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교들이 있다. 21세기 직전의 세계종교는 인구 57억 중에 81%를 차지하는 약46억 6천만 명이나 되어 다섯 명 중의 넷이 종교인이라는 통계이다. 인구의 비율은 이슬람교, 가톨릭, 힌두교, 개신교, 불교, 정교회 등의 순서이다. 이들 종교 외에도 도교, 유대교, 각 민족의 전통종교, 신종교 등이 전 지구상에 주류적 위치를 차지하거나 비주류의 위상을 가지고 있더라도 중요한 위상과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서 국가와 사회 및 세계의 유지와 변화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물론 이슬람교, 힌두교, 정교회 등이 거의 없거나 미미한 등 종교 인구의 비율은 조금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상황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거의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이렇게 많은 종교들은 지리상의 발견과 교역의 확대시기를 지나 정보화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반드시 접촉을 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것이 갈등의 양상으로 나타나느냐, 대화와 협력 또는 조용한 공존으로 나타나느냐의 차이는 있지만 필수적으로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발전해왔다.종교학의 발전과 함께 19세기 후반에 있었던 종교간 대화의 가능성에 관한 연구의 많은 성과물로 종교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막스뮐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해서 이루어진 ‘시카고 세계 종교의회’에 6천여 명의 전 세계 종교인과 종교학자들이 참여해 기존 종교계의 배타적 편협성과 독단주의를 비판하면서 종교간 대화와 이해의 필요성을 제기했고, 이는 처음에 교단본부나 배타주의자들의 비판을 받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적으로 더욱 확대되었다.1921년에 루돌프 옷토가 주도적으로 결성한 ’종교연맹(Inter-Religious League)‘과 1926년에 창립된 ‘세계신앙협회(World Fellowships of Faith)'가 대표적인 보기이며, 요즘까지 활동하고 있는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와 ‘종교연합선도기구(URI)’는 전 세계적인 재앙이나 전쟁 및 국가, 사회적 어려움이 발생했을 때 구호활동을 하거나 대화를 통해 전쟁의 억지와 평화적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시도하는 등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1987년에는 ‘불교학-기독교학 연구협회’가 결성되었으며, 1993년에는 ‘세계종교대회 백주년 기념대회’가 인도 뱅가로에서 열리기도 하였다. 우리 나라에도 ‘세계종교인평화회의(WCRP)’와 ‘종교연합선도기구(URI)’의 한국지부가 설립되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며, 3.1만세운동과 6.15 선언과 8.15 광복 등을 즈음한 민간차원의 남북 교류에 여러 종교계의 공식, 비공식의 기구와 회원(수행자와 성직자 및 신도)들이 지속적으로 만남과 교류 협력을 추진하고 있다.종교간 대화의 일반적인 유형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조금 무리가 있을 수도 있으나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종교 간의 대화의 유형은 대략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토론식 대화(discursive dialogue),둘째, 인간적(부버식) 대화(human=Buberian dialogue), 셋째, 세속적 대화(secular dialogue),넷째, 영적인 대화(spiritual dialogue)이다. 첫째 토론식 대화는 종교인들이 다른 종교에 대한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만나 서로의 관심사에 관해서 의견을 듣고 토론하는 대화이다. 이는 종교 전문 학자들의 대화가 주류여서 상당한 지식과 상대방 종교를 이해하려는 의지와 인내심이 요구된다. 둘째는 다 종교 사회에서의 개인적 자세 또는 실존적 문제로서 어느 종교를 믿는가는 생각하지 않고 그가 지닌 생각에만 관심을 갖고 하는 대화이다. 셋째는 현실적 필요에 의한 대화로서 스스로나 상대방의 종교적 소신과는 상관없이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것이다. 넷째는 파급효과가 적은 개인적 차원의 대화로서 사찰이나 기도원 또는 명상의 집 등에서 영적인 훈련이나 기도회, 참선 및 명상체험 등을 교류하고 함께하는 것으로서 토론이나 토의 없이 체험 위주의 직관적 방법이 많이 사용된다. 참선, 염불, 템플스테이, 삼보일배 등에 불교인이 아닌 목사나 신부 및 교무 등이 참여하는 것 등이 그런 보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최근 한국 종교사회에 있었던 삼보일배의 경우는 종교간 대화라기보다는 사회적 이슈를 공감하기 위한 퍼포먼스의 경향이 강했지만 자연스럽게 온 국민이 참여하는 종교간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도 하였다.어떤 대화도 마찬가지이지만 종교간의 대화는 특히 더 많은 이해와 인내, 관용의 똘레랑스(tolerance)가 필요한 것이다. 세계종교의 전시장처럼 많은 종교가 있으면서도 큰 싸움 없이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있음을 자랑하는 우리 나라에서도 대선주자와 관련한 종교 갈등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이때에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 바로 이해심이다. 다만, 그 이해심은 바른 견해를 전제로 한 것이며 바른 이해는 진리에 대한 굳센 믿음을 토대로 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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