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기 합동득도 수계자 행자교욱 수기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누구나 여러 갈래의 길 앞에서 자의든 타의든 선택을 하게 됩니다. 한 길을 선택하면 언제나 다른 길에 여운을 남기면서 흐르는 세월 속으로 묻혀 갑니다. 나도 또한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업과 인연의 길을 따라서 발심을 이정표 삼아 긴 여행을 떠나려 순천행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차 창밖의 풍경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 들판 그리고 터널들이 경주하듯이 달려왔다가 무의미하게 사라져 버리지만 나의 가슴속에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 찹니다.순천역에 도착했을 때 사방은 어둠속으로 빠져들었고 서둘러 오늘 여행의 종착지이자 새로운 생의 출발지인 태고총림 선암사를 향해 택시에 몸을 싣고 마음을 안정시키려 생각에 빠져들려는 찰나 택시기사께서 조용히 ‘왜 시끄러운 선암사에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언뜻 답할 말이 없어 물끄러미 창밖을 바라보는데 주위는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어둠속으로 빠져들고 있었고 나의 몸과 마찬가지로 마음도 미몽 속으로 빠져들어 이제까지 지나온 삶들이 뒤죽박죽인체로 스쳐지나 갑니다.초행길이어선지 아니면 앞날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없어서 인지는 몰라도 두려움에 젖어있던 나의 눈앞에 갑자기 하나의 환한 불빛이 이곳이 나의 새로운 출발지라는 것을 알려주듯이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생각과는 달리 매우 포근한 느낌으로 가슴속에 산사는 자리 잡기 시작하였고 지금까지의 모든 두려움과 망설임도 한순간에 스러져갔습니다.하루, 이틀 지나가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대중생활에 적응이 되고 부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다른 이들과 호흡을 맞추며 아직은 서툴지만 정성을 다하여 예를 다하고 행자로서의 행을 배우면서 이제까지 와는 사뭇 다른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다른 사람과 달리 약간은 늦은 출가인지라 남들보다 배는 더 하리라는 마음 자세로 맞은 첫날, 나지막한 염불소리에 잠을 깨어보니 어릴 때부터 너무나도 익숙한 모든 생명들이 놀라지 말고 서서히 깨어나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바로 그 도량석 이었고 이어서 범종 각에 오른 스님들은 법고 목어 범종 운판을 차례로 울린다. 이 소리들은 모든 중생이 번뇌로부터 벗어나라는 것으로 법고는 축생을, 목어는 수중 생명을, 범종은 지옥에 떨어진 중생을, 운판은 하늘을 나는 생명을 위한 것이라는 나중에 습의사 스님들의 설명이 있었습니다.새벽 4시 아침 예불. 행자들이 입방한 날 불필요한 물건들을 맡기면서 설명을 들은 바와 같이 묵언과 차수의 예를 갖추면서 줄을 지어 만세루로 향하였고 170여명에 이르지만 작은 속삭임도 없었다. 하늘의 별들은 이미 세상에서 보아왔던 그런 것이 아니었고 나 또한 어제의 내가 아님을 느끼며 종정스님과 습의사 스님, 어제 종무소에서 일면식을 익힌 스님들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엄숙함과 고요함 속에 부처님께 예로서 귀의하고 108배로서 마음을 가다듬은 후에 정갈하고 먹는 것에 대한 고마움을 깨우치게 발우공양으로 하루를 열었습니다. 이어서 한순간의 쉼도 허용하지 않는 교육과 사시불공 울력 등이 이어지고 저녁 예불과 한시간정도의 수행정진으로 하루를 마감 했습니다.처음에는 꿇어앉는 것이 너무 힘들고 108배만해도 숨이 턱에 차올랐지만 날이 갈수록 마음만은 오히려 몸이 힘든 것과 반대로 점점 더 고요해져만 갔습니다.이렇게 며칠이 반복되고 나서야 습의사 스님들이 그렇게 평상시에 강조하셨던 일상 속에서의 ‘습’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깨우치게 되었고 앞으로 수행의 길을 가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되었습니다.똑같은 일상의 반복으로 일주일이 지난 후 기이한 느낌이 나로 사로잡기 시작 하였습니다. 언젠가 이와 같은 일을 경험했다는 느낌 이었습니다. 도반들에게 이야기 할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더욱더 나에게 편안함을 가져다주는 이유이기도 하였는데 혹시 타성에 젖어 미몽 속에 빠지지나 않았는지 경계하기도 하였지만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도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 속에 빠져들어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이 편안함을 느끼게 될 때 안이함이 마음속에서 고개를 쳐들기 시작하였고 도반들 중에서도 이제까지 잊고 있었던 가족과 회향 날을 생각하는 것을 보고 또한 나 자신도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때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비울 수 있는 사건 아니 교육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오후 불식과 더불어 찾아 온 좌선수행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오후 불식이야 평상시 먹는 것을 중요시 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손쉽게 넘어 갈 수 있었지만 좌선수행의 정신 집중의 어려움이 나 자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행자로서 마음을 바로 할 수 있었습니다. 원래부터 가부좌가 잘 되지 않았던 나이기에 고통의 시간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정신 집중은 둘째 치고 고통 때문에 일분도 제대로 앉아있을 수 없었지만 이틀째 되던 날 습의사 스님의 말이 마음속에 들리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나 자신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습니다.“고통이 있으면 참는 것도 아니요, 받아들이는 것도 아닌 바로 직시하라”라는 말이 마음에 와 닿자 신기하게도 고통이 사라지는 것 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이때부터 가부좌로 앉을 수 있는 시간이 늘게 되어 화두를 들 수는 없었지만 정신이 평안히 집중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어 사심으로 방만해진 마음을 돌이켜 다시 한 번 수행에 정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속가에는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말이 있지만 행이 마음을 지배할 수도 있다 라는 생각도 깨닫게 되어 하찮게 여겨지는 단순한 일의 반복 속에서도 도가 있을 수가 있다 는 생각을 어렴풋이 하게 되어 다시 한 번 묵언, 차수, 안행이 마음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나 느끼게 됩니다.아쉬움 속에 마지막 주는 다가오고 많은 대외 행사가 계획되어 있었지만 예전 같으면 조금은 들뜬 분위기 속에서 맞을 수 있었겠지만 평온한 마음으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건전한 육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체육대회. 이전의 고승들의 발자취를 생각나게 하는 조계산 등정 및 이전에는 맛볼 수 없었던 일보일배 그 중에서 마지막 것이 백미였습니다.일보일배는 선대조사스님이 모셔진 부도탑부터 시작하여 승선교와 무상(無常)·무아(無我)·고(苦)인 삼법인의 의미를 담고있는 삼인당 연못을 돌아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에 이르는 그리 길지 않은 길이었지만 자신을 돌이켜보아 발심의 결심을 더욱더 공고히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 온 정성을 다 할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지금부터 시작이라 언제나 하심 할 수 있는 마음을 공고히 하였고 많은 도반들의 일치됨이 외롭지 않아 힘들지 않았고 잡념 없이 공이라는 것을 한 가닥 이나마 잡을 수 있었습니다.이 까닭으로 회향식 날을 담담하게 맞이하게 되어 만인 앞에서 부처님의 제자로서 시작됨을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었습니다. 끝까지 자기 자신을 포기 하지 않으며 함께한 도반들과 지도해주신 습의사스님 그리고 종단의 어른스님들께 감사드리며 스님의 길로 인도해주신 은사스님 은혜에 가슴 깊이 세기며 반듯한 스님의 길로 갈 것을 다짐하며 이제 출가자의 행과 식이 마음과 일치함을 느끼게 되어 진정으로 부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한다는 마음과 다시 천년고찰 수행도량 선암사에 돌아 올 수 있기를 기원 드리며 산문을 나서 먼 수행의 길을 시작합니다. 제30기 합동득도 수계자 법송 두손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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