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곤의 노스님이 고아와 동자승등 60여명의 대 식구를 거느리고 있는 사찰이 있어서 보광사에서 자매결연을 맺고 이들과 꾸준한 교류를 하기로 약속을 하고 돌아왔다. 60명의 한달 생활비가 100 된다 하므로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날이 지나면 다시 미얀마로 가서 이들의 일년 생활비를 전달하고 못다 본 미얀마를 돌아보고 올 생각을 하고 있다.맑고 초롱초롱한 이들의 눈동자가 아른거려 견딜 수 없을 만큼 보고 싶다. 이들에게 무엇이 가장 갖고 싶냐고 하니 컴퓨터라고 한다. 그래서 같이 간 승공스님, 대안스님, 이재락법사 등과 상의하여 컴퓨터랑 복사기를 800 사주고 가지고 간 학용품을 나누어 주었더니 얼마나 좋아하던지 지금도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보광사 법운스님 꾸준한 지원 약속이곳 미얀마에서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거나 대학진학을 시도해 볼 수 있는 사람들은 특혜를 누리는 것이다. 그들은 남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대학제도는 최근 대규모 구조개혁을 겪고 있다. 규모가 크고 오래된 대학을 보다 작은 대학으로 나누고 있으며 소재지도 수도 외곽이나 다른 도시로 옮기도록 하고 있다. 큰 캠퍼스에 학생들이 밀집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가장 큰 의도는 학생들을 소규모로 분산시켜 정권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안다. 대학 분산 정책으로 학교시설도 크게 부족하게 됐고, 장거리 통학으로 교수나 학생 모두 곤란을 겪고 있다.이 때문에 대학교육의 질은 매우 악화됐다. 이 나라에는 나왕, 마호가니, 대나무 등의 숲이 울창하다. 루비, 사파이어, 비취 등과 같은 보석류, 은 납 텅스텐 대리석 등의 광물자원, 천연가스와 석유 등도 많이 나온다. 식민지 시대에 영국 소유의 버마석유회사가 예낭야옹 지역에서 개발한 것을 제외하고는 막대한 양의 가스와 석유가 손도 대지 않은 채로 매장돼 있다.국가경제 40%가 농업에 의존미얀마는 농업국가로 남아있으며 국가경제의 40%가 농업에 의존하고 있다.주요작물은 쌀 콩 면화 담배 황마 사탕수수 고무 코코넷 등이다.생선과 새우 또한 미얀마 해역에 풍부해서 인근국가의 배들이 무단으로 침입해 어로작업을 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나왕과 마호가니 등 목재 수출이 쌀 수출을 앞지르면서 쌀을 중심으로 한 전통적인 경제구조가 바뀌고 있다.콩류 역시 보석류와 함께 중요한 수출품이다. 국경무역이 정상화된 이후로 암시장에 뺏겼던 수익도 어느 정도 양성화 되고 있다. 1990년대에 경제가 개방됐음에도 불구하고 민간부문의 역할은 아직도 미미하다. 정부통제는 사라지지 않았고 국영사업부분은 수익이 나지 않는 기업들로 가득해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다.통화무효화 조치로 국민들 곤욕미얀마의 화폐단위는 ‘차트’다. 동전은 물가 상승율이 너무 높은 탓에 실질가치를 잃다시피 했다. 이 때문에 거의 통용되지 않는다. 동전이 고철로 녹여지고 있다고들 한다.미얀마는 지난 30년간 통화폐지(통화무효화조치)를 3차례에 걸쳐 단행했다. 은행예금이 아무런 보상 없이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돼 버린 경험을 감수해야 했다.이러한 통화폐지 이면에는 정부의 의도가 숨어 있었다. 바로 제도권 밖에서 많은 현금을 보유하고 있던 암거래상에게 타격을 주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평범한 사람들 특히 노동자와 퇴직자들도 충격을 받았다. 국가 통화에 대한 신뢰도는 낮은 상태이다. 국민들은 은행을 이용하려 하지 않고 현금을 집에 보관하거나 금이나 보석, 부동산을 사는데 쓴다. 경제 불안 빈곤한 나라경제적 불안정은 미얀마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특히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그 고통은 더욱 크다. 그들은 어린 사람들 보다는 상대적으로 번영하고 성장하는 시대를 살아오다가 하룻밤에 통화폐지로 인한 손실을 입고 한때는 풍성했던 생필품들의 부족사태에 시달린 것이다.소득분배는 매우 불공평하다. 하지만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서 간접적인 소득분배가 행해지고 있다. 자선축제와 기부가 바로 그것이다. 예를 들어 마을사람 가운데 한명이 복권에 당첨되거나 풍작으로 높은 소득을 올렸다면 그는 신바우(SHINBYU)라는 잔치를 벌린다.마을 사람들이 모두 초대된다고는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잔치를 통해 배를 채우게 된다.생필품을 얻기가 힘들어지자 사람들은 재활용을 일상화 하게 됐다. 환경보호를 위한 것이 아니다. 물자가 부족하다 보니 사람들이 어떤 것이든 함부로 버리지 않는다. 빈병 초콜렛상자 헌신발 헌옷 헌매트리스 헌책 등 모든 것을 언젠가 필요한 때를 대비해 집안에 쌓아둔다.예를 들어 헌 타이어는 슬리퍼를 만드는데 사용하고 지나간 신문과 다 쓴 정부문서는 파지로 판매한다. 이 파지들은 종이봉투를 만들거나 물건 포장지로 사용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천으로 흔한 비닐이 이곳에서는 귀한 물건이다. 우리나라 60년대의 생활과 비슷하다 생각하면 될 것이다.절에서 교육해 문맹률은 크게 낮아미얀마 국민의 문자 해독률은 높다. 공식통계는 약 82 %퍼센트 정도이다. 사원의 교육제도 덕분이다. 소년소녀들은 사원에 가서 글을 배우고 그 대신 경내청소나 물길어오기 등 승려들을 위한 잔심부름을 한다. 미얀마의 현대적 학교 교육과정은 2년간의 취학전 과정, 초등학교 4년, 중등학교 4년으로 되어있다. 고등학교는 2년제이며 대학교는 대부분 4년제이다.아등들은 4-5세가 되면 배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대부분 4학년까지만 학교에 다닌다. 이러한 현상은 농촌지역에서 두드러지는데 농부들은 자녀들이 농사일을 도와주기 바라며 초등학교 졸업만으로도 교육이 충분하다고 여긴다.부산 보광사 법운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