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일 지음, <생명산필>, 종이거울선운사 만세루의 기둥과 서까래는 굽고, 휘어지고, 뒤틀리고, 잘려진 것들인 탓에 온전한 게 없다. 인간세계에서 불구라 할 것들이 천연덕스레 모이면 멋진 세상이 만들어진다. 자연의 경계에 서면 불구 없이 휘어지고 뒤틀린 그대로가 모두 자연이 되는 원융회통(圓融會通)이 된다.저 산과 들의 풀과 나무들은 저마다 자기다운 꽃과 잎을 부지런히 피워낼 뿐, 그 무엇도 닮으려 들지 않는다. 질경이는 질경이대로, 꾀꼬리는 꾀꼬리대로, 단풍은 단풍대로, 도롱뇽은 도롱뇽대로 살아갈 뿐….자연은 각기 제자리를 잡고 흐트러진 질서대로 살아갈 뿐이다. 자연과의 참 만남은 들로,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자연으로 돌아간 길목에 섰을 때 이야기 할 수 있다.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소리와 몸짓으로, 식물들은 아름다운 색과 향으로. 이 책은 두발로 직접 걸어 ‘생태기행’에 나선 저자가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찾듯 여행을 통해 만난 수많은 자연생명의 선지식들과 나눈 담론을 엽편(葉片)에 담아 놨다. 자연에 대한 저자의 깊은 사랑은 살아있는 것들과의 멋진 만남이 주는 지혜로 따뜻이 빛난다. 겨울에 썩은 나무로만 군불을 떼던 행자 앞에 노스님은 나무를 잘라 보이고, 죽었다 여긴 썩은 나무는 수많은 애벌레들의 겨울집이 되어 자연으로 살고 있었다. 인간의 마음으로 화탕지옥을 만든 걸 깨달은 행자는 생명을 키우는 썩은 나무에게 묵묵히 합장한다. 저자가 들려주는 생태기행에 나서면 잠시 뒤돌아보게 된다. 우리 인간의 이기심과 기계문명이 살아있는 것들을 황폐화 시키지는 않은지, 자연을 핑계 삼아 있는 그대로 울력하며 사는 그들을 괴롭히는 건 아닌지… 잠시 일손을 멈추고 명상하듯 떠올리며 읊어보자. 햇살, 물빛, 바람맛, 구름, 바다, 모래, 풍뎅이, 참개구리, 다람쥐, 박새… 살아있는 모든 존재가 내 곁에 있음을 깨달을 때, 삶은 진정 아름답고 자연은 경이롭지 않은가. 이 세계는 자연의 노래, 생명의 노래가 눈부시게 울려 퍼지고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