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지훈의 〈승무〉

얇은 사(絲) 하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파르라니 깎은 머리/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두 볼에 흐르는 빛이/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 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버선이여,/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깊은 마음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三更)인데/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조지훈의 〈승무(僧舞)〉

 

조지훈(1920~ 1968) 시인은 청록파 중 한 사람으로서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중학 과정을 마치고서 혜화전문학교(현재 동국대)에 입학하여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이번에 소개하는〈승무〉는 1939년 《문장》지에 발표한 조지훈 시인의 대표작이다. 조지훈 시인이 〈고풍의상〉과 〈승무〉를 추천받아 등단했다는 점과 약관(弱冠)의 나이에 이 작품을 썼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의 시적 재능은 그야말로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할 수 있다.

동국대의 전신인 혜화전문학교 출신이어서인지 조지훈의 시편들은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강원도 월정사 강원 강사와 동국역경원 역경위원을 지낸 이력에서 알 수 있듯 조지훈 시인은 당시 불교계 선지식 중 한 사람이었다.

조지훈은 〈지조론(志操論)〉을 쓸 만큼 '지조'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문사였다. 조지훈의 고향인 경북 영양군 일월산 자락의 주실(舟室) 마을은 한양 조씨들이 400년 동안 일군 집성촌이다. 주실마을의 조씨들은 '검남(劍南)' 집안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검남 집안은 삼불차(三不借), 즉, 세 가지를 빌리지 않았는데, 첫째, 재불차(財不借), 재물을 빌리지 않았고, 둘째, 문불차(文不借), 문장을 빌리지 않았고, 셋째, 인불차(人不借), 사람을 빌리지 않았다. 실제로 조지훈의 집안에서는 370년 동안 양자를 들이지 않고 혈손으로 대를 이어왔다고 한다.

불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면서 지조와 절개의 정조를 지니고 있는 작품이 바로 〈승무〉이다. 이 작품은 약간의 수정을 거친 뒤 1946년 발간된 《청록집(靑鹿集)》에 수록됐고, 1952년『풀잎 단장(斷章)』과 1956년 《조지훈시선(趙芝薰詩選)》에 다시 수록됐다.
시적 화자는 여승의 승무를 지켜보면서 춤사위와 하나가 된 달밤의 산사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흰빛의 고깔을 접어 쓴 여승의 자태를 “나빌레라”라고 비유하여 감탄하는 대목에서는 시인의 천재성이 나타난다. 이어서 황촉불이 밝혀진 넓은 법당과 달빛에 젖어 있는 오동잎이 묘사된다. 이를 통해서 승무의 춤사위와 그 현장인 산사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돌아설듯 날아가”는 소매 자락과 “접어 올린 외씨버선”을 묘사한 뒤 시적 화자는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라는 표현을 통해서 승무를 추는 여승이 일순간 번뇌를 벗어나 열반의 경계에 들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이 작품의 최고 백미는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라는 표현이다. 위 표현은 “청천(靑天)하늘엔 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엔 한도 많다”라는 아리랑의 노랫말을 떠올리게도 하고, “번뇌가 곧 보리菩提)”라는 《육조단경》의 구절을 떠올리게도 한다.

객진번뇌(客塵煩惱)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번뇌는 본래부터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들어와 청정한 마음을 더럽히는 것이지만, 번뇌가 있어야 보리도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환자가 없으면 의사가 필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시적 화자는 춤사위를 거룩한 합장으로 묘사하면서 시를 마무리 짓는다. 이 대목에서 승무는 선정(禪定)으로, 춤사위는 삼매경(三昧境)으로 승화되는 것이다.
조지훈 시인이 시론집 《시의 원리》에서 밝혔다시피 이 작품은 오랜 시일에 걸쳐 다듬어 완성된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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