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철

지금 이 마음의 바탕에서 보자면, 일체는
잊거나 버릴 것도, 잃을 것도 없음이다.

그러나 이 마음은 바탕이랄 것도 없음이니
이 마음, 이 우주 만물도 실은
비롯된 바가 없다고 봐야 마땅하리라.

하지만 지금 내가 여기 이렇게 있어, 일체는
비롯됨이 있는 것처럼만 비치고 있으니
이것을 헛된 것으로서 볼 수만은 없음이다.

생각건대 이 모든 것은 이 마음이 시공을 통해
여과 없이 자신을 세세히 드러낸 것으로, 한 마음의
분신과도 같은 매우 소중한 선물들인 것이다.

일체법은 태고이전부터 비추이는 빛에 둘러싸여
하지만 그 빛을 안에 감추고선 사계절 무상無常의
옷 걸쳐 입고, 그 모습을 환영처럼 드러낸 것이다,

아, 해는 항상 그 자리에서 한 번도 바뀐 적 없는데
사람들은 매년 해를 먹으면서, 해를 세며 지낸다.
그리고 돌아온 올해를 유독 청룡의 해라 부르고 있다.

변화무쌍한 힘을 지닌 청룡이여, 그 힘은
오로지 진리를 향해야 위대해지는 법이다. 그러나
모두 잊어선 안 되는 법 하나. 이 우주엔 새로운 것도
없지만, 새로워질 일도 없다는 것; 모든 관념은 다
허망하기에...

신 새벽 냉수 한잔 마시고 나면, 모두가
한 통속 집안의 일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이것은 무척 기쁜 일이다)

내가 됐든, 네가 됐든, 무슨 상관이랴.
가슴 활짝 열어젖히고, 앞으로 다가오는 것,
이 촌놈의 속성대로, 닥치는 대로 힘껏
껴안아버리는, 순박무식한 사랑으로 되돌아가야

티끌과 티끌 사이도 미끄러지듯 오갈 수 있으며
(오간다는 마음까지도 없어진다면)
모두는 마침내 너로부터 자유로워지고, 행복도
얻게 될 것이다.

-신승철 : 1953년 강화도 출생. 1978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인, 박두진 문학상 수상, 시집< 거울 속에서>(장시)등
정신과/신경과 전문의, 블레스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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