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라는 종교를 믿음으로 갖고 살다가 왜 출가 수행자가 되는 어려운 길을 택하였는가 하는 의문을 스스로 던질 때가 있습니다.

그 이치는 대부분 수행자의 목적에서 해답을 찾게 됩니다. 즉 자각각타(自覺覺他) 각행원만(覺行圓滿)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통하여 전법도생(傳法度生)하고자 함일 것입니다.

매년 선암사 정수원에는 행자 스님들이 입방하여 참수행자가 되기 위하여 어렵고 힘든 교육 기간을 거치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다 이유가 있는 첫 걸음일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출가 수행자의 염원은 성불에 있습니다.

한국불교 전통, 정통 종단을 자부하는 태고종의 스님이 되는 것도 또한 성불하는 것이요, 그 깨달음을 통해 뭇 중생들을 제도하는 막중한 책무를 갖는 직분도 수행자임을 저마다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수행자는 이를 위해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신심을 갖고 정진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수행자를 인천(人天)의 스승이라고 하는 이유는 뭇 중생들의 근간이 되고 모범이 되어야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수행자가 흐트러진 행을 보인다면 세간의 비웃음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모범이 되지 못한다면 우리 한국불교 전통의 맥을 세세생생 이어나갈 수 있는 자질마저 의심받게 마련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깊은 자성과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렵고 힘든 수행이지만 자부심과 원력을 갖는 출가 사문의 본분을 게을리 하여서는 안 됩니다,

당나라 때 고승 조과도림(鳥窠道林)선사에게 당대 대문호이자 사상가인 백낙천(백거이)이 찾아가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불교, 불교 하는데 불교가 무엇인지요?”
도림선사가 답하였습니다.
“모든 악한 일을 행하지 말고[諸惡莫作],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여[衆善奉行],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면[自淨其意],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是諸佛敎]입니다.”
이에 백낙천이 말합니다.
"선사님, 그것은 세 살 먹은 어린 아이도 아는 말입니다."
도림 선사가 다시 답합니다.
“세 살 먹은 아이도 알고 있지만 여든 먹은 노인도 행하기 어렵습니다. 더욱이 행을 받들어 깨우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조과도림 선사는 출가 수행자에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마음이 머무는 자리가 청정하고 신심의 행을 잘 받들어 수행정진을 게을리 하지 않을 때 깨달음이 증득된다는 점을 늘 일깨워주었습니다.

이렇듯 수행자는 계율송을 하나하나 마음속에 깊이 새기어 행동으로 옮겨야 마땅한 일인데, 작금의 출가 수행자의 모습을 보면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스스로에게도 묻고 싶습니다. 과연 나는 오늘도 부끄럽지 않게 수행자의 삶을 살았는가? 돌아보건대 하루하루 참회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후학 스님들에게 선배로서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습니다. 법복을 입고 법상에 올라 신도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주면서도 나는 과연 부끄러움 없는 진정한 수행자로 살고 있는가 자문해 봅니다.

한국불교가 국가와 민족의 사표가 되고 태고종단이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종단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수행자의 삶을 살 때 가능합니다. 수행자의 삶이란 앞서 말한대로 스스로 정진하고 우리 사회를 위해 한 사람의 구제를 위해서라도 전법교화에 매진하는 일입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출가한 수행자 모두가 부처님 당시부터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는 포살(布薩)과 자자(自恣)로 수행의 길을 돌아보는 자성의 시간을 갖는다면 우리 자신이 더욱 성숙해지고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두 눈 시퍼런 참 스승이 되는 원력 불사에 모든 태고종도들이 동참하길 간절히 서원합니다. 그런 점에서 평소 존경하는 선지식 운(雲)자 경(耕)자 큰스님이 종정 예하가 되심은 태고종의 홍복이며, 태고종의 밝은 미래입니다. 이제 태고종 종도 모두가 종정 큰스님을 모시고 한국불교를 이끄는 정통종단이 되는데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다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태고종 사회복지원장ㆍ서울강북교구 종무원장ㆍ삼각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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