⑪ 칼산 불구덩 속의 승열 바라문

선재 동자와 보리가 이사나촌 화취산에 다다르자 사면에 불덩이 무더기가 큰 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속에는 여기저기 비죽비죽 칼산들이 높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때 승열 바라문이 가파른 산꼭대기로 올라가더니 몸을 날려 산아래 불구덩이로 들어가고 있었다.
“앗. 오빠! 저기, 저기….”
보리가 깜짝 놀라 선재의 팔을 잡아당겼다.
선재는 보리 때문에 몸이 흔들렸지만, 순간 생각했다. ‘승열 바라문께서 보살도를 훌륭히 수행하셨다 했는데 저렇게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혹시 마귀의 장난이 아닐까? 아니면 마귀가 승열 바라문의 몸속으로 들어가, 마치 자신이 선지식인 양 행동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선재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룩하신 선지식인의 몸에 마귀가 들어가지 못한다. 그건 부처님 법으로도 용서할 수가 없다. 그러면 마귀는 어디에 숨어서 저런 장난을 치는 것일까? 선재가 온몸이 쭈뼛 소름이 돋는 동안 하늘에서 범천의 소리가 들렸다.
“선재야,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라.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생각이다. 승열 바라문은 자신의 몸을 태워서라도 금강 불꽃의 삼매를 얻고, 그 찬란한 광명으로 중생을 건지려고 수행정진 하는 것이라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중생들의 나쁜 욕심과 잘난 척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오만한 고집과 늙어 병들어 죽는 것에 대한 공포를 끊어 주고 모든 장애를 없애주기 위해 다섯 군데 불구덩이의 뜨거운 곳에 몸을 태우므로 비로소 불이 세상천지를 비추어 아비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 불의 광명 속에서 깨끗한 신심을 내며 한없는 깨달음을 얻는 중이다.”
선재 동자는 범천의 말을 듣고 매우 기뻐서 승열 바라문이 매우 진실하고 깨끗한 선인이라는 생각에 몸을 엎드려 바라문을 향해 절을 하였다.
“거룩한 선지식이시여! 제가 어리석어 착하지 못하고 의심하는 마음을 내었나이다. 저의 참회와 용서를 받아주소서.”
그러자 승열 바라문이 뿅! 하고 나타났다. 다섯 군데의 불구덩이에서 몸을 태웠다고 하나 몸은 한 군데도 화상을 입지 않고 입은 옷조차도 불에 그을린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승열 바라문이 선재를 바라보며 부드럽고 온화한 목소리로 노래 부르듯 게송을 읊었다.
“보살이 누구든지 선지식의 가르침을 순종하면 모든 의심 두려움 없어지고 편안해져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리. 이런 사람들은 아주 많은 공덕을 얻으리니 보리수 아래에서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게 되리라.”
그 게송을 들은 선재 동자가 칼산으로 급히 뛰어 올라갔다. 보리는 선재가 불구덩이로 뛰어들까봐 재빨리 뒤따라갔다.
“오빠, 오빠! 잠깐만.”
눈물범벅이 된 채로 보리는 선재의 옷을 잡아당기려 애썼다.
그러나 선재는 위없는 깨달음에 대한 간절한 마음에 가슴이 벅차서 하늘을 날 듯이 뛰어갔다.
“오빠아, 엉엉엉…. 오빠! 가지마. 불구덩이로 들어가면 못 나와, 연기 때문에 숨이 막혀 죽을 거야. 그러면 나는 어떡해, 엉엉엉…. 나는 어쩌라고. 나는 어쩌라고, 엉엉엉…. 오빠가 없으면 누가 나를 데려다줘! 오빠만 믿고 따라왔는데, 이젠 엄마랑 아기를 볼 수도 없게 됐어. 오빠, 오빠! 가지마, 가지 말라고. 으앙 엉엉엉.”
보리가 있는 힘을 다해 울부짖자 선재는 아차! 싶었다. 자신만 깨달음을 얻기 위해 보리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 불구덩이로 뛰어들더라도 보리를 안심시키는게 먼저였음을 몰랐던 것이었다. 선재가 가파른 칼산을 다시 내려와 보리 앞에 앉았다. 그리고 보리의 손을 잡고 말했다.
“보리야, 미안해. 정말 미안하구나! 내가 생각이 짧았어. 여태 함께 여기까지 왔는데 너를 배려하지 못하고 나만 성불하려 했어. 하지만 오빠가 불구덩이에 들어가도 죽지 않아, 승열 바라문께서 말씀하셨잖아. 다시 살아 나온다고.”
“그걸 어떻게 믿어? 그리고 불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아, 여태 불 속에서 살아나온 사람 보지를 못했어. 승열 바라문님은 보통 사람이 아니니까 가능하지만, 오빠는 안 돼. 금강 불꽃이니 삼매니 수행정진 같은 말은 너무 어려워서 이해가 안 되고 또 말뜻을 알고 싶지도 않아. 다 싫어. 나는 오빠가 중요해, 오빠는 죽으면 안 돼. 또 오빠는 나를 우리 집까지 데려다 줘야 해, 그러니 불에 뛰어들지 마! 제발….”
보리는 너무 놀라 말이 화살처럼 빠르게 나왔다. 선재가 보리의 등을 토닥여 주면서 말했다.
“보리, 나는 죽지 않아. 만약 내가 죽어도 너를 지켜 주고 집에까지 데려다주실 분은 많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도 혹시 오빠가 죽으면 어떻게 돼?”

삽화=서연진 화백
삽화=서연진 화백

 

보리는 연신 코를 훌쩍이고 눈물을 닦으며 선재의 팔을 붙잡았다.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코는 너무 닦아서 빨개진 얼굴을 들여다보던 선재는 보리가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선재가 웃음을 지으며 보리에게 말했다.
“음! 오빠가 만일에 죽게 되면 구름이 되었다가, 바람이 되고, 비가 되었다가 따뜻한 햇살이 되어서 너를 지켜 줄게. 항상 네 곁에서 너를 바라보고 있을게.”
“와아아앙! 그건 더 싫어, 바람도 싫고 비도 싫어. 그냥 같이 살다가 같이 죽어, 흑흑흑….”
“알았어, 그만 울어. 진짜로 안 죽을게. 정말 살아서 돌아올게. 날 좀 믿어봐,
보리는 부처님 믿지?”
보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선재는 보리의 손가락을 걸고 맹세했다.
“자, 약속, 나는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다.”
부처님까지 들먹거리자 보리는 약간 안심이 되었는지 손가락을 내민다.
선재는 보리를 한번 안아주고 다시 칼산으로 재빠르게 올라갔다.
선재가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순간 보리는 다시 울음이 터졌다. 하늘에서 범천이 말했다.
“정법계진언, 옴람 옴람 옴람. 호신진언, 옴치림 옴치림 옴치림.”
보리는 범천의 우렁찬 목소리에 자기도 모르게 진언을 따라 외웠다
“오빠를 살려주세요. 옴람 옴람 옴람, 옴치림 옴치림 옴치림.”
그때 선재는 칼산에서 불구덩이로 내려가는 중간에 편안해지면서 모든 것에 자비로운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 생겼고, 온몸이 불꽃에 닿자 고요하고 즐거운 신통 삼매에 빠졌다.
아아! 무상함에서 나를 버려야 다시 나를 찾을 수 있구나. 그 순간 선재는 뿅, 하고 보리 옆으로 나타났다. 승열 바라문도 어느 결에 그의 옆으로 다가왔다.
“매우 신기합니다. 여기저기 칼산과 불무더기에 몸이 닿을 적마다 뜨겁지도 아프지도 않고 무섭지도 않아 도리어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웠습니다. 승열 바라문님,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이에 승열 바라문이 말했다
“선재는 이제 모든 것을 깨달아 모든 이치의 걸림이 없고 집착도 없으며 분별심도 사라지니 모든 것의 빛과 그림자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수행정진 하는 목적을 너도 이루었으니 여기서 남쪽으로 가면 사자분신성이 있고 거기에 묘법을 설하는 자행동녀가 있으니 그에게서 반야바라밀다의 지혜를 배우도록 하여라.”
보리는 오빠가 다시 살아온 게 믿기지 않는지 눈물을 훔치며 그의 손을 꼭잡고 선재는 보리의 손을 마주 잡은 채 승열 바라문에게 하직 인사를 하였다. 

-2022 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가작 입상

【각주】
화취 : 불을 모으다
마귀 : 마구니
범천 ; 하늘의 왕
금강불꽃 : 다이아몬드처럼 크고 단단한 불꽃.
아비지옥 : 아비는 산스크리트어로 고통의 간격이 없다는 뜻무거운 죄를 지은자가 가는 지옥.
게송 : 부처님의 말씀을 외우기 쉽게 만든 노래.
위없는 : 그보다 더 이상 높은 것이 없고 좋은 것.
정법계 진언: 우주를 청정하게 하는 진언.
호신진언 : 몸을 지켜주는 진언.
무상 : 모든 것에 일정한 상(모양)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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