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춘상현 지음, 불교서원 刊, 값 20,000원

"구병시식은 단순히 악귀를 쫓아내려는 퇴마의식이 아니라  관세음보살님 위신력에 의지한 슬기롭고 따뜻한 천도의식"

종교는 출발 자체가 이미 사후의 세계에 대한 긍정적 견해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유가족이나 주변 지인들의 정성과 노력이 유명을 달리한 망자에게 바람직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교설은 불교에만 존재한다. ‘천도(薦度)’가 그것인데 구체적 방법으로 제시된 것이 이른바 ‘시식(施食)’이다.

연원은 깊어 <염구아귀다라니경(焰口餓鬼陀羅尼經)>에서 보듯 석존 재세시부터 있어 온 일이지만 세기를 거듭하며 종류와 형태가 분화 발달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시식의 종류로는 전시식(奠施食),  관음시식(觀音施食), 화엄시식(華嚴施食), 그리고 구병시식(救病施食)  등 4종이 있다.

‘전시식’은 불가의 4대 명절 및 특별히 기념할만한 의식에서 법회를 통해 조성된 공덕을 영가제위의 몫으로 돌려 천도하려는 시식이다. ‘관음시식’은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에 의지하여 주인공인 망자와 영가제위의 천도를 도모하려는 시식으로서 사십구재를 위시한 천도재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시식이다.

‘화엄시식’은 안거기간동안 매일아침 거행하는 하단시식으로서 산림(山林)에서의 공덕을 영가제위에게 회향하여 천도하려는 시식이다.
이에 비해 ‘구병시식’은 책주귀신의 침책(侵嘖)으로 인한 고통 즉 귀병(鬼病)을 치유하려는 시식이다. 따라서 인과의 도리로써 환자와 책주귀신을 함께 깨우쳐 원결을 풀 수 있도록 관세음보살님의 위신력에 의지하여 거행하는 지혜와 자비가 총동원된 천도의식이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와 옥천범음대학 교수인 만춘스님이 원(元)의 몽산덕이(蒙山德異, 1232~1298) 화상 편 <구병시식의문(救病施食儀文)>과 백파긍선(白坡亘璇. 1767~1852) 편 <구병시식의(救病施食儀)>, 안진호(安震湖. 1880~1965) 편 <구병시식(救病施食)> 등 3개의 본(本)을 모범 및 산보(刪補, 불필요한 것을 깎아 내고 부족한 것을 보충함)하고 나름의 해설을 붙여 <주해(註解) 구병시식>을 펴냈다. 스님은 이 책에서 시종 “구병시식이 슬기롭고 따뜻한 천도의식”임을 강조하고 있다.

구병시식의문에 등장하는 귀신은 책주귀신을 위시해 수십 종류가 넘는다. 그러나 저자 만춘스님은 불교에서의 구병시식이 단순히 악귀를 쫓아내려는 목적으로 베푸는 퇴마(退魔)나 구마(驅魔)의식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범망경(梵網經)>에서 ‘육도의 중생이 모두 나의 부모(六道衆生皆是我父母)’라 하셨으니 이를 바탕으로 생각하면 책주귀신 역시 윤회를 거듭하며 인연을 함께 해온 내 부모임에 틀림없다. 설령 나를 힘들게 했거나 하더라도 이런 이치를 안 이상 함께 아파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헤쳐 나가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흔히 구병시식은 법력(法力) 있는 스님이 집전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법력이란 오랜 수행에서 나오는 지혜와 자비이다.

▲ 만춘스님.
이 책을 집필한 만춘스님은 “그동안 구병시식이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한기(寒氣)가 느껴지곤 했는데, 이 책의 집필을 계기로 구병시식이 얼마나 슬기롭고 따뜻한 천도의식인지를 알게 되었고, 3조 승찬선사가 <신심명(信心銘)>에서 ‘털끝만큼이라도 차이가 있으면 하늘과 땅 사이로 벌어진다(毫釐有差 天地懸隔)’고 하신 말씀처럼 성불과 윤회의 길이 한 생각에 달려있다는 사실도 새삼 실감하였다”면서 “아무쪼록 많은 분들의 공감으로 당사자는 고통을 덜고, 삼계만령은 길을 찾아 무시겁래(無始劫來)의 윤회를 멈추고 모두 함께 열반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고 머리말에서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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