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신문 제 630호(2014년 11월 20일자) 시론

▲ 이용권(원광디지털대 교수)
갑오년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금년 한 해를 보내면서 무엇보다 기억에서 놓지 못할 일은 ‘노란색 리본’의 물결이다. 그 물결은 아마 연말이 지나더라도 계속될 수 있다.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팽목항은 자원봉사 인파로 성시를 이루었다. 대규모 재난에 희생된 이들을 구호하고 그 가족들의 슬픔을 위로하는 자발적인 활동이 이어졌다. 각 종교계에서는 생사를 넘나드는 이번 사고에 대하여 적극적인 지원활동을 전개하였다. 물론 태고종을 비롯한 우리 불교계에서도 유가족을 지원하기 위하여 임시법당도 설치하고 응급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하면서 노력봉사활동을 전개하였고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전문 복지 프로그램도 가동하였다.
자발적인 봉사활동이었기 때문에 연합 형태의 상호 협력에 관한 논의가 충분치는 않았으나 각 종교별로는 나름 협력 체계가 이루어졌다고들 자평했다. 종교계의 복지나 봉사활동이 일반 활동과 차별성을 가지는 이유는 물질계의 보이는 활동보다 정신계의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구원의 구체성과 효과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생사를 다루는 문제이며, 전문 의료분야 마저도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이런 문제를 포함하여 국가 정책으로 재난을 예방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입법화하고 국민의 안전 문제에 이르기까지 개입하여 다방면의 면역효과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상당한 전문인들의 공조가 필요하며, 때로는 여론을 일으켜서 국가를 경영하는 지도자들의 심중을 움직여 정책화 하는 일까지 공조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나마 불교계가 그 동력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정해진 수순에 따라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갈 수 있는 이유는 그동안 길러온 불교복지와 봉사 참여 경험을 통해 내성을 길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세월호 사건 뿐만 아니라 다른 복지와 봉사 분야도 즉각 개입하고 참여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몇 가지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첫째는 봉사 인력이 조직화되어 있어야 하고, 대상자를 케어할 수 있는 물적 자원이 평상시에 비축되어 있어야 한다. 그것만으로 충분치 못할 경우 긴급 구호에 응하는 조직이 정비되어 있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 정도이나 그것이 일반 복지와 봉사 영역의 전부일 수 있지만 종교복지·봉사는 그것이 시작일 뿐이다. 부처님께서는 ‘요익중생(饒益衆生)’이라 하여 부처님 법을 전하기 위해서는 우선 배고픈 사람에게 밥을 주고 병든 이는 치료하라 하여 그것을 복전(福田)으로 권장했다. 그리고나서 반드시 부처님 가르침으로 교화하여 스스로 자활할 수 있는 의지를 회복하도록 했다. 그 뿐만 아니라 구호의 대상자가 재활한 후에는 스스로가 은혜를 잊지 않고 또 다른 이를 위한 보살행을 하게 함으로써 이 땅을 ‘불국정토’로 화현하는 과정을 설정하셨다. 그래서 자비를 가르치되 중생연(衆生緣)자비, 법연(法緣)자비, 무연(無緣)자비의 3종 자비를 설하셨다. 자비의 실천사상인 보시를 말하되 재시(財施),법시(法施),무외시(無畏施)를 설하여 그 실천 과정과 종착적 목표를 분명하게 하셨다. 다시 말해서 자비나 보시의 단순한 종류가 아니라 복지와 봉사의 실천 과정과 단계적 설정을 말씀하신 것이다. 결국 그 궁극적 목표는 개인의 구원을 넘어서 생명있는 모든 중생이 나고 죽는 고통이 없는 ‘불국정토’를 이루는 그 날까지 정진하는 과정이 수행이며, 불교 사회복지와 봉사는 그 중 수승한 수행법인 셈이다.

현재 우리나라 불교복지 사업은 타종교에 뒤지지 않을 만큼 양적인 성장을 했지만, 현재 위치에서 볼 때 불교계가 부처님 가르침대로 복지사업이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고는 누구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불교계의 그 많은 인적, 물적 자원을 투자해서 오는 결과가 복지 대상자들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고도 오히려 의타심을 키운 결과를 초래하거나, 건강을 되찾은 몸으로 또 다른 욕망을 채우려는 욕심을 부추겼다면 그것은 복지가 아니라 오히려 부처님 앞에 죄를 짓는 결과를 초래할 수 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오히려 복지 재원을 충분하게 확보하지 못할 바에야 부처님의 정신적 가르침을 충실하게 스스로 실천하는 모습을 잘 보여서 복지 대상들이 보고 배워 안심입명(安心立命)함으로써 마음의 행복을 얻게 하는 일이 오히려 불교복지 봉사의 본향(本鄕)일 수도 있다.
불교의 아름답고 복지적 의미를 지닌 무형문화재의 근본 의미를 아름답게 잘 보전하고 보여주는 것 또한 그래서 재시(財施)보다 훌륭한 법시(法施)가 될 수도 있는 것이며, 오히려 그것이 불교복지의 정체성일 수 있음을 우리가 지혜롭게 깨우쳐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전통을 충실하게 이어오는 한국불교 태고종의 사회복지와 봉사는 이렇게 불교복지의 정체성을 겸비한 차별화된 방안을 찾아 실천하는 것 또한 훌륭한 국민 정신복지를 향상시키는 방법론일 것이다.

이용권(원광디지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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