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역(曆)에는 태양력, 태음력, 절기력이 있다. 태양력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것을 측정해 날을 세어가는 법칙으로 만들었고, 태음력은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을 한 달로 잡고, 여기에 3년마다 한 번씩 윤달을 넣어 계절의 변화를 맞춘 것이다. 음력은 해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되는 계절의 변화와 잘 맞지 않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나온 게 절기력이다. 태양의 고도와 그림자의 길이를 측정하여 만든 1년 24절기를 기준으로 하여 순서대로 적어 놓은 것인데, 절기일에 측정한 해의 길이와 태양의 고도는 한 치의 오차가 없다. 이를 기초로 만든 게 60간지(干支)이다.

태양력의 새날은 양력 1월 1일(新正)이고 태음력의 새날은 음력 1월 1일 설이다. 지금은 음력으론 아직 계묘년의 마지막 달이다. 절기력으로 보면 가장 춥다고 하는 대한(大寒)이 지난, 겨울의 끝자락이다. 절기력에서 새해의 시작은 입춘(立春)이다. 24절기 중 첫 번째로, 보통 양력으로는 2월 4일 경이다. 글자 그대로 입춘은 봄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다. 입춘과 설날이 지나야 갑진년이라는 새로운 시공간에 들어서게 된다.

예로부터 민간에서는 입춘을 맞아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대문이나 기둥 또는 벽에 글씨를 써 붙여왔는데 이를 입춘방이라고 한다. 보통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등 좋은 의미가 담긴 문구를 많이 활용한다. 사찰에서 올리는 입춘불공에서도 부적에 해당하는 다리니[眞言]와 입춘방을 나눠주는 풍습이 전승됐다. 민간에서 입춘을 ‘삼재(三災) 소멸의 날’로 여겼던 풍습도 절집에 스며들었다.

2006년 입춘에 열린선원 법현 스님은 ‘새봄맞이 부처님 씻어드리기 법회’를 열었다. 형식은 이렇다. 스님이 경상(經床) 앞에 앉아 《최고의 행복경(대길상경)》, 《법구경》 등의 경전 독송을 시작한다. 이때 불자들은 법당 수미단에 모신 원불을 조심스럽게 내려 법당에 가지런히 준비해 둔 책상 위로 이운한 뒤, 정성스럽게 붓으로 불상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의식을 행한다. 불자들은 불상의 먼지를 털어내면서 자신의 마음에서도 대상에 따라 일어난 먼지(번뇌)가 떨려 나가기를 발원한다. 이어 스님은 “부처님께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드리듯 마음과 입, 몸으로 짓는 업인 생각, 말, 행위를 바르게 하면 삼재(三災)가 들어올 수 없으니 삼업을 늘 청정하게 하자”는 내용의 법문을 설한다. 여느 사찰과는 다른, 새로운 형식의 ‘삼재(三災) 풀이 법회’다. 우리 스님과 불자들이 주목해야 할 이 법회는 올해도 봉행된다.

-월간〈불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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