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이번 겨울에는 어느 해보다 비와 눈이 자주, 많은 양이 내린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야 다가오는 봄에 물이 넉넉해서 풍작을 기대할 수 있다’는 옛날 어른들의 말씀을 떠올리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는데, 그리 편하게 생각할 수만도 없겠다.

지난 1월 6일 〈연합뉴스〉가 전한 뉴스에서는 “새해 첫 주부터 지구촌 곳곳에서 이상기후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서유럽 국가들은 수일간 이어진 폭우로 물난리가 났고 북유럽에는 25년 만에 기록적 한파가 닥쳐왔다. 영국에서는 1월 4일부터 밤새 쏟아진 폭우로 전역에 300여 건의 홍수주의보가 내려졌으며” “지난 연말 이미 홍수로 큰 피해를 입었던 프랑스의 북부 마을은 피해를 복구할 새도 없이 새해부터 다시 물에 잠겼고” “독일 동부 어느 지역에서는 일주일 넘게 이어진 폭우로 댐이 넘쳐서 마을과 농지가 잠기고 문제 해결을 위해 군대까지 동원되었으며 북유럽에는 기온이 영하 40℃ 아래로 내려가는 한파가 닥쳐왔다”고 한다.

유럽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기상 이변으로 일어나는 재앙을 이겨내느라 고통을 겪는 중생들의 안타까운 모습을 대하면서, 이제까지 모든 일을 낙관하던 이들이나 “환경 생태계가 위험 수준에 빠르게 다가가고 있다”는 경고를 “환경운동가들의 호들갑”이라며 무시 ‧ 왜곡하던 사람들도 더 이상 ‘강 건너 불이 아닌 내 자신의 문제’로 여길 수밖에 없다고 느낀다.

“대체로 몸뚱이는 흙·물·불·바람[地水火風]이다. 강한 것은 흙이 되고 연한 것은 물이 되며, 더운 것은 불이 되고, 숨 쉬는 것은 바람이다. 목숨이 다해 혼신이 가고 이 4대가 각각 흩어지면 보전할 것이 없으니 몸이 아니다.”《육도집경》

초기 불교 경전인 《아함경》에서부터 인간 세계에서 ‘나와 이웃’이 서로 의지하며 밀접하게 엮여있음을 강조하고 있고, 대승불교의 꽃인 《화엄경》에서는 우주 법계의 모든 존재들이 중중무진(重重無盡) 겹겹으로 엮여져 ‘누가 중심이고 누가 종속되어 있는지 그 주종(主從)관계를 따질 수 없다’고 강조한다. 방대한 《화엄경》의 세계를 210글자 안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 〈법성게〉(法性偈)에서 의상조사는 “하나 가운데 일체가 있고 많은 것 가운데 하나가 있다[一中一切多中一]. 하나가 곧 일체이고 많은 것이 곧 하나[一卽一切多卽一]”라 읊어서 이 진실을 강조하였다.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는 1972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브라질에 있는 나비 한 마리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 주에 토네이도 돌풍(突風)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하여 주목을 받았고, 이 ‘나비의 날갯짓’이라는 용어는 이제 인문 ‧ 사회 ‧ 자연과학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분야에서 매우 자주 쓰면서 일반 대중들에게도 익숙하게 되었다.

몇 해 전부터 종교평화 관련 강의를 할 기회가 있을 적마다 나는 로렌츠의 이 말을 소개하면서 “한국의 불교인들이 종교평화의 바람을 일으키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 말은 종교 갈등이나 분쟁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다가오는 ‘기상 이변으로 인한 생태 환경의 위기’를 마주할 때도 똑같이 절실할 것이다. “산업 선진국이 잘못해서 …, 보수 정권과 재벌들이 잘못해서 …”, 이런 식으로 ‘남 탓’ 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며 ‘불 난 데에 휘발유 퍼붓고 부채질까지 해대는 짓’이 될 뿐이다.

자신이 불교인임을 자부하는 데이비드 로이는 《과학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때 불교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책 머리말에서 “우리와 지구가 분리돼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할 때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방식과 지구와 관계 맺는 방식 또한 재구성될 필요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얼마 전 내가 사는 곳에 와서 세상 이야기를 나눈 이들이 ‘하늘 가득한 별들’에 감동해 날씨가 추운데도 여러 차례 밖으로 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감탄하고 들어오는 일을 되풀이하였다. 그런데 현재 진행 속도로 지구의 위기가 계속된다면 밤하늘의 별을 언제까지 제대로 볼 수 있을까. 누구도 확실한 답을 내놓기 어려울 것이다. “지옥에서는 별을 볼 수 없다.” 단테 알리기에리가 《신곡》(神曲)에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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