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영의 ‘그릇’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그릇/ 언제인가 접시는/ 깨진다. // 생애의 영광을 잔치하는/ 순간에/ 바싹/ 깨지는 그릇, / 인간은 한 번/ 죽는다.// 물로 반죽되고 불에 그슬려서/ 비로소 살아 있는 흙,/ 누구나 인간은/ 한 번쯤 물에 젖고/ 불에 탄다.// 하나의 접시가 되리라./ 깨어져서 완성되는/ 저 절대의 파멸이 있다면, /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그릇.

- 오세영의 〈그릇〉 전문

 

한 달 전 즈음 한국시단의 거목인 오세영 시인을 모시고 저녁 식사를 했다. 이날 저녁은 올해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자인 김제이 시인이 마련한 자리였다. 이 자리에서 오세영 시인은 필자에게 자신의 시선집 《수직의 꿈》을 선물로 줬다. 필자는 며칠 동안 이 시집을 정독했고, 오세영 시인만큼 불교적 사유가 깊은 시편들을 남긴 시인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위 시편의 제재인 그릇은 지(地), 수(水), 화(火), 풍(風) 등 사대(四大)로 만들어졌다. 흙에 물을 부어서 그릇을 빚은 뒤 장작불이 타는 가마에 구워야 한다. 불이 활활 타오르려면 바람이 필요하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릇이 바짝 타서 부서지지 않게 것도 바람의 역할이다. 사대로 만들어진 그릇은 깨어지는 순간 다시 지수화풍으로 돌아간다.

어디 그릇뿐이랴. 아득한 별빛들을 올려다보면서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하는 존재론적 화두를 갖고, 나아가서는 ‘우주는 어떻게 생멸하는가?’하는 심원한 진리를 탐구하는 인간들도 죽으면 지, 수, 화, 풍으로 돌아간다.

어디 인간뿐이랴.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체는 흙과 물과 불과 바람으로 만들어지고 성장하여서 결국 죽은 뒤 다시 흩어지는 것이다. 선대의 조사님들께서 “그저 육신이 사대로 흩어지는 것이니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고 하신 것도 이 때문이다. “깨어져서 완성되는 저 절대의 파멸”의 그릇에서, “흙이 되기 위하여 흙으로 빚어진 모순의 그릇”에서 우리는 생사해탈(生死解脫), 내지는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깨달음을 읽어야 할 것이다. 지ㆍ수ㆍ화ㆍ풍에다가 공(空)을 보태어 오대(五大)라고도 한다.

그릇을 보라. 천장은 뚫려 있고 바닥은 닫혀 있어서 무엇이라도 담을 수 있는 우묵한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비어 있으므로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이치를 아는 까닭에 오세영 시인은 “강물은 강물로 흐르고, 바다는 바다로 푸르고, 까투리 장끼 곁에 눕고, 달빛은 눈썹 위에 쌓이고, 은하는 귀밑머리 적시고, 별빛은 이마에서 꿈꾸는” 새벽 세시에 “화엄경 보살십주품”을 읽는 것이리라.

이 경전을 읽으면서 “일(一)은 다(多)이고, 다(多)는 일(一)이며, 가르침에 따라서 의미를 알고 의미에 의하여 가르침을 알며, 비존재는 존재이며 존재는 비존재이며, 모습을 갖지 않는 것이 모습이며 모습이 모습을 갖지 않는 것이며, 본성이 아닌 것이 본성이며 본성이 본성이 아닌” 이치를 마음속에 되새기면서 “가슴으로 내리는 썰물소리”, “갈잎소리”를 듣는 것이리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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