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 번 독경으로 목숨을 구하다

“경전을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생활속에서 실천 할 때
마침내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다. 다시 말해 깨달음을 목표로 쉼 없이 수행정진 하는 종교란 의미이다.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가 있다. 불자들이 익히 알고 있는 참선(參禪)이 대표적이고, 이외에 염불(念佛), 주력(呪力), 간경(看經) 등이 있다. 이중에서도 특히 간경은 독송(讀誦)·송경(誦經)·염경(念經)이라 불리는 중요한 수행법이다. 이때의 간경은 경전을 눈으로 보는 것을 포함한 독(讀)·송(誦)·설(說)·사(寫) 등의 의미를 모두 담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간경의 공덕으로 생사의 기로에서 목숨을 구한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중국 당나라 서쪽 지방의 한 군대에 군역(軍役)을 살고 있던 왕한술이라는 군졸이 있었습니다. 군대에 들어오기 전에 왕한술은 노모와 아내, 늦둥이 아들을 둔 평범한 농사꾼이었습니다. 
왕한술이 군역을 치르고 있는 군대는 여느 부대와 마찬가지로 군졸들이 밤낮으로 돌아가며 보초를 서야 했습니다. 2시간 정도씩 돌아가며 서는 보초근무는 무척이나 따분한 일이었습니다. 적군과 대치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던 만큼 후방에서의 경계근무는 형식적인 근무였고, 대다수의 군졸들은 보초를 서면서 졸거나 잡담을 나누기 일쑤였습니다. 상관들도 이런 군졸들을 크게 나무라지는 않았습니다.
왕한술은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동료들이 보초를 설 때 대충대충 시간을 보내는 것과 달리 자신에게 주어진 근무시간 동안 바른 자세로 성실하게 근무를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날 밤도 왕한술은 자신의 순서가 돌아와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보초를 서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왕한술은 갑자기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습니다. 
“저녁밥으로 먹은 나물죽이 잘못되었나? 왜 이렇게 배가 아프지?”
왕한술은 뱃속이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 아파왔고, ‘꾸르륵’소리와 함께 급하게 똥이 마려워졌습니다. 
“아이고, 도저히 참을 수가 없구나. 보초를 선 채 큰 볼일을 볼 수는 없으니 혼날 때 혼나더라도 얼른 뒷간에 다녀와야겠다.”
왕한술은 보초병이 근무지를 벗어나면 군율로 다스려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설사가 나오기 직전이었기 때문에 다급히 뒷간으로 뛰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사건의 발단이었습니다. 하필이면 그때 절도사(지휘관)가 순찰을 나온 것입니다. 절도사는 보초병이 근무지를 이탈했다고 노발대발했습니다. 
“보초를 소홀히 한 군졸을 당장 잡아들여 참형에 처하라.” 
절도사는 이유조차 묻지 않은 채 보초를 소홀히 섰다는 이유로 왕한술을 참형에 처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시범적으로 엄한 처벌을 내려 흐트러진 군율을 바로 잡겠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왕한술은 군졸들에게 끌려가면서 집에 있는 노모와 아내, 그리고 돌이 막 지난 아들이 눈앞에 어른거려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노모와 처자식은 누가 돌본단 말인가. 아! 부처님이시여, 어찌해야 합니까?”
왕한술은 처형장으로 끌려가면서 평소 습관적으로 외우던 금강경을 독송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목을 향해 내려쳐지는 칼날의 그림자를 보며 눈을 감았습니다.
한편 군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을에 살고 있던 왕한술의 아내는 이웃 사람들을 통해 남편에게 닥친 슬픈 소식을 전해 듣고는 시어머니와 함께 통곡을 했습니다. 
“아이고, 아이고.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우리는 어찌 살라고, 우리는 어찌 살라고 …”
그날 밤이었습니다. 왕한술의 아내는 넋을 놓고 방안에 앉아 슬픔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사립문이 열리는 소리에 방문을 열고 나가보니 죽었다던 남편이 걸어 들어오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왕한술의 아내는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초췌한 몰골의 왕한술을 부여잡고 자초지정을 물었습니다.
“여보, 이게 어찌된 연유요. 죽었다던 사람이 이렇게 살아 돌아오다니?”
“나도 잘 모르겠소. 칼날이 내 목 위로 떨어진 후에는 술에 취한 것도 같고, 꿈을 꾸는 것도 같이 몽롱했다오. 그런 후 아무 고통도 느끼지 못한 채 잠이 든 것 같은데 깨어나 보니 내가 성 밖 저잣거리에 뒹굴고 있는 게 아니겠소. 성문은 이미 닫힌 지 오래라 이렇게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오.”
이윽고 날이 밝았습니다. 남을 속일 줄 모르고, 잘못을 저지르면 항상 참회할 줄 알았던 왕한술은 아침밥도 거른 채 절도사를 찾아가 머리를 조아린 채 군율을 어긴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습니다.
하지만 왕한술을 본 절도사는 기절초풍을 할 지경이었습니다. 전날 참형에 처했던 군졸이 꼭두새벽부터 찾아와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니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네가 귀신이냐, 사람이냐?”
“저는 분명 사람이며, 군졸 왕한술입니다.”
“그럼, 무슨 술법을 부렸기에 살아났느냐?”
“어떠한 술법도 부리지 않았고, 부릴 줄도 모릅니다. 다만 짐작 가는 일이 있다면 어려서부터 날마다 금강경을 세 번씩 읽은 일밖에 없습니다.”
절도사는 왕한술의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평소 읽던 경전을 가져와 보거라.”
절도사는 왕한술이 도망을 치지 못하도록 군졸들을 딸려 보내 금강경을 가져오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한참 후 돌아온 왕한술은 절도사 앞에 꿇어앉아 나무상자 하나를 내밀었습니다. 절도사는 주저하지 않고 나무상자를 열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상자 안에는 낡은 금강경이 한 권 놓여 있었는데 그 가운데가 칼로 베어져 두 갈래로 찢어져 있었습니다. 
절도사는 비로소 왕한술이 죽지 않은 것은 그가 평소 쉼 없이 반복했던 독경의 공덕이요, 부처님의 가피란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명을 내렸습니다.
“은으로 금강경 100권을 만들어 지역의 모든 관리들과 군졸들에게 나눠주고 항상 읽도록 하라.” 

경문을 눈으로 보는 것은 간경(看經), 소리를 내어 읽는 것은 독경(讀經), 경문을 보지 않고 외는 것은 독송(讀誦)이라 한다. 경전의 내용이 난해하다보니 경전을 반복해서 읽거나 외움으로써 그 뜻을 마음속에 새기도록 한 것이 의식화된 것이란 게 학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간경은 방법이나 경전의 종류가 중요하지는 않다. 정작 중요한 것은 간경을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서산대사가 “경전을 보면서 마음속을 향해 공부하지 않으면 만권의 경전을 보아도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지적한 것처럼 부처님의 지혜로 자신의 무명(無明)을 타파하고자 노력할 때 경전 속의 지식은 나의 참된 지혜가 돼 나의 묵은 업을 씻어주기 때문이다. 
간경을 훌륭한 수행법이라 말할 수 있으려면 경전을 지식을 쌓는 수단으로만 생각해 아만을 쌓고, 무수한 시비분별을 일으켜서는 안된다. 경전을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평소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이렇게 정진한다면 마침내 모든 이치에 밝아지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이런 믿음과 실천이 전제되는 간경이어야 말로 훌륭한 수행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간경의 유래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 때 장보고가 당나라 적산(赤山, 산동성 소재)에 세웠던 법화원에서 간경의식을 행한 이후 맥을 이어오고 있다. 한 스님이 일어나 종을 울리면 신도들이 정좌(靜坐)를 하고, 다시 스님이 “일체공경례상주삼보(一切恭敬禮常住三寶)”라고 말하면 범패승(梵唄僧)이 ‘양행게(兩行偈)’를 말한다, 그 다음에 대중이 목소리를 맞춰 경전의 제목을 여러 번 외운다. 그 다음 한 스님이 독경의 목적을 말하고, 독경을 시작하면 대중이 소리를 맞춰 독경을 시작한다. 독경은 대중이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하는 만큼 박자가 중요한데 이런 과정에서 음률이 중요시됐고, 영산재에 등장하는 범패 등 불교음악이 발달하게 되었다고 한다. 
황선미 /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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