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현 (총무원 사회부장·은평구 열린선원 원장)
우리는 지난 연등축제에서 매우 아름다운 그림을 보았다. 아니 아름다운 그림을 우리 스스로 그렸다. 비단 한국의 불자뿐 아니라 전 세계인이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지구촌의 축제가 된 연등축제가 동대문운동장 야구장과 조계사 앞 우정국로에 이르는 동대문로와 종로 일대에 장관으로 펼쳐졌었다. 그야말로 4대문 안이 부처님 진리의 빛으로 그득하고 그 진리의 빛이 일곱 빛깔 무지개의 프리즘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감격스러운 장면으로 가득했었다.
우정국로의 문화 한마당에는 너와 내가 따로 없는 하나 된 우리의 다양한 축제가 묶어내지 않고도 다발로 엮이는 영산회상의 재현이 이루어졌다. 그 수없이 많은 피부 빛깔의 사람들이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체험해보는 불화 그리기, 참선하기, 전래놀이 놀기, 염주와 연등 만들기 등은 하루만의 맛보기였지만 그야말로 문화체험을 통한 한국과 불교 알기의 지름길이고 바른 길이었다.
동방불교대학 범패과와 불교미술과, 그리고 불교학과와 승가학과의 교수 및 학인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마련한 프로그램은 불교본연의 예술적 감각에 수행과 교화의 문화적 세련미가 곁들여진 이른바 ‘혼 불’이었다. 예년에 다르게 학장스님을 비롯한 교수들과 총학생회를 중심으로 한 각과의 학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총화를 이루었다.
지구촌 가족의 눈과 귀가 모아지는 동대문운동장에서는 법회장으로 들어서던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소속 26개 종단의 어른스님들이 발걸음을 옮기다가 모두들 한꺼번에 ‘아!’하는 탄성을 질렀다. 본부석 오른 쪽 위 끄트머리에 자리한 태고종의 좌석을 살펴보던 어른 스님들과 재가 지도자들이 500여 좌석을 가득 메운 채 부처님 오심을 경축하고 즐거워하는 메스게임을 따라하는 스님들의 붉은 물결을 보고 본인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려보낸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홍련화가 초여름의 바람을 맞아 일렁이는 듯도 하고 지리산 뱀사골의 진달래들이 스님들을 맞아 웃음꽃을 피우는 듯도 하였다. 화려하기도 하였지만 그 많은 스님들이 어디서 왔느냐고들 부러움의 찬사가 쏟아졌다.
전통 홍가사를 여법하게 수한 스님들의 일사불란한 몸가짐은 저녁에 가진 제등행진에서도 여실히 보여졌다. 종로 거리를 가득 수놓은 홍가사의 물결은 불교 라디오방송과 텔레비전 그리고 인터넷 방송을 통해 그대로 전 세계로 송출되었다. 조계종을 비롯한 그 어느 종단에서도 연출하지 못한 장관을 보여준 스님들의 얼굴과 몸가짐에서는 ‘태고종도로서의 자부심’이 ‘주머니 속의 송곳이 저절로 삐쳐나오듯’, ‘창호지 틈새로 불빛이 새어나오듯’ 당당함과 부드러움이 함께 배어 나왔다. 28기로 합동득도 수계한 스님들과 동방불교대학 학인스님 및 서울 경기지역의 스님들이 초파일을 앞둔 여러 일들을 멀리하고 태고종단과 불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적극 참여한 결과임은 물론이다.
부처님 오신 날 봉축 연등축제에서의 장관은 그냥 연출된 것이 아니다. 지난 몇 년 사이 종단은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종단과 불교발전의 원력을 온몸으로 실천한 결과 종단의 역사상 처음으로 전통불교문화전승관 건립불사를 야심차게 출발시켜 주목을 받더니, 21세기의 인재 인프라 구축을 위한 전진도량인 동방대학원대학 개교 허가를 비롯해서 불교위성방송국 설립 허가를 불교계에서 유일하게 받아내는 등의 상승분위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분규로 몸살을 앓고 있는 봉서사, 탑사, 봉원사 등의 사찰들도 조계종 측에서 걸어온 소송에서 모두 승소함으로써 우리 종단이 법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음을 합리적으로 확인한 것 또한 종도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준 계기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종단의 상승분위기는 태고종도 뿐 아니라 전 국민의 마음의 고향인 태고총림 선암사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났다. 종정예하께서 주석하시면서 예불, 공양, 울력 등에서 ‘놀면 먹지 않는다(不作不食)’는 옛 가풍을 그대로 지키시는 모습에 100여명이 넘는 상주 대중 또한 수행의 고삐를 다잡음으로써 종단 전체의 수행풍토에도 큰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이 합동득도 수계 산림 등 총무원 주최의 각종 행사 및 교육에서 참여정신으로 이어져 동참 숫자가 기대 이상으로 만원을 이루는 등 마치 제석천궁의 그물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연결고리를 가지고 일어난 것이다. 그것은 바로 태고종도가 태고종도로서의 자기 정체감을 확인하면서 비롯된 일이다. 다운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을 확인하는 증거이다. 그 어떤 장엄등 보다 홍가사를 여법하게 수하고 걸어가는 스님들의 걸음걸이가 바로 삼천위의와 팔만세행으로 잘된 장엄이었던 것이다.
이제 태고종도는 무엇을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 자긍심과 함께 총무원에서 기획하는 불사라면 흔쾌히 동참하겠다는 분위기가 정착되어가고 있다. 나와 내 사찰만을 위해 힘을 기울이기보다는 다른 이와 다른 종교까지도 나와는 전혀 다른 타자(他者)가 아니라 나와 상대가 잘 되는 대화의 파트너인 ‘너’라고 바르게 인식하는 발전의 단계에 이미 와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이와 다른 단체의 사정까지도 살펴주는 마음 따뜻한 교화활동을 펼치는 태고종도는 언제든지 열린 마음으로 내 도량을 펼쳐서 사찰이 소재한 지역사회의 주민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가는 토박이 포교의 선두주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나갈 것으로 확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