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평균 수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30개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못살고 비 위생적이였던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에서 가장 건강을 중시하는 국가로 변모했다.
이제 사람들은 단순히 오래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오래도록 건강하게 잘 살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사람들은 '웰빙'(well-being)으로 고민의 해답을 찾기 시작했다. 이렇게 온 나라에 퍼진 웰빙열풍은 '유비쿼터스'(Ubiquitous)와 '로하스'(Life 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로 변모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이 시대에 불교가 해야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잘 모르고 있는 시대의 트랜드를 알아보면서 이 속에서 불교의 역할을 찾는 것도 의미있는 일인 것 같다.
웰빙 열풍은 우리의 모든 삶의 기준을 바꿔놓았다. 식생활을 비롯한 모든 생활 문화의 기준은 웰빙이 되었다. 기업과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 낸 웰빙이 주목받는 이유는 바로 산업화에서 간과했던 정신 건강의 중요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고도의 산업화는 인간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정신적 여유와 안정은 앗아갔다. 또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구조적으로 경제활동을 통해 얻은 물질적 부(富)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한계적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 사람들은 부의 창조와 소비에 치중하여 정신적 건강을 소홀히 하였다.
웰빙은 이러한 현대 산업사회의 병폐를 인식하고,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새로운 삶의 문화 또는 그러한 양식을 일컫는 말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1980년대 중반 유럽에서 시작된 슬로푸드(slow food)운동, 1990년대 초 느리게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등장한 슬로비족(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 부르조아의 물질적 실리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추구하는 보보스(bobos)등을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03년 이후 웰빙문화가 확산되어 의류·건강·여행·식품등 각종 상품 및 매체가 등장하면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데 모든 삶의 문화가 포괄되어 있는 의미를 지닌 웰빙의 의미는 복지·행복·안녕을 뜻하는 말이다.
결국 웰빙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질병이 없는 건강한 상태뿐 아니라, 직장이나 공동체에서 느끼는 소속감이나 성취감의 정도, 여가생활이나 가족간의 유대, 심리적 안정 등 다양한 요소들이 만족되어야 한다.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룬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상태 즉, 중도의 상태가 웰빙인 것이다.
장소에 상관없는 자유로운 정보통신 환경
'언제 어디서나 존재한다'의 라틴어, 현대문명의 총 집합을 의미
유비쿼터스(Ubiquitous)라는 발음하기도 어려운 라틴어 단어, 하지만 이 단어에는 현대문명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유비쿼터스가 우리 생활에서 이루어지면 가정·자동차는 물론, 산꼭대기에서도 자유롭게 정보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영화속 모든 상상들이 현실이 된다.
물이나 공기처럼 시공을 초월해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라는 뜻을 가진 유비쿼터스는 사용자가 컴퓨터나 네크워크를 의식하지 않고 장소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하는 것으로 컴퓨터에 어떠한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사용하고 있는 모든 사물이나 기기에 컴퓨터를 집어넣어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정보기술 환경 또는 정보기술 패러다임이다.
건강에 대한 개인적 관심을 사회적 관심으로
로하스는 (Life 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의 약자로 건강과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생활방식이나 이를 실천하려는 사람을 말한다. 2000년 미국의 내추럴마케팅연구소가 처음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
로하스는 개인의 정신적,육체적 건강 뿐 아니라 환경까지 생각하는 친환경적인 소비형태를 나타낸다. 또 자신의 건강 외에도 후대에게 물려줄 미래의 소비 기반의 지속 가능성까지 고려 한다. 이러한 운동의 대표적인 예로 장바구니 사용, 천으로 만든 기저귀나 생리대 사용,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프린터의 카트리지 재활용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족의 건강을 위하여 집안의 벽지를 친환경 소재로 바꾸는 것이 웰빙이라면, 벽지의 원료가 재생이 가능한 것인지, 폐기할 때 환경 파괴 성분이 나오지 않는지 등을 따지는 것이 로하스이다.
세상을 모두 바꾸는 것도 결국 인간이 하는 것이다. 문명이나 모든 제도들은 인간이 인간답게 살려고 만든 것이지 인간이 문명과 제도에 종속되고자 만든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실펴본 트랜드들의 핵심에는 건강하게 잘살고 싶은 인간의 마음(心)이 자리잡고 있다.
문명의 발달은 이런 인간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하지만 꿈을 현실로 만들고 있는 이 시대가 역사중 가장 불행한 시대라는 말도 나온다. 비인간화되어 가고 있는 사람들, '터미네이터'라는 영화에서 처럼 인간이 불행해 질 수 있는 가능성은 현실화 되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다시 과거의 문명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 또한 더 커지는 것이다.
정신적 황폐가 극에 달한 지금, 문명의 이기를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사용하게 된다는 것은 그 모든 이기들을 통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 받을 수 있는 모든 행위도 가능하다는 역설도 된다.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종교일 듯 하다. 가장 인간적이며 도덕적, 정신적 수양을 근본으로 하고 있는 종교가 불교이기에 하루가 불안한 우리에게 불교는 해방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속세의 부귀영화는 어찌보면 다 부질없는 것일 수도 있다. 건강하게 오래 잘 살려면 인간은 헛된 욕심을 버리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일 것이다.
웰빙, 유비쿼터스, 로하스도 결국 인간이 어떻게 그것을 이용하는 것에 따라 인간에게 유익한 것이 될 수도 있고 해로운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만해 한용운은 '一切唯心造'를 강조하셨다. 모든 최첨단의 이기를 인간이 바른 정신을 가지고 사용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기계에 놀아나는 허수아비에 불과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라고 하면 너무 오래되고 지루한 전통으로 착각하고 살고 있다. 하지만 부처님의 말씀은 지금까지 살다간 사람들에게 검증되고 회자되는 역사가 아닌 현실속에 살아있는 진리다. 이 진리는 인간에게 겸손과 중도를 가르키고 있다. 또한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부처님의 진리로 재무장한 사람이 늘수록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사회가 치유될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혼자만 가지고 계시지 않았기에 불교신자들도 조용한 개인 수양이 아닌 실천하는 신자로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불교의 진리는 최첨단 트랜드 속에서 살아 움직이면서 우리에게 진정한 삶이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길만이 우리가 진정 잘먹고 잘사는 방법이 될테니 말이다.
김치중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