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은 유구한 역사와 뿌리깊은 고유한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다. 축적된 사료와 문헌적 범례를 갖춘 사례만 해도 5000년에 가깝다. 5000년 우리 민족사에 반영된 문화의 근원과 다양한 양태와 비약적 형질은 참으로 대단하다. 민족의 얼과 생활양태를 응집한 민족문화는 너무나도 다채롭다. 지면을 통해 찬연한 문화 양상을 일일이 언급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대강의 맥락과 흐름의 근간이 될 대의는 언급이 가능하다고 본다.
민족문화의 특질을 언급한다면 인간의 외적인 삶의 조건개선에 집착하지 않는 의연한 품위와 성격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의복을 화려하게 하지 않으며, 음식을 화려하게 하지 않으며, 주거환경을 화려하게 하지 않는 데에 있다. 화려하지 않은 대신에 깊이가 있고 세계가 응근하며 농담이 유현하여 함부로 할 수 없는 진지성을 내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삶의 조건개선에 연연하거나 의식주에 매달리지 않고 수수하게 인간 내면의 신묘한 정신을 가꾸고 탐구해 나가는 삶을 전개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진선미(眞善美)를 향유하고자 함에 그 특질이 있다.

우리 민족은 수묵화의 농담이나 거문고의 농현처럼 번짐이나 울림이 장중한 특질의 문화를 만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민족의 특성을 <은근>과 <끈질김>으로 그 성격을 가름하곤 한다. 사람에게 성격이 있는 것처럼 문화에도 성격이 있다. 우리 고유문화의 성격은 인간의 외적인 조건개선과 인간의 내적인 정신의 승화가 같은 함량으로 녹아 있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삶의 목표를 의식주의 개선이나 삶의 조건 향상에 국한하지 않으면서 세계를 생각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생각하고 정신의 수준을 고양시키려는 노력도 병행해 나가는 문화를 형성했다.

우리의 선인들은 진선미를 추구하고 가치지향적인 삶을 추구하는 동시에 은근하고 끈기 있게 지속적으로 모든 것을 진행했다. 실사구시적 삶을 통해서 <사람 가치의 진수>를 문화에 담아내고자 했다. 뿐만 아니라 지나친 부도 지나친 가간도 멀리하면서 인간 정신의 유현함을 계발하고자 노력했다. 그래서 진경산수화와 판소리 같은 예술품으로 정형화했다.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인간의 외적인 삶의 조건개선과 인간의 내적인 정신승화를 동시에 추구하는 문화라고 할 수 있다.

올바른 삶을 통해서 바른 가치를 축적하려는 자세를 우리 고유문화의 특질로 꼽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의 고유문화를 방치하고 외래문화의 침윤(浸潤)에 속수무책이었다. 생체의 조직에 이물질이 침입하여 무서운 속도로 퍼져 나가듯 외래문화는 엄청난 기세로 고유문화를 짓밟기 시작했다.

삶의 조건개선에 중점을 둔 외래문화는 인간의 내적인 정신승화를 무시해 버리고 외적인 삶의 조건에 우선순위를 두기 시작했다. 형이상적인 가치 지향을 쓸어버리고 물질 우선적이며 형이하적인 조건의 중시로 관점을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반세기 동안에 무섭게 변했다. 정신의 가치와 물질의 가치를 동등하게 여겨왔던 사람들이 이제는 정신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기에 이르렀다. 돈으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부터 황금만능주의를 양 손에 들기 시작했다. 삶의 목표도 바뀌었다.

거대한 아파트를 갖는 것, 좋은 자동차를 갖는 것, 좋은 의복을 입는 것, 좋은 음식을 먹는 것 등으로 삶의 패턴마저 전환되었다.

사전적 의미의 고유문화(固有文化)는 어떠한 국가나 민족만의 독특한 문화를 말한다. 고유문화와 반대되는 문화는 물론 외래문화이다. 영국 프랑스 독일은 서로 서로 고유문화를 주고받으면서 외래문화를 수용하여 고유문화와 외래문화의 격차가 심하지 않다고 들었다.

일본도 역시 화혼양재사상(和魂洋才思想)을 굳게 지키면서 외래문화를 흡수한 덕택으로 고유와 외래의 편중으로부터 벗어난 균형 있는 문화를 가꾸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듣고 있다.

우리도 이제는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 민족의 독특한 문화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본다. 경제력 군사력 정치력도 향상되었으며 그런대로 근대화도 달성했다.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해서, 아니면 전통적 유대와 사회적 관계의 와해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고유문화를 부활시켜야 한다.

우리가 만일 21세기 중기로 넘어가기 이전에 고유문화를 부활시키려는 뜻에 합의를 이루게 된다면 어느 곳의 고유문화를 부활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될 것이다. 과연 어느 곳에 우리 고유문화의 원형이 보존되고 있을까? 우리 모두가 함께 생각해 볼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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