을 이수한 학인들을 대상으로 일정한 인증(認證)절차를 마련해야할 것이다. 무분별한 강습기관도 현재 문제이다. 무자격 강사들의 난립은 자칫 범음범패의 고유성이나 특징을 해체시키고 말살시키는 역할을 하게 될 뿐 아니라 불교문화의 진수를 이어가는 진정한 불제자가 아닌 하나의 ‘재바지’를 양산해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넷째, 사회봉사활동이다. 우리 종단은 대승교화종단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사회적 활동의 증대가 필요하다. 결국은 교학적 전문지식도, 전문적 상담능력도, 여법한 의례의식 집행도 교화하기 위한 전초일 뿐이다. 현재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복지국가는 종교인들의 사회봉사활동, 즉 대승적 교화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일반적 포교와 아울러 특수포교에도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노인복지, 교도소, 군부대, 소년소녀 가장 등 산적한 복전(福田)들이 있다. 그러기 위해서 반드시 교육커리큘럼에 사회복지활동에 대하여 강조해야 할 것이다.백수의 제왕이라고 하는 사자는 외부의 짐승들에게 죽지 않는다. 다만 몸속에서 발생하는 병균에 의하여 죽는 것이다. 불교도, 태고종도 외부의 압박에 의하여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종도들의 의식(意識)이 얼마나 시대를 앞서가고 깨어있느냐에 달린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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