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인사동 사찰전문음식점 '산촌(山村)' 운영하는 정산스님 하늘은 높고 말도 살이 오른다는 가을이라 했던가.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이 식욕을 채우기 보다는 수행의 산물로 음식이 내어지는 곳, 사찰음식전문점 인사동 '산촌(山村)'의 가을 모습이다. 40여 년간 우리네 절집들의 사찰음식 한가지에만 공력을 쌓아 온 '산촌'의 정산스님(60)을 만났다. 스님은 15세에 범어사에 입산, 수행 틈틈이 음식 만들기에 정성을 들이다 아예 음식공양을 통한 수행 길에 나선 분이다. 현재 우리 종단 스님으로 26년째 사찰음식전문점 '산촌(山村)'을 운영해 오고 있다. 정산스님은 행자시절, 보통 길어야 3년인 행자과정을 자청해서 5년이나 늘이며 공양 간에서 솜씨를 발휘해 큰 스님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했다고 한다. "조금 과장되게 얘기해, 안거 중에도 스님들이 제가 만든 음식을 드시고 싶어 선수행이 제대로 안 될 정도라는 우스개가 돌기도 했죠" 본격적으로 사찰음식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하게 된 것은 시봉하고 있던 한 노스님이 '진짜 사찰의 옛 음식을 먹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 것이 그 계기. "노스님에게 정성껏 음식을 대접하고픈 마음에 제대로 된 전통사찰음식을 연구하고 만들어 보고 하던 게 오늘에 이르렀네요" 범어사, 통도사, 해인사, 동화사, 해남 대흥사, 송광사 등 전국 큰 사찰을 다 돌며 각 사찰의 고유 음식을 섭렵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료도 정리하는 등 원주 생활을 하며 우리 전통사찰음식을 하나하나 익혔다고 한다. "육조 혜능대사는 나무하고 아궁이 불 떼고 하다가 도를 깨달았다는 데, 음식솜씨가 좋아 공양간지기가 되다 보니 선방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그렇다면 아예 음식을 통해 한 소식 이뤄보자고 마음을 먹었지요" 그동안의 경험을 통한 지역별 사찰 음식들을 기록 정리하고 여 다양한 조리법과 식재료들에 대한 연구도 멈추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인 1960년대 중반에 일반인을 상대로 국내 최초 사찰음식 공개강좌를 열었으며 당시 부산일보에 '절 따라 맛 따라'라는 코너를 만들어 연재까지 했다. '명실상부 한국 사찰음식의 중흥조라 일러도 되겠다'는 기자의 말에 정산스님은 맑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지난 9월 '한(韓)브랜드 박람회' 행사의 일환으로 '사찰음식을 대중화하는 방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서 토론자로 참석해 현 사찰음식문화에 대한 스님의 지론을 펼쳤다. 참살이(웰빙) 바람을 타고 사찰음식이 요즘 하나의 화두지만 실상 절에 가면 절 음식이 없고 사찰음식에 대한 개념도 정립되지 않았으니 대중화 방안을 논의하는 것은 앞뒤가 바뀐 논의라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산사의 하루-아침, 점심, 저녁 및 차담'이라는 주제로 한국국제전시장(KINTEX)에 전시된 사찰음식 상차림을 두고도 문제를 지적했다. "전시된 사찰음식 상차림을 보니 아침상 죽 종류에 '흰죽'이 없는데, 흰죽은 유래가 있는 음식으로 절집 상차림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게지요" 임진왜란 때 스님들이 승병으로 구국 전선에 앞장설 당시, 절에 남은 노스님이나 동자승들이 '편안히 앉아 삼시세끼의 밥을 다 챙겨먹을 수는 없다'고 생각해 조금이나마 같이 고생하자는 마음에 먹기 시작한 게 절집 흰죽의 유래라고 정산스님은 들려준다. "밥 종류만 해도 그래요. 상차림 전에 전시된 밥 종류를 보니, 우거지 밥, 곤드레 밥 등도 보이는 데, 부처님께 올리는 밥에 곤드레밥이나 우거지밥이 있을 수는 없지요" 옛날 모든 절에서는 부처님이 하루에 한 끼 밖에 안 드신 것을 기려 매일 사시에는 사시마지로 부처님께 음식을 올리고 스님들도 예를 갖춰 가사, 장삼을 정식으로 수하고 점심공양을 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별식으로 전시된 누룽지 탕수육도 스님은 좀 못마땅하다. 왜 하필이면 전통사찰음식에 중국 음식을 올리느냐는 것이다. 무지개떡도 정통 사찰음식으로는 다소 문제가 있단다. 스님들도 알록달록한 색채로 염색한 옷이 아니라 먹물 옷을 입 듯, 절 음식도 색채가 많은 것은 꺼려했으며 색이 있다면 쑥을 넣은 정도가 전부였다는 말씀이다. 또 스님들이 좋아해 '승소(僧笑)'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사찰에서 인기 메뉴인 들깨 국수가 빠진 데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시했다. "생선이나 육류가 없고 마늘등 오신채가 빠진다고 모두 사찰 음식인 건 아닙니다. 전통 사찰음식과 퓨전 사찰음식과는 차이를 두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사찰 음식의 요체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스님은 "무엇을 맛있게 먹는다는 것 자체가 불법에 어긋난다고 여기기에 자연 그대로의 맛을 최대한 살린, 생것에 가장 가까운 음식이 사찰음식의 요체요 조리법의 포인트"라고 강조한다. "화려함을 배제하고 맛이 없을 것 같은 데에서 맛을 찾는 것"이라는 얘기다. 먹을 수 있는 식물은 제각각 맛과 색을 지니고 있으니 화려할 필요가 없으며 원재료에 최대한 가까워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콩밥을 지을 때 '콩은 살짝 익혀야 색이 파랗게 나와 보기가 좋다'고 콩을 덜 익히는 따위의, 보이는 것에 치중하기보다는 음식을 먹는 사람의 입장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님은 "비록 도시 한복판에 있지만 절에 있는 기분으로 살며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 여긴다"며 "향후 제대로 된 정통 사찰 음식을 명품으로 만드는 데 더욱 매진하는 한편, 후학을 양성해 사찰음식 저변확대를 기할 계획"이라고 말을 맺었다. <백민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