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도겸(나마스떼코리아 대표)

정말 오랜만에 다시 네팔 현지 봉사를 떠나게 되었다. 중국발 코로나로 인한 팬데믹은 우리네는 물론 전인류의 삶을 참 많이도 변화시켜놨다. 감염병 방역으로 인해 해외에는 나갈 엄두도 못내게 하고 실제로도 못나가니 당연히 현지 봉사활동은 꿈도 꿀 수 없었던 3년이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이지만, 햇수로는 4년 만에 찾아가는 네팔이어서 한편으로 매우 설레인다.

산골 오지 마을인 땅띵에도 도로가 들어오고 버스도 다닌다는데. 지금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반길까? 그리고 그때 초등학생이던 어린이들은 이제 질풍노도의 시기인 중학생이 되어, 순한 양의 모습을 일부러 숨기기 위해 험악한 늑대의 얼굴로 반항의 눈빛을 보낼까? 새로 가져가는 선물들이 마음에 안들면 어쩌지? 가기도 전에 근심이 이미 히말라야의 설산을 넘고 있으니 걱정도 팔자인가 보다.

팬데믹이전에는 매년 한두 번 지인들과 봉사의 길을 나섰다. 기부한 돈을 그대로 온전히 현지 어린이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만든 시민단체이자 비영리사단법인이다보니 늘 운영이 어렵다. 특히, 현지 봉사는 그리 가깝지 않은 해외이다 보니 늘 항공권이 문제로 근심이 는다. 팬데믹 전에는 60만 원대의 경유 편도 있었지만, 새로 열린 하늘길 직항편은 설날을 맞이하여 180만 원을 호가하고 있다. 언제쯤 이전의 가격대로 돌아갈까? 아니, 그런 날은 올까?

그 돈을 전달하는 게 낫다는 말도 있지만, 16년이나 봉사를 다니다 보면 꼭 그렇지 않다. 다는 아니어도 갈 사람들은 직접 가는 게 맞다. 직접 전달해야 하는 이유도 가서 배우고 익혀야 할 점도 작지 않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봉사단체들이 건물 월세, 경상비, 운영비, 인건비를 빼고 기부금의 적게는 7%, 많아도 30%도 안되는 돈을 현지에 전달한다고 한다. 그게 싫어서 직접 만든 우리 NGO는 임직원 모두 자비 참가가 원칙이다. 그러다 보니, 매번 참가하기가 부담되지만, 가보면 보람과 배움이 그 갑절은 한다.

“왜 가까운 우리 국민들도 어려운데 그들을 놔두고 굳이 멀리 가서 관계도 없는 사람들을 돕는 거냐?”라는 비난같이 들리기도 하는 질문도 쏜살처럼 우리에게 날아들기도 한다. 1950년대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우리를 도왔던 외국인 봉사자들을 기억하나요? 그런 반문을 늘 준비한다. 그들도 당시 자국의 국민들에게 같은 질문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희망을 품고 꿈꿀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통해서 원조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어느덧 발전해 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아야 한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돌이켜보면, 그 은혜를 꼭 받은 사람에게 갚아야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이 우릴 도운 뜻을 생각해 보면 더욱 그렇다. 60여 년 전 그때처럼, 지금 우리는 1950년대 미국 등의 선진국의 입장에서 네팔 등 도움이 필요한 개발도상국 나라에 도움의 손을 내밀고 있다. 그것이 우리의 국격을 높이는 참다운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다시 찾은 네팔 산골 오지 마을. ‘그곳에서 꿈을 키운 어린이가 우리의 훌륭한 대통령 같은 위인들이 되어 네팔의 미래를 실현한다면 어떨까?’라는 꿈도 꾸곤 한다. 늘 그런 거대한 꿈을 갖고 네팔을 찾는 것은 아니다. 그냥 우리의 작은 도움으로 그들이 생존하고 또 아픈 사람의 병이 낫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따름이다. 그런 마음이 소중하다.

봉사를 떠날 때는 부처님께서 《금강경》에서 하신 말씀을 떠올린다. 늘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무주상보시를 하라는! 가르침이든 깨달음이든 그 어디에도 머물지 않고 즉 안주하지 않고 보시를 해야 한다는 그 말씀. 남을 도우려는, 적어도 도움이 되려고 노력하고 실제로 실천하는 선한 마음과 말, 그리고 행동을 계속하면서 점점 더 키워가는 것이 우리 불자들의 의무가 아닐까? 그것이 우리가 국내에만 머물지 않고 해외로, 나눔이 아닌 공존공생을 위한 봉사를 떠나야 하는 참된 이유이다.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