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가사와 시치로의 ‘나라야마 부시코’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형기의 〈낙화〉에서 인용

 

눈 내리는 겨울이면 필자가 책장에서 꺼내서 다시 읽는 소설이 있다. 후가사와 시치로의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이다. 이문열 작가는《세계명작산책》에서 이 작품을 아래와 같이 해설했다.

“‘우리는 이런 소설의 출현을 위해 50년을 기다려왔다.’

이십여 년 전 내가 처음 〈나라야마 부시코〉를 읽고 난 뒤 받은 느낌도 일본 문단의 그것에 비해 작지 않았다. 그것은 감동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전율이었다. 그때 이미 문학청년이 되어 있던 나는 이 작품을 읽고 아득한 절망에 빠져들기까지 했다. (중략)

문명과 물질적인 풍요로부터 격리된 이국의 오지와 결핍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들이 정착시킨 기이한 행태 및 제도는 어떤 신비감까지 자아냈을 것이다. 특히 우리에게도 고려장(高麗葬)이란 전설로 남아 있는 기로(耆老)의 습속 같은 것들은 이국적 나라야마 부시(楢山節)의 애절한 가락과 어울려 젊은 내게 전율과도 같은 감동을 주었음에 틀림이 없다.”

이문열 작가의 말대로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를 처음 읽은 필자의 느낌은 감동이라기보다는 전율에 가까웠다. 작품 속의 자연은 지고지순하지 않다. 자연도, 자연 속에서 사는 인간군상도 배가 고플 따름이다. 그러다보니 도둑질한 가족이 있으면 마을 사람들은 무참히 그 가족을 살해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공간적 배경이 되는 신주(信州) 마을에는 예부터 일흔 살이 되면 예외 없이 졸참나무산으로 들어가야 하는 풍습이 있다. 이러한 기인한 풍습 역시 스스로 엔트로피를 줄여가는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풍습일 뿐 별다른 의미는 없는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오린은 예순아홉 살이다. 그녀에게는 상처(喪妻)한 타츠헤이라는 아들이 있다. 타츠헤이가 결혼하는 것을 보고서 오린이 졸참나무 산으로 간다는 게 이 작품의 줄거리이다.

오린은 졸참나무 산에 가기 전에 졸참나무 산에 간 적이 있는 남자들에게 술을 대접한다. 술자리가 파한 뒤 한 사내가 타츠헤이에게 귓속말로 일러준다.

“가기 싫거든 산까지 가지 말고 칠곡 쪽에서 돌아와도 괜찮다.”

타츠헤이는 졸참나무 숲에 들어가서 수많은 백골들을 보게 된다. 오린을 적당한 곳에 내려놓고 돌아서다가 타츠헤이는 내리는 눈을 맞는다. 눈이 금세 굵어져 하늘에서는 함박눈이 퍼붓는다. 타츠헤이는 금기를 깨고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간다. 어머니가 “내가 산으로 갈 적에는 필경 눈이 올 것이다.”라고 힘주어 말한 것이 현실화된 게 기뻤기 때문이다.

작품 속에서 순순히 죽음을 받아들이는 오린의 모습은 자비의 현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오린은 이목을 피해 일부로 이를 부러뜨린다. 손자 녀석이 “우리 집 할매는 골방 구석에서 귀신 잇바디를 서른세 개나 갖췄다”라는 우스갯 노래를 부르는 것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오린은 굴참나무 숲에 가기 전에 마을 사람들에게 술을 사고 새 며느리에게 송어가 잘 잡히는 곳을 일러준다. 그렇게 자신의 죽음을 미리 차례차례 준비한다.

오린을 지게에 짊어지고 험준한 산길을 걷는 타츠헤이. 어렵게 걸어온 타츠헤이를 맞이한 것은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해골들과 하늘을 맴도는 까마귀 떼뿐이다. 마을사람들에게 나랴아마는 삶의 모든 고통을 벗는 피안의 세계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참혹한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오린을 남겨두고 돌아오려다 말고 타츠헤이는 금칙을 깬다. 그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어머니를 향해 마지막 인사말을 한다. 해골만이 나뒹구는 자리에서 오린은 말없이 내리는 눈을 맞으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다. 마치 깊고 고요한 선정에 든 것처럼.

타츠헤이가 다시 오자 말없이 오린은 가라고 손짓을 한다. 이러한 오린의 행동은 앞서 인용한 〈낙화〉의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떠올리게 한다. 오린은 이미 산에 오르기 전부터 자신이 가야할 때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의연한 오린의 모습은 차안과 피안의 경계가 없음을 일깨워준다.

타츠헤이는 산을 내려오면서 이런 말을 중얼거린다.

“아무리 추운들 솜옷은 산으로 가는 데는 입히지 않지.”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순환을 거듭하는 눈은 그 자체가 연기사상의 법문이고, 대지의 모든 사물을 포근히 감싸주는 눈은 자비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다.

삶과 죽음의 길이 갈리는 나라야마. 오린은 눈을 뒤집어쓰고 앉아 있고, 타츠헤이는 눈길을 밟고 내려온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발은 그렇게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의 경계를 지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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