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경 일 (만화대장경연구소 소장)
중국무협영화를 보면 고된 수련을 쌓은 고수들은 전음이라는 무공을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상대방과도 의사소통을 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누구든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으니 바로 휴대폰 덕분이다. 그런데 곧 상용화 될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덕분에 휴대폰을 통해 기존의 방송도 보고들을 수 있게 된다고 하니 이제 무림고수가 우리를 부러워해야 할 판이다. 위성DMB는 지난 5월1일자로 이미 시작되었고 KBS나 MBC, SBS 등의 지상파DMB도 조만간 실시될 예정이니 서비스가 가능한 휴대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방송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듣자니 불교계의 언론매체들도 DMB에 동참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방송을 채울 컨텐츠(contents:내용)다. 라디오방송인 불교방송이 문을 연지 15주년이 되었고 TV방송인 불교TV는 10년이 되었으므로 많은 컨텐츠가 축척되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불교방송과 불교TV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교의 방송, 공영방송, 상업방송 등 수십 개의 방송이 있다. 그러니 무턱대고 방송만 내보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시청자들에게 선택받을 수 있는 컨텐츠로 채워진 방송을 해야 하는 것이다.
또, 휴대폰방송만큼이나 일반화될 인터넷방송을 준비하고 있는 불교단체도 많다고 하는데 이 경우 역시 컨텐츠가 문제가 될 것이다. 포교를 위한 것이므로 컨텐츠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면 할 말 없지만 의무감에서 보고 들어야 하는 방송은 결국에는 ‘나 홀로 방송’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컨텐츠를 만들어야 시청률과 포교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까? 사람들마다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을 것인데 필자는 ‘만화대장경’이야 말로 가장 적합한 컨텐츠라고 생각한다.
만화는 아직도 학생들의 공부를 방해하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고 있지만 만화만 전문으로 가르치는 대학이나 학과가 생겨날 정도로 만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이는 만화나 만화영화 등을 통해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있는 일본의 경우가 언론을 통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기 때문인데 학생들 가운데 만화가지망생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으며 이런 자녀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학부모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대장경의 내용을 만화로 만든다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것은 물론이고 젊은 세대에 대한 포교수단으로서도 훌륭한 역할을 할 것이다. 팔만대장경은 그 자체로도 아주 진귀한 보물이지만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는 말 그대로 ‘검은 것은 글이요 흰 것은 종이’일 뿐이다. 그래서 대장경의 한글화가 추진되어 동국대학교 역경원에서 그 완성물을 내 놓았지만 변해버린 세태 때문인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만화로 된 팔만대장경은 그 독특함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훌륭한 방송컨텐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 방대한 대장경을 만화로 옮기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이 작업은 많은 금전과 긴 시간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불교와 만화를 모두 이해하는 시나리오 작가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그렇지만 젊은 세대에 대한 포교수단이 절실하게 필요한 지금의 상황을 고려하면 마냥 미룰 일만도 아닌 것이다.
그래서 1982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에 입학하여 불교를 공부했으며 1995년 이후 2권의 불교만화를 포함하여 모두 8권의 교양만화원고를 쓴 경험이 있는 필자가 감히 대장정의 첫걸음을 시작했다.
재정적인 부담이야 불보살의 가호로 해결이 되겠지만 불교와 만화에 대한 필자의 식견이 짧은 것이기에 이 대장정의 마지막 걸음을 마칠 수 있을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훌륭한 만화가를 만나는 등의 행운이 따라 만화대장경을 완성하게 된다면 그것은 상당한 수준의 작품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또한 필자는 이번 시나리오 작업을 영어나 중국어, 일본어 등의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도 염두에 두고 진행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불교를 받아들이고 있고 중국 역시 다시 불교가 일어나고 있으므로 이들 나라에는 만화대장경이 좋은 포교자료가 될 것이기 때문이고 이미 국민 대다수가 불교신자인 일본에는 수출을 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만화대장경작업이 가지는 또 하나의 의의는 고사하기 직전인 불교출판계에 활력을 불어넣자는 것이다. 오늘날 불교출판계가 폐업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불자들이 책을 잘 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경영자들이 투자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기획전문가를 영입하고 좋은 필자를 발굴하는 등 지극히 상식적인 일들은 등한시 하고 법보시나 자비출판에만 의지해 같은 표지와 같은 배열을 가진 책들을 수십 년 동안이나 찍어내다가 각 급의 불교학생회가 사라지는 등 수요환경이 변화하자 순식간에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불교출판계를 살리려면 주요독자층이 될 수 있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쉽고 재미있으면서도 불교에 대한 정보와 종교적인 감동을 모두 줄 수 있는 새로운 책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필자는 만화대장경이 충분히 그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