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든 커넥션(1)
프리초프 카프라 지음
강주헌옮김
휘슬러 출판
카프라는 우리에게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 <생명의 그물>을 쓴 세계적인 물리학자로 알려져 있다. 그런 물리학자가 <히든 커넥션>에서는 생물학의 기본이론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 특히 신자유주의로 병든 세계를 재정립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과학적 탐구는 선형적 사고와 기계주의와 환원주의에 기초를 두고 있다. 17세기의 데카르트는 두 세계를 구분하는 이원론적 자연관을 주장했다. 생각하는 것과 확장하는 것, 즉 정신세계와 물질세계로 구분하였다. 그 후 거의 300년 이상 동안 정신과 물질을 개념적으로 구분하는 사상이 서구과학과 철학을 지배했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는 사정이 달라졌다. 급속도로 발전한 컴퓨터의 능력덕분에 과학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쉽게 복잡성 이론, 즉 비선형적 사고를 과학적인 프로세스에 적용할 수 있게 되었다. 카프라는 <히든 커넥션>을 통해 복잡성 이론의 원칙들을 모든 인간의 상호작용의 차원에까지 적용시켜서 풀어나가고 있다.
생명체는 자기 생성 네트워크 벗어난 적 없다
생물학적 진화에서 처음 20억년동안 박테리아를 비롯한 미생물들이 지구에 존재하는 유일한 생명체였다. 생명체의 발전과정에서 전 지구를 뒤덮은 박테리아의 네트워크가 창조적 진화에서 주요한 원천이었다. 박테리아는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유하게 되었는데, 박테리아들이 약물에 대한 내성을 키워가는 그 속도가 그들의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의 효율성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생명체에 내재된 창조적 능력이라고 할 수 있는 돌연변이, 유전자교환, 공생을 통해 진화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이렇게 해서 생명의 그물은 전 지구로 확산되었고 끊임없이 복잡해지면서 무수히 다양한 생명체들을 낳았다. 세포가 복제되면서 유전자만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라 세포막, 효소, 세포기관 등 ‘세포 네트워크’ 전체를 전달한다.
새로운 세포는 순수한 DNA에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다. 끊이지 않고 계속되는 자기 생성 네트워크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또한 유전자들이 후생적 네트워크에 깊숙이 관여할 때만 기능할 수 있기 때문에 순수한 DNA는 결코 전달되지 않는다. 따라서 생명체는 30억년 이상 동안 잠시도 중단되지 않은 과정을 거쳐 왔으며, 이런 자기생성 네트워크의 기본을 벗어난 적도 없었다.
우리 모두는 독립된 개체라는 점에서는 닫힌 구조이다. 하지만 성장을 위해서 우리는 독립된 개체로만 존재할 수 없다. 네트워크의 한 부분이 되어야만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는 열린 구조이다. 닫힌 구조이면서 열린 구조인 생명체에서 기업의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카프라는 말한다.
시스템적 생명관에 따르면, 가장 작은 단위의 생명체이라 할 수 있는 세포마저도 살아있는 '시스템'이다. 살아있는 시스템은 구성요소들끼리 서로 상호 작용하고 상호 의존하면서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선형적 인과론으로는 설명하거나 예측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더군다나 살아있는 시스템은 주변 환경과 상호교류를 하고 있으며, 환경변화에 따라 수시로 자신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도저히 기계론적 입장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인지는 삶의 과정 통해 하나의 세계 만드는 행위
기계론자들은 모든 생물학적 현상이 물리학과 화학의 법칙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 반면에 생기론자들은 그러한 법칙에 추가적으로 비물리학적인 인자로서 ‘생명력’이 덧붙여져야 만이 생물학적 현상이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갖는 가장 중요한 철학적 의미 중 하나는 정신과 의식이 개체가 아니라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산티아고 인지론Santiago Theory of Cognition에 의하면, 앎의 과정인 인지(認知)는 생명과정 자체이다. 인지는 자기생성, 즉 살아있는 네트워크의 자기 생식과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자기생성은 연속적인 구조적 변화를 겪으면서도 거미줄처럼 얽힌 조직구조를 보존할 뿐만 아니라, 살아있는 네트워크의 성분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만들어내고 변화시킨다.
유기체의 특징 중 하나는 주변 환경의 방해에 스스로 반응하면서 구조변화를 갖는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구조변화를 스스로 결정할 뿐만 아니라, 외부의 방해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것인지도 스스로 결정한다. 생명의 탄생이후 생명체들 간의 상호작용, 또한 생명체와 주변 환경과의 상호작용은 인지적 상호작용이었다. 그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인지과정도 복잡해졌다.
생명의 진화과정은 생명의 인지적 차원과 깊은 관계를 맺는다. 인지는 삶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세계를 끊임없이 만들어가는 행위이다. 언어와 의식은 새로운 질서의 출현이며, 우리 정신도 언어와 의식으로 구체화되어졌기 때문에 우리가 갖는 개념과 비유능력도 생명의 그물에서 구체화되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원초적 의식이 통합된 상태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생각하고 성찰하며 언어를 도구로 소통의 수단을 삼기도 한다. 또한 가치판단을 내리고 믿음을 가지는 등, 자기인식을 통해 계획적이고 자유롭게 행동하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의 내면세계는 진화에서 언어와 사회의 탄생과 더불어 나타났다. 달리 말하면 인간의식은 생물학적 현상인 동시에 사회적 현상이라는 뜻이다.
움베르토 마투라나에 따르면 언어현상은 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행위를 조율하기 위한 조율의 연속적인 흐름으로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인간인 우리는 언어와 더불어 존재하면서, 언어로 우리 행위를 조율하고 언어와 더불어 우리 세계를 만들어간다.
테크놀로지는 인간 본성 규정짓는 특징
인간언어의 기원이 손짓에서 기원했다면 그리고 손짓과 연장 만들기가 동시에 진화했다면 테크놀로지가 인간본성의 일부라는 것이다. 소리로 의사소통을 하게 되면서 인간은 두 손을 사용하면서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음성으로 표현된 단어가 출현하면서 인간은 다른 생명체에 비해 엄청난 이점을 갖게 되었다.
언어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사회의 네트워크란 상징 언어, 문화적 제약, 권력관계 등이 개입하는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이다. 사회시스템에는 살아있는 인간만이 아니라 언어와 의식과 문화까지 포함되기 때문에 사회시스템은 인지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네트워크가 네트워크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네트워크는 자기 생식적이다. 이렇게 형성된 네트워크는 기대감과 기밀성과 충성심의 경계로 네트워크에 의해 유지되고 재조정되는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유기체는 스스로 조직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들의 행위가 주변 환경에서 강요받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의해 결정된다는 뜻이다. 생명계의 자율성을 독립성과 혼돈해서는 안된다. 살아있는 유기체는 주변 환경에서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주변 환경이 유기체의 조직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차원에서도 우리는 이런 자기결정을 경험하게 된다.
사회네트워크는 구성원이 끊임없이 재창조하고 재조정하는 문화적 경계 내에서 일어나는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세포의 대사 네트워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세포의 대사 네트워크도 세포의 범위를 결정지으며, 그 경계인 세포막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재생한다. 사회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과정은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며 이런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 구성원들은 의미와 행위법칙 그리고 지식을 공유한다.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 문화가 진화할 때 사회의 인프라도 변한다. 문화가 진화할 때 테크놀로지도 진화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테크놀로지는 인간의 본성을 규정짓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테크놀로지는 문명의 각 단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실제로 우리는 인류문명에서 위대한 시기들을 당시 테크놀로지로 규정짓는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 산업시대, 정보시대, 등 테크놀로지는 인간이라는 존재에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인간이 이 땅에 탄생한 이후로 어떤 형태로든 테크놀로지를 사용했듯이 테크놀로지는 자연과 자연의 발전방향에 영향을 미쳤으며, 그 과정은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것이고 그 관계도 영원히 지속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제까지 생물학적 생명체와 사회적 생명체를 통합해서 하나로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앞으로는 이러한 개념들을 인간조직의 경영, 경제세계화의 과제와 위협, 지속가능한 공동체의 설계 등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펼쳐 나갈 것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