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절 법회}

·초하루 법회 : 매월 음력 1일
·지장재일 법회 : 매월 음력 18일

주지스님 법문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정진 필요한 때

정 인 스님(불심포교원 주지)

올해는 불기로 2549년이 되는 해입니다. 불기는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해로부터 계산을 하는 것이니까, 2549년에서 서기인 2005년을 빼면 544년, 곧 기원전 544년에 우리의 부처님께서 입멸하셨다는 말이 됩니다. 여기에 부처님께서 사셨던 79를 더하면 623이라는 숫자가 나오는데 이것이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해라는 결론이 됩니다. 즉 기원전 623년에 석가모니부처님께서 가비라국 정반왕궁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이지요.  
불기를 기초로 부처님의 출생을 따지고자 한 것은 만인의 스승 부처님, 석가모니부처님은 인간의 역사 속에 실재하셨던 인물이었음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탄생과 성장, 그리고 전 생애를 거쳐 불가사의한 일들을 수없이 만들어 내셨던 부처님이시지만 결국 우리인간의 역사 속에서 인간으로서 완성된 모습을 보여주셨던 분이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삼계의 대도사이시고 사생의 자비로운 어버이이신 부처님에 대해 중생의 소견으로 이런 저런 말을 한다는 것이 마땅치 않은 일인 것은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말을 하게 됩니다.  부처님은 저 멀리 모셔두고 그저 경배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까이 모셔 그 모습을 찬탄하고, 스승으로 삼아 그 가르침과 실천을 본받으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부처님은 어떻게 이 세상에 오시게 되었는가 알아보겠습니다. 연등 부처님께 석가모니불이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은 선수행자는 도솔천에 호명보살로 태어나게 됩니다.
도솔천 내원궁에 거처하며 천인들을 제도하시던 보살은 세상에 몸을 나투실 때가 다가오자 천인들을 시켜 어느 곳 누구를 의탁해서 세상에 태어나야만 좋은 가를 알아보게 합니다.
천인들이 남섬부주의 각지로 다니면서 마침내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비라국의 정반왕과 마야부인이었습니다. 
때가 되자 보살은 마야 부인의 꿈에 여섯 개의 어금니를 가진 흰 코끼리로 나타납니다.  바로 도솔내의상입니다.  여섯 개의 어금니를 가진 흰 코끼리는 아주 상서로운 태몽이라고 합니다. 경전에는 “만약 어머니 꿈에 흰 코끼리가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오면 그가 낳은 아들이야말로 삼계에서 더없이 높은 어른이 된다네. 모든 중생을 이익되게 하여 친함과 원수에 다 평등하여 저 깊은 번뇌의 바다 속에서 수많은 무리들을 건지신 다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만, 이런 것들보다 다른 것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중생들은 스스로의 업에 의하여 천·인·수라·축생·아귀·지옥의 육도에서 윤회를 한다고 합니다. 
뒤의 세 가지, 축생·아귀·지옥은 삼악도라고 하니 그렇다 치고, 다시 수라는 비록 천상에 속하기는 하지만 싸움하기를 즐겨하니 그 역시 태어날 곳이 못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보살은 왜 더 많은 복락을 누리는 천상세계에 태어나지 않고 인간 세상에 태어나셨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부처님 법은 만나기 어렵고 사람의 몸도 받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설명해 주는 말이 있습니다. 맹구우목이라는 말입니다. 심해에 사는 눈먼 거북이 있는데 삼천 년마다 숨을 쉽니다. 숨을 쉬기 위해 표면까지 나오는데, 나올 때마다 숨을 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넓은 바다에 정처 없이 떠다니는 구멍이 뚫린 나무를 만나야 합니다. 그 구멍에 머리가 쏙 들어가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합니다. 과연 눈먼 거북이가 숨을 쉴 수가 있겠는가를 생각해보십시오. 가능하겠습니까? 눈이 멀쩡한 거북이라도 쉽지 않을 텐데 게다가 눈까지 멀었다니…. 물론 가능이야 하겠지요.  아니, 가능해야 합니다. 그래야 숨을 쉬어 삶을 이어 갈 수 있으니 말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이토록 어렵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은 이미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입니까. 이 얼마나 환희로운 일입니까? 신도님들은 다들 많은 복을 지닌 분들인 것입니다. 불전에 나오는 것을 제외하고 현실적으로 생각하더라도,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실로 놀랄만한 경쟁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생물학적 측면에서 볼 때, 한 인간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필요합니다. 정자의 경우만 보더라도 그 수는 최소한 1억 개 이상이라고 합니다. 난자의 경우까지 더한다면 그 확률이라는 것은 가히 따질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한경쟁을 뚫고 이 세상에 태어난 나는 진실로 축복된 존재인 것입니다. 
위없는 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호명보살도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 인간 세상에 몸을 나투신 것입니다. 부처님은 사자의 위엄을 갖추신 분이었으나 그 위엄으로 중생들을 굽어보셨던 것이 아니라, 자비스런 스승의 모습으로 우리 중생들의 곁에 머무셨던 분인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몸을 받아 나기 어렵고 또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기 어렵고 했는데, 우리는 이미 그 어려움을 성취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부처님의 생애와 그 가르침을 생각하며 다만 끊임없는 노력만이 필요합니다. 부처님을 믿고 따르는 길이 최상의 길입니다. 
『화엄경』에 “믿음은 도의 근본이요 공덕의 어머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정진하면 마침내 불도를 이룰 수 있음을 확신하고 물러남이 없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우리 모두 수행정진 하여 부처님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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