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1일, 불기 2560년 하안거 결제일을 맞아 태고총림 선암사를 비롯 전국의 선방이 하안거에 들었다. 스님들과 재가자 참선객들이 석 달 동안 일체의 외부 출입을 끊고 오직 수행에만 몰두하는 정진에 들어갔다.

문명비평가들은, 희망적 21세기를 이끌어가는 모티브로써 ‘생태’와 ‘영성’, ‘문화’의 조화를 지적한다. 어떤 사람이나 단체, 종교나 이데올로기가 인기를 얻어서 널리 펼쳐지려면 마땅한 콘텐츠를 갖추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이들 셋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생태적 사상과 활동방법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자기나 자기가 속한 단체를 지속적으로 발전하게 하려면 생태사상에 충실하게 로드맵을 작성하고 그대로 실천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모여서 생산활동을 해서 이익을 추구하고 살아가는데 그것이 옳은지 그른지를 살펴내고 목표를 이룰 때까지 관심을 놓지 않고 밀어주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영성(靈性)이다. 또 그것을 이끌어가는 재미가 있어야 하기에 다양한 방법론과 도구를 활용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문화이다.

우리 종단은 우리들의 삶을 위해 다른 존재들의 삶을 위협하는 새롭고도 커다란 시설물들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8천 법려와 500만 종도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사랑하는 태고총림 선암사만 해도 유네스코에 등재하려고 하는 전통사찰 가운에 으뜸으로 옛 모습과 생태환경을 지키고 있다. 게다가 이미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50호이자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영산재는 우리나라를 뛰어넘어 아메리카, 유럽, 아시아를 넘어 중동지역에까지 그 예술성과 종교성을 마음껏 자랑하고 있다.

그동안 이 두 가지는 충분하게 가지고 있는 콘텐츠였으나 영성만큼은 조금 모자라지 않은가 하는 평가가 없지 않았다. 초기불교의 사마타수행이든, 삼마디수행이든, 위빠사나수행이든 아니면 대승불교의 화두참선이든, 염불선이든, 주력수행이든 어느 것을 선호하고 수행하더라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종교보다도 가장 뛰어난 영성을 가지게 하는 방법이 바로 참선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수행자들이 숲처럼 모여 살 수 있는 많은 도량을 빼앗기고 나서 참선수행을 하는 이들이나 그 밀도가 낮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우리 종단은 마조도일 선사의 ‘평상심시도’의 전통을 이어받은 임제종 계통의 태고보우 국사를 종조로 모시고 수행해 왔으며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올곧게 이으려고 노력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음을 늘 새겨야 한다.

다행스럽게도 총림 선암사 선원에 방부 들이는 수행자가 이어지고 있으며 짧은 단기 결제라도 하고자 하는 스님들도 간간히 이어지고 있다. 이 분위기를 더욱 더 지속하고 높이기 위해서는 마음을 모으고 지혜를 짜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선할 것은 모든 종도가 수행과 전법은 출가자의 권리이자 의무라는 것을 마음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종단과 총림의 지도자들은 종도수행자들을 잘 이끌어가는 선교방편(善敎方便)을 계발해야 한다. 그래서 정말로 빽빽한 숲의 나무들처럼 많은 수행자들이 총림과 곳곳의 사찰에서 안거하는 전통을 정착시켰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 총무원에서 실시하는 각종 연수교육과 단기 안거를 교차 배치해서 종도라면 누구라도 1년에 1~2주 정도는 함께 안거하는 제도와 프로그램을 마련하길 바란다.

옛 전통을 지닌 어른 수행자들을 존중해 모시고 새로운 전통을 익히고 있는 수행자들도 발굴해서 조화를 이루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물론, 산속의 총림 뿐 아니라 도심의 작은 사찰에서도 재가자들이 나름의 수행과 단기 안거라도 할 수 있는 모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지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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