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범 / 북한불교연구소 소장

부처님 당시에도 물과 연관된 다툼이 잦았다. 부처님이 교화에 나선 지 5년째 되는 해, 샤까족과 꼴리야족 사이에 일어난 물싸움이 대표적이다. 인도 북부의 작은 로히니 강을 사이에 두고, 평화롭게 살던 두 부족에는 그해 여름 백 년만의 가뭄으로 생존을 위한 다툼이 생겨났다.

로히니 강물을 사용하던 양측 두 농부의 다툼은 급기야 부족 전체의 전쟁으로 비화하였다. 두 부족의 용감무쌍한 장군들이 코끼리 부대와 칼과 창으로 무장한 병사들이 앞다투어 로히니 강 언덕으로 모여들었다. 전운이 감도는 로히니 강가에 부처님이 나타나면서 평온을 되찾았다. 그 싸움은 물보다 사람이 훨씬 더 소중하다며 때를 기다리자는 부처님 말씀에 두 부족의 왕은 머리를 숙여 인사하며 화해를 하자. 며칠이 지나지 않아 큰비가 내려 가뭄이 해소되었다고 한다.

당시 부처님은 인간의 폭력성이 다툼으로 나타나는데, 그리 크지 않은 욕심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려준 계기였다. 그 일화는 로히니 강물에 얽힌 사건만 아니라 지구촌의 물 부족에 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생명의 근원은 단연코 물이다. 물이 존재하는 유일한 행성인 지구엔 인간을 포함한 생명체가 살 수 있는 밑바탕이다. 지구의 3분의 2가 바닷물로 이루어졌다. 지구가 품고 있는 물 가운데에 97.5%는 인류가 사용할 수 없는 염분을 함유한 바닷물이다. 나머지 2.5%의 물이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민물이다. 이마저도 빙하와 영구동토 그리고 지하수 등으로 존재하므로 사람이 사용하기 어렵다. 사용할 수 있는 물은 호수나 강, 하천의 물로 그 양은 지구 전체 담수의 0.39%에 불과하다. 공업용수를 비롯한 일본 후쿠시마 핵 오염수로 인한 오염된 물과 동식물이 함께 사용해야 하는 물까지 계산하면 사람이 쓸 수 있는 물의 양은 더욱 줄어든다.

기원전 5세기, 중국 도가철학의 시조 노자는 《도덕경》 상권에서 물이 지닌 큰 덕을 칭송했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上善若水]. … 물은 이롭게 하되 다투지 않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있다. 그러므로 도(道)에 가깝다. 거처함은 땅과 같이하고, 마음은 깊은 못과 같이하는 것이 선(善)이다.” 그것은 첫째, 물은 만물을 이롭게[利萬物] 한다. 생명체는 물 없이 살 수가 없다. 지구 생명의 기원인 물은 모든 생명의 원천이다. 동식물도 물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다. 이처럼 물은 모든 것을 이롭게 한다.

둘째, 물은 만물과 다투지 않기에 허물이 없다[夫有不爭故無尤]. 막히면 돌아가고, 부딪히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인다. 각진 그릇에 담기면 각지고, 둥근 그릇을 만나면 둥근 모습이 된다. 물은 처한 조건과 다투지 않으니 허물이 없다. 세상사에 잘못과 허물은 타인과의 다툼에서 생긴다는 것을 일깨운다.

셋째, 물은 유연함의 상징이다. 항상 겸손하고 욕심 없이 유연하게 흐르고 멈추기를 반복한다. 그렇다고 물은 불의에 외면하지 않는다. 때론 폭포수와 해일같이 강력한 무기가 되어 그 위용을 선보인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는 순리처럼 물은 제 길을 간다. 인고의 노력과 이치에 따르는 물은 언제나 지혜롭다.

넷째, 물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 성질은 높은 곳에서 항상 낮은 곳으로 향한다. 깨끗함만을 고집하지 않고, 시궁창이라도 꺼리지 않으며 심지어 그곳을 정화한다. 그래서 물은 자연의 도를 닮아있다.

다섯째, 물은 부족함과 넘침을 안다. 크고 작은 그릇을 탓하지 않는다. 무너미 언제(물이 차면 자연 방류되는 보)를 만난 물은 부족하면 흐르지 않고 기다린다. 비가 와서 넘침을 알게 될 때 비로소 흐른다. 머무를 때와 떠날 때를 아는 것과 같다. 그러하기에 흐르는 물은 새 물길을 내고, 마침내 드넓은 바다에 닿는다.

이처럼 물은 멈춤과 지나감을 알고 있다. 또 언쟁하거나 싸우지 않는다. 단지 다시 만나기 위해서 돌아갈 뿐이다. 물에서 배우는 지혜로움은 나의 잘못에 대한 진정한 용기를, 관용과 배려가 필요한 오늘날에 작은 권위로 벌이는 꼰대 짓보다 너그러움을, 시시비비가 많은 현대사회에서 잘잘못을 가리고 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물의 지혜가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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