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정진 선행되어야 백중기도 효험 있어

경기도 파주시 야동동 상락원의 운오 큰스님이 7월 10일 불교방송 라디오법회에 출연해 ‘백중과 지장신앙’을 주제로 설법을 했다.
이날 법회에서 운오스님은 불자들에게 백중일을 앞두고 불자들이 백중기도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행동, 기도법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운오스님의 법문 내용을 정리했다.                           <편집자 주>

내가 살고있는 상락원은 음력 6월 2일인 지난 7월 7일날 백중 49일 기도를 입제했습니다.
조상의 은덕을 기리고 영가를 천도하기 위해서 입제법회에 동참한 불자들을 보니 그 신심에 저절로 마음이 흐뭇해지더군요.
내가 오늘 설법할 내용은 백중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백중의 유래부터 살펴보고 그 다음에 왜 백중 기도를 해야 하는 지와 백중기도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 재세 시 10대제자 중에 목련존자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목련존자는 신통이 제일이라고 했는데 그 신통으로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가 어디 계시는가’하고 살펴보니 아비 지옥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모습을 본 목련존자는 부처님을 찾아 뵙고 어머니를 아비지옥에서 구할 방법을 여쭈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여름안거가 끝나는 음력 7월 15일날 오미백과(五味百果)를 갖추어 시방대덕(十方大德)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면 그 공덕으로 어머니가 아비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일렀습니다.
백중이라는 말의 원래 어원은 우란분재에서 유래했다 할 수 있는데 이 말을 산스크리트어 자체만을 가지고 그대로 번역한다면 ‘거꾸로 매달려서 고통받고 있는 중생들을 바로 세운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쓰고있는 백중이라는 단어는 일백 백(百)자에 무리 중(衆)자를 쓰기도 일백 백(百)자에 가지 종(種)자를 쓰기도 합니다. 여기에서 무리 중(衆)자는 많은 대중을 말하는 것이고 가지 종(種)자는 많은 음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많은 대중들이 공양을 올리고 그 공양의 힘으로 기도를 하게 되면 아비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이라 할지라도 모두 구제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마치 부처님께서 발우 하나만 던지면 삼천 대천 세계가 진동하고 아비지옥도 모두 깨뜨린다는 비유와도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첨단 과학문명의 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구태여 백중이니 백종이니 법문을 하는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진의를 과학문명의 시대에 맞게 과학적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작은 건전지 1개는 1.5V의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1.5V 한 개를 가지고는 대부분의 기계들에 사용할 수 없도록 되어있습니다. 1.5V 건전지 두 개를 합하여 3V의 전력이 되어야 작동이 되도록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그 건전지를 어느 정도 소모시켜 0.5V의 전력만을 가지고 있다고 해봅시다. 아마 지혜가 없는 사람은 그 건전지를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건전지 6개를 합쳐서 3V의 전력을 만들려 할 것입니다. 0.5V의 전력을 가진 건전지 6개를 합치면 3V의 전력이 만들어지지 않겠습니까? 만약에 그러한 건전지 90개가 있다면 몇 V의 전력이 만들어지겠습니까? 또 그것이 600개라면 몇 V의 전력이 만들어지겠습니까? 사람도 죽게 할 수 있는 전력이 되겠지요. 
그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의 지극한 정성을 한데 모아서 흘려 보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것이 소위 심령과학에서 말하는 텔레파시라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극한 정성의 힘입니다. 그 정성의 힘으로 아비지옥에 떨어진 중생까지도 구제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들은 매년 새해가 되면 물고기방생을 합니다. 아마 30년 전쯤으로 생각되는데 나는 방생이라는 말 대신 양생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죽어 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것도 좋은 일이겠지만, 본래 방생의 근본 뜻은 잡지 말고 자연에서 그대로 잘 살도록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누구는 잡고 누구는 놓아주고, 잘 팔리니까 또 잡고…. 팔리니까 물고기도 잡고 짐승도 잡는 것이지, 안 팔리면 잡겠습니까? 참 어처구니없는 범죄를 서로가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방생한다며 외국에서 귀 빨간 거북이를 사와서 우리의 하천에 놓아주다 보니 지금은 우리나라 하천의 생태계마저 변화시켜버렸습니다. 이 죄는 불자들이 끝까지 지고 가야 할 크나큰 악업입니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주는 방생을 한다고 했지만은 어떻게 됐습니까? 결과는 우리 나라의 생태계만 파괴시켰다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각성하고 방생의식의 방법을 달리해야 합니다.
얼마 전에 TV에서 기가 막힌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신체적 조건은 서서 걸어다니도록 되어 있습니다. 반면 들짐승들은 기어다니도록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자연의 순리이고 이치입니다. 그런데 애완견을 어떻게 교육을 시켰는지 똑바로 서서 재롱을 부리는 모습이 TV에 비치더군요.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재롱 잘 부린다며 손바닥을 치면서 웃는데 가관이 아니더군요. 
생각을 해보세요. 네 발로 엎드려 기어다니는 것이 강아지의 자연스런 모습인데 두발로 걷도록 세워놓았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요. 얻어먹기 위해서 할 수 없이 주인이 하라는 데로 어려운 행동을 취하고는 있지만 얼마나 인간을 욕하겠습니까?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재롱 잘 부린다고 손바닥을 치면서 웃어요? 그것이 곧 자연생태계의 파괴요, 양생 정신에도 어긋난 행동인 것이다.
우란분재는 죽은 영혼만을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중생들을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해준다는데 근본 뜻이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 백중기도를 할 때 백일기도면 백일기도이고, 천일기도면 천일기도이지 왜 49일 기도를 하느냐 하는 의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49재를 지냅니다. 어느 스님들한테 물어보면 영가가 1주일에 한번씩 심판을 받는데, 6주 째에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주를 날아다니는 이 시대에 그 말이 먹혀 들어가겠습니까? 이해가 되지 않아 오히려 고개를 꺄우뚱할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30년 간 영가 도량에서 영가를 천도하면서 체득하고 깨달은 바를 오늘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9자가 좋으면 초 9일도 있고 19일도 있고 29일도 있고 39일도 있는데 굳이 49자를 가져다 49일간 재를 지내는 이유가 뭐냐?’ 이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49라는 숫자의 개념부터 정리가 되어야 합니다. 
1주일씩 기도를 올려서 6재를 지내고 7주 째 천도를 하니까, 7×7은 49, 그래서 49재입니다. 그러면 ‘왜 1주일입니까? 하루씩만 하면 될 것 아닙니까? 그래서 7일째 되는 날에 천도시키면 될 것 아닙니까?’하고 의문을 제기할 것입니다.
부처님의 법은 철학적인 바탕 위에 과학적으로 입증되고 논리적, 합리적, 체계적으로도 맞아떨어지도록 되어있습니다. 다른 종교 마냥 따지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밝히는데, 이 숫자의 개념, 즉 1주의 개념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하루를 24시간으로 계산하지요? 그러나 옛날에는 12시간이었습니다. 12시간은 1주일로 계산하면 몇 시간입니까? 12×7 = 84시간이 됩니다. 여기에서 84라는 숫자를 단순히 84로 보시면 안됩니다. 8과 4로 나누어서 보란 말입니다. 
우리는 숫자를 십진법으로 계산하는데 부처님이 태어나신 인도는 7진법이라고나 할까? 단자리 수 마지막 숫자가 7이었습니다. 10이 끝자리가 아니라 7이 끝자리란 말입니다. 우리나라는 십진법에 따라 숫자를 셀 때 10까지 세고 다시 11로 넘어갑니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7까지 세고 나서는 다시 1로 들어갑니다. 1, 2, 3, 4, 5, 6, 7, 다시 1∼7. 그렇게 해서 단자리 수의 마지막 숫자가 7인데 마지막 수 7을 넘어간 8은 무슨 수입니까? 
마지막 자리를 넘어갔으니까 숫자가 없는 것이 되겠지요? 그래서 8을 무한의 숫자로 인식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알고 있듯이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이 있습니다. 이 팔만대장경은 팔만 몇 천 장이 되니까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는 부처님께서 한없는 말씀을 하셨다는 의미에서 팔만대장경이라고 이름 붙여졌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8자라는 숫자는 무한을 뜻하는 수입니다. 무한의 숫자 8자의 부러진 숫자 4에는 또 무슨 뜻이 담겨져 있을까요? 이 4는 유한을 뜻합니다.
경전에서 보면 8만4천 번뇌, 8만4천 법문 등 8과 4의 숫자가 많이 등장합니다. 이것을 생활용어로 바꾸면, 항상 아름다운 것만 보겠다는 눈의 마음으로 보아서 지은 죄가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작은지, 얼마나 넓은지, 얼마나 좁은지, 얼마나 긴지, 얼마나 짧은지…. 등등 그런 말입니다. 
또 아름다운 소리만 듣겠다는 귀나, 아름다운 향내만 맡겠다는 코나, 맛있는 것만 먹겠다는 입이나, 부드럽고 편하게만 살겠다는 몸뚱이나, 이 모든 것을 충족해야만 만족을 느끼는 눈, 귀, 코, 입, 몸뚱이 등으로 지은 죄가 또 얼마 큰지, 작은지, 높은지, 얕은지 모른다 그 말씀입니다. 그래서 가장 큰 수인 7일 동안의 1주일기도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거기에 따라서 우리가 또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1주일에 1가지씩 마음을 닦아서 6주가 지난 뒤 마지막 7주째 가서 그동안의 결과를 가지고서 영가를 환생을 시키고 극락세계에 왕생하도록 하는 것이 49재의 근본 뜻이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이라는 말입니다.
생전에 지은 죄가 얼마나 많은 지 모르는데, 즉 8만4천인데, 49재 한 번 지낸 것으로 죄업을 말끔히 씻고 극락세계에 왕생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이 잘못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백중기도를 30년 동안 한 해도 빠뜨리지 않고 하고 있습니다. 매년 똑같이 49일 동안 기도를 올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렇게 살아 있는 동안은 매년 빠뜨리지 말고 백중기도를 지내야 하며 또 기도를 올릴 때는 인간인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 보다는 조상을 위해서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의 참회정진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법당에 위패를 붙여놓았으니 스님께서 알아서 해주겠지, 기도비를 냈으니 괜찮겠지’하는 생각을 가지고 기도를 게을리 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지장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극한 정성으로 영가를 위해서 기도를 해 주었을 때 그 공덕의 힘으로 영가가 왕생극락 할 힘을 얻게 되는데, 영가가 살아생전에 공부를 많이 하고 덕을 많이 쌓았다면 많이 가져가겠지만 살아생전에 공부를 하지 않은 영가라면 7분의 1밖에 못 가져간다”고 했습니다.
부처님 말씀은 참으로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의 말씀이에요.
영가가 지은 죄업이 얼마나 큰지를 우리가 모르는데, 한 번 기도를 했다고 해서 영가가 깨달음을 얻어 왕생극락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편리하고 좋겠습니까?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부처님께서 목련존자에게 어머니를 위해서 백중 우란분재를 행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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