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위대하다. 세계적인 팝아티스트들을 배출하고 있고 영화 예술 분야에서도 국제대회의 대상을 거머쥐는 소식들이 연이어 들린다. 스포츠 분야 역시 손흥민 황희찬 이강인은 세계적 스타로 활약중이다. 이런 우리나라가 자살률에서도 OECD국가 중 1위를 달리고 있다. 2022년 통계에 따르면 10만 명당 자살률은 25.2명으로 OECD에서 가장 높다. OECD 평균이 10.6명인데 비해 2배 이상의 수치다. 그것도 10~30대의 자살률이 높다. 새해 벽두 이런 얘기로 우울하게 만드는 게 아쉽지만 희망을 만들기 위해 불가피 언급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의 편견이 자살률을 높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릇된 시각이 젊은이를 자살로 몰고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치관은 세상을 옳고 건강하게 바라보는 의식이다. 우리 사회에는 무수한 편견들이 존재하고 있고 이러한 편견들로 인해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끔찍한 살인이나 폭력사건을 부르게 되는 이면에는 편견이 숨어 있다. 때로는 살인자 또는 폭력사건의 주인공도 따지고 보면 편견의 피해자라 할 수 있다. 자신을 바라보는 이웃의 그릇된 시각과 인식이 분노를 키우게 되고 적개심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불교에선 이러한 편견을 없애는 방법으로 중도(中道)를 강조한다. 중도는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삶이다. 부처님께서는 29세에 카필라 왕궁을 탈출해 35세에 깨달음을 얻기 까지 대부분 가혹한 고통이 수반되는 수행을 하셨다. 즉 고행(苦行)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고행이 깨달음에 이르는 올바른 수단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苦)와 낙(樂)의 양극단을 떠나 심신의 조화를 꾀할 수 있는 중도에 설 때 비로소 진실한 깨달음을 구할 수 있다는 경지를 터득한 것이다. 중도는 팔정도라고 하는 구체적인 실천에 의해서 지탱되는 준엄한 도이다. 중도에서는 나태와 번뇌, 노여움과 어리석음 등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떤 것에 집착하려고 하는 기울어진 생각을 모두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중도적 관점이 우리 사회에 적용된다면 사회적 병리가 대부분 치유될 수 있다는 게 전문학자들의 견해다. 우리 사회가 대립할 수밖에 없는 구도에 놓여 있는 이유는 중도를 떠나 일방적 편에 서서 어느 한 쪽만을 지지하고 응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파벌이 생기고 대립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만들어 지는 것이다.

다른 이에게 깊은 상처가 될 수 있는 편견의 삶은 우리 주변에서 없어야 하겠다. 그릇된 편견은 사회의 병폐이자 극복해야 할 우리 시대의 과제다. 그러기 위해서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의 가르침이 보다 폭넓게 확산돼야 할 것이다. 중도는 삿된 견해를 물리치는 엄격한 지침이기도 하다. 불자들이 앞장 서 이러한 중도의 삶을 실천한다면 우리 사회는 한결 행복한 삶을 구가할 수 있지 않을까. 편견 없는 삶이 중요한 이유다.

-편집국장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