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지사(一字知師)를 찾아 뜰 아래로 내려서며

                                                    민법현(태고종 사회부장)


법안(法眼)스님께
입춘이 지난 지 한 달이 다가오는데도 바깥 날씨가 제법 쌀쌀해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하지만 마음 여미기에는 오히려 좋은 듯합니다. 스님 계시는 북한산의 찬바람이 골짜기를 따라 이곳 역촌중앙시장에도 불어오는지 법당 안이 서늘합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하던 사람도 하릴없이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새삼 아쉬워 할 일은 없겠으나 오랜만에 태고종과 조계종의 관계가 썩 좋아져서  불교계 전체의 분위기도 좋아지고 있는 때 몇 가지 일들이 혹시 시계 바늘을 뒤로 돌리는 게 아닌가 걱정하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천년고찰로 우리스님들이 늘 살아온 봉원사 땅을 조계종 총무원에서 발령 낸 조계종 측 봉원사 전 주지가 팔아버렸다고 조계종 총무원과 스님께서 밝힌 일입니다. 둘은 태고종의 스님들이 만든 태고종사라는 책이 조계종을 폄훼했다고 조계종에서 주장하고 있는 일이지요.

조계종과 태고종은 해묵은 사찰소유권 분쟁을 대화를 통해서 마무리 짓자고 스님과 제가 앞에 서서 어른 스님들을 모시고 머리를 맞대고 있는 중인데 참으로 딱하고 안타까운 일입니다.  생각이 바르고 불교전체의 앞날을 위해 정진해 오신 스님께서 봉원사 문제는 바로 잡아 본디 모습으로 되돌려 주시리라 믿습니다.

태고종사는 해방 이후의 전통을 주장하고 있으나 70년도에 태고종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저희 종단에서는 후학들에게 읽히게 할 종단의 역사서가 없어서 고민하였는데 종단사간행위원회라는 모임에서 자비를 들여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7년여 만에 세상에 나온 태고종사가 자료를 바탕으로 썼지만 우리의 시각에서 쓰이다 보니 스님 종단의 가슴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 있었나 봅니다. 그래서 저희 종단에서 해결의 열쇠를 드려야 할 것으로 보여 소임자들이 가슴을 열고 머리를 맛 댄 적이 있습니다. 가슴 폭폭한 이야기들도 많이 나왔으나 마지막 맺어진 한마디는 열어주자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제가 어느 어른 스님께 지도받은 가르침을 대화의 주제에 올렸습니다. 제기(齊己)라는 중국스님이 매화를 소재로 한 조매시(早梅詩)를 지어 정 곡(鄭谷)이라는 시인에게 보여주었다고 합니다. 그의 시에 “몇 가지의 꽃봉오리가 벙글었다”는 뜻으로 수지개(數枝開)라는 시어가 있었는데 정곡이 “한 가지의 꽃봉오리가 벙글었다”는 의미의 일지개(一枝開)라 하는 것이 더 운치 있겠다고 하였다지요? 딱 한 글자 고쳤는데 그 멋스러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졌음을 안 제기스님은 바로 뜰아래로 내려가 엎드리며 “스승을 뵙겠습니다”고 했다 합니다.

인종(印宗)법사가 노행자(盧行者)를 법상에 모시듯, 묵산(?山)스님이 백봉(白峯)거사를 시봉하듯 공손하게 부처님처럼 모셨나봅니다.

『당시기사』에 나오는 일자지사(一字知師) 즉 한 글자를 고쳐서 글을 바르고 멋있게 해 준 이를 스승으로 모시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새삼 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이유를 저희 종단의 어른스님들께서 살펴주셨듯이 슬기로우신 스님께서는 첫머리에서 이미 간파하셨을 것입니다. 뿌리가 같았으나 생각이 달랐던 스님들끼리의 다툼에 다른 이들의 손길도 더해진 우리의 근대사는 참으로 한 두 시선으로 살피기 어렵고 한 두 마디 말로 가늠할 수 없으리라 봅니다.

사실 여러 갈래로 갈라져 들어오는 물줄기를 보고 너는 어째서 찢어져 들어오느냐고 나무라도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한 여름 물난리에 물길이 흐트러지더라도 가을 겆이 할 때쯤은 도로 바로잡아져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럿이 여러 번 만나 자세히 살피고 마음 속 깊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못이 있으면 나부터 참회하고 난 뒤에라야 앞날의 계획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어느 누구라도 자기의 토대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한 마르크스의 이론이 아닐 지라도 자신의 속한 집단의 처지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저희 책자에 한 점 오류도 없다고 자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눈 밝은 스님께서 잘못된 점을 바로잡아 주시기를 뜰아래로 내려가 기다리겠습니다. 그리하여 명상과 문화의 세기인 21세기의 출발선에서 가장 주목받는 종교사상을 생활의 모토로 삼고 있는 우리가 지난 세기의 멋스럽지 못했던 부딪침을 돌려서 우리의 마음을 터놓는 대화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습니다.

글이나 책에서 벌어진 문제가 있다면 글이나 책으로 풀어가기를 바랍니다. 재래시장 안에서 볶아대는 여러 가지 음식이 섞인 묘한 냄새를 늘 맡고 사는 열린선원에 찾아와 앉곤 하는 파랑새가 선열식(禪悅食)으로 먹지 않는 배부름을 만끽하도록 시원한 바람을 보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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