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신문 제 632호(2015년 1월 16일자) 사설

불기 2559(2015)년 을미년(乙未年) 새해가 시작되었다. 양(羊)의 해를 맞아 모두들 양이 가진 이러저러한 의미를 살펴보고 새해에는 양처럼 순하고, 때로는 양처럼 저돌적이며 진취적이고 화합하는 한 해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우리 종단의 입장에서 양의 의미를 살펴보면 무엇보다 종도들의 관심과 참여 속의 화합이라고 하겠다.
한자어 ‘무리’라는 뜻의 ‘군(群)’은 양들이 모여 있음을 의미한다. 양들이 이처럼 무리를 짓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그것은 아마도 힘이 약하고 주변여건이 척박한 곳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조직적인 일사불란함이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이들이 무리를 이탈할 경우 생명의 위태로움에 직면한다.
세간에서 평가하는 우리 종단의 위상은 예전같지 않다. 이미 일부 언론에서는 종단의 서열을 나타내는 호칭 순서마저 세 번째로 표기하고 있다. 종도나 신도, 사찰의 수(數)에서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으면서도 이러한 평가를 받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제대로 된 무리를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무리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화합이 우선이다. 승가 공동체의 으뜸 가치가 화합이라는 부처님의 당부가 있었지만 우리가 제대로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평가를 받는 것이다.
화합은 말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화합의 전제조건은 위계(位階)라고 하겠다.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화합도 가장의 권위와 책임을 인정하고 떠안아야 하며 가족 개개인도 자기 역할을 해야 하는데 몇 천 명의 종도들이 무리지어 있는 종단의 화합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눈에 띄는 종단의 위계는 소임과 법계이다. 그리고 법계와 소임의 자격 기준과 선출 방법은 종법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소임자들이 독단적인 행태로 종단을 좌지우지하면서 쓴 소리에 귀를 닫고 순종하는 자들만으로 종단을 이끌어가는 한편 올곧은 말을 하는 자들을 해종 행위로 몰았다.
일부에서는 종단과 자기는 무관하다는 무관심이 미덕인 양 난 체하는 이들이 오히려 도인(道人)으로 행세한 결과 종단의 위상이 추락하고 마침내 막대한 부채로 인해 파산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지난해 종단청문회를 거치면서 종단의 치부가 가감 없이 드러나고 종단부채를 발생하게 한 책임자들이 밝혀진 이상 이제는 해결의 국면에 들어가야 할 때다. 하지만 맹목적인 추종자들을 거느린 수구세력의 반발로 종단은 지금 홍역을 치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 길은 종도들의 관심과 참여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앞에서 지적했듯 시끄러운 종단 일이 내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더 이상 우리 종단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만약에 종단이 무너진다면 내가 속한 사찰과 승려의 신분이 어찌 되겠는가를 깊이 생각해 보자.
설핏 보기에는 종단이 없더라도 상관없는 듯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하는 경우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마치 물속에 살고 있는 물고기가 물의 고마움을 잊고 사는 것과 같지 않겠는가. 그러한 점에서 종단에 대한 관심 없이 양비론적인 비판만을 일삼는다면 이는 비판이 아닌 무책임한 비난에 지나지 않는다.
한자어 ‘아름다울’ 미(美)는 양(羊)이 살찌고 커짐을 의미한다. 종단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종도들의 관심과 참여라는 ‘초원’이 필요하고 지도자를 믿고 따르는 데서 안정과 발전이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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