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사슴가죽의 비목구사다라 선인

비목다라구사 선인이 있는 나라소국으로 가는 길에는 전단나무가 줄지어 있고 침수향나무의 그윽한 향기는 침향의 재료가 침수향나무임을 말해주었다. 선재 동자는 은은한 향기가 코로 들어오는 게 기분이 좋아 한발로 깡충깡충 뛰면서 보리에게 물었다.
“보리야. 이번에 비목구사 선인은 53선 지식 중 몇 번째 만나는 거지?”
“글쎄, 안 세어 봐서 잘 모르겠는데. 나는 그냥 오빠만 따라다녔잖아.”
선재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보리가 귀여워 이마를 살짝 손가락으로 튕기려다가 깜짝 놀라 멈춘다. 지금 보리는 꿈속에 있기 때문이다.
“아이코, 놀래라. 큰일 날 뻔했네.”
“오빠, 갑자기 무슨 말이야? 머가 놀라고 큰일이 나?”
“아니, 아니야. 너 화엄경 약찬게 외워봐.”
“음…대방광불 화엄경, 용수보살 약찬게, 나무화장 세계해, 비로자나 진법신, 현재설 법 노사나, 석가모니 제여래…”
“음,잘하네, 그럼 내가 나오는 곳부터 해봐.”
“응? 염불을 차례차례 해야지. 건너뛰면 어떡해?”
“좀 급해서 그래, 우리가 문수 보살 이후 두 번째 만난 선지식인 덕운 스님부터 정리를 해보려고 해”
“아항! 그럼, 선재동자 선지식, 문수사리 최제일, 덕운해운 선주승, 미가해탈 여해당휴사비목 구사선.”
선재가 다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보리에게 그만하라고 하였다.
“자, 그럼. 우리 다시 정리해 보자, 덕운 스님은 어떤 스님이셨지?”
“형에게 재산을 다 뺏기고도 원망하지 않고 돌봐주며 불쌍한 이웃들도 다 도와주어서 구름처럼 많은 공덕을 쌓으신 분이지.”
“그리고 또?”
“음, 구름들이 좋아했지. 오색구름, 양떼구름, 채운구름, 새털구름…”
“오오, 똑똑한데? 그럼 제3 선지식 해운 스님은?”
“해운스님? 아! 바다, 즈냐상어 그리고 바즈라 아기.”
“맞아, 해운 스님은 악연을 선연으로 바꾸시던 분. 그리고 일체유심조, 마음을 먹으면 이루어진다고 하셨지.”
선재가 다음 질문을 하려는 순간 보리가 먼저 물었다.
“그럼 제4 선지식은 누구야?”
“당연히 해도 만지고 달도 만지셨던 선주 스님이지. 허공을 가르며 깃털처럼 날아다녔어. 네가 엄마 보고 싶다고 우니까 네 손을 만져 주셨잖아, 아주 자애로우신 분이야.”
보리가 커다란 침수향 나무 사이로 요리조리 뛰어다니며 나머지 선지식들을 외운다.
“그러면 이제는 미가해탈 여해당. 휴사비목 구사선…”
“그렇지! 독뱀들을 다 물리친 아름다운 목소리의 주인공 미가장자가 제5 선지식이셨고, 욕심쟁이 니르바나와 동생 비뮤티 스님에게 온몸으로 찬란한 광명을 비춰주신 해탈 장자님이 제6 선지식 이셨지.”
“그리고, 뒷다리가 쑤욱, 앞다리가 쑤욱, 팔딱팔딱 개구리 됐네.”
“그게 무슨 소리야?”
“하하하, 아니 내가 그냥 생각나서 해본 노래야. 올챙이와 개구리!”
“그럼 해당 스님이 개구리라는 거야?”
“ㅋㅋ, 아니. 해당 스님 발바닥에서 거사님과 장자님이 쑥 나오고. 가슴에서는 용이 쑥 나오고 하는 게 신기한데, 우리나라 동요에도 올챙이가 헤엄치다 뒷다리가 쑥 나오거든.”
“어찌 됐든 해당 스님은 제7선 지식으로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을 말씀하셨어.”
선재가 약간 화가 난 말투로 말하자 보리가 금방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다.
“미안해 오빠, 내가 잘못했어. 해당 스님 발바닥에서 사람들이 나오는 게 너무 신기하고 놀랐는데 개울가에 올챙이 노래 처음 배울 때도 깜짝 놀랐거든.”
보리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자 선재도 금방 마음이 풀렸다.
“그러면 우리가 해조마을의 보장원 꽃동산에서 만난 휴사 보살님이 제8선지식이고 제9 선지식이 비목다라구사 선인이야.”
“응 휴사 보살님, 꽃바다마을.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편안히 쉬게 해주는 보장원동산. 근데 비목다라구사 선인은 어떤 분이실까?”
보리가 머리를 갸웃하면서 선재 동자의 손을 잡았다.
그때 갑자기 사슴 가죽으로 얼굴을 가린 선인이 풀밭에 앉아서 풀을 엮어 옷을 만들고 있다가 벌떡 일어섰다. 얼굴을 가렸지만 청결하고 빈틈없이 깨끗하고 키가 큰 신선이었다.
“누가 자꾸 내 이름을 부르는 거냐?”
선재와 보리는 깜짝 놀라 비목다라구사 선인의 주위를 계속 돌고 또 돌다가 엎드려 절하였다.
선재는 시키는 대로 말하였다.
“거룩하신 선인이시여, 저는 이미 무상 보리심을 내었으나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며 보살도를 닦는지 알지 못하니 이를 가르쳐주십시오.”
비목다라구사 선인이 선재의 손을 잡으며 말하였다.

삽화=서연진 화백
삽화=서연진 화백

 

“착하고 착한 선재야, 너는 반드시 모든 사람을 구제하고 지옥 고통을 멸하며 염라대왕의 세계를 바꾸어 크고 밝은 지혜 광명을 온 세상에 비추게 될 것이다.”
손을 잡힌 선재가 몸을 기쁨에 떨면서 어떻게 하면 그런 경지에 이르는지 묻는데 보리가 갑자기 선재의 손을 잡아끌었다.
“오빠, 그냥 내 옆에 있어. 사슴 가죽 얼굴이 좀 무서워!”
그 말을 듣고 비목다라구사 선인이 하하하 웃었다.
“저 아이는 내 얼굴이 무서운가보구나, 걱정 안 해도 된단다. 아가야! 사슴 가죽으로 얼굴을 가린 것은 내가 사람들을 쳐다만 봐도 사람들이 해탈 삼매에 빠져 난처한 적이 있었거든. 그래서 얼굴을 가리고 무상 보리심을 깨달은 사람들만 손을 잡고 이마를 만져 주면 반야 바라밀다의 광명으로 해탈 삼매에 빠질 수 있단다.”
비목다라구사선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오른손을 펴서 선재의 정수리를 만지며 손을 잡았다. 잠깐 동안 선재는 부처님의 갖가지 지혜로 모든 사람들의 소원도 들어주고 넓은 자비와 사랑으로 따뜻한 햇살만큼 사람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계시는 부처님을 만나며 부처님의 걸림 없는 큰 지혜와 큰 광명의 힘과 원만함으로 몸이 붕 뜨는 것을 느꼈다. 새털같이 가볍고 푸근한 느낌! 바로 반야 바라밀다의 해탈 삼매에 들었던 것이다. 비목구사다라선인이 선재의 손을 놓으며 말했다.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아주 크고 밝은 광명의 성취를 얻기 위해 앞으로 선재는 보살도를 물어보려면 마하 반야 바라밀을 꾸준히 외우도록 하여라. 그러기 위해서는 여기서 남쪽 이사나 마을 승열 바라문에게 도움을 청하도록 하여라.”
선재가 휘청거리자 보리가 그의 손을 잡았다.
“오빠, 오빠. 눈떠!”
보리가 울먹거리고 선재는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편안한 얼굴로 보리를 안아주었다.
기분이 좋아진 선재가 비목구사다라 선인에게 말했다.
“정말 거룩하신 선인이십니다. 사슴 가죽의 의미도 알았고 선지식의 자비 광명의 힘과 보살도를 알았습니다. 그리고 저를 삼매에 들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열심히 보살도를 닦아 보리에게 해탈 삼매의 광명에 들도록 도와주겠습니다.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아 반야아아 바라밀!!!”
선재는 보리의 손을 잡고 침수향나무의 은은한 향기를 맡으며 처음처럼 깡충깡충 뛰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부지런한 뜻을 가진 나라소국을 떠나갔다.   

【각주】

선인: 이란, 한국, 중국, 일본에서만 사는 전설의 인물. 늙지 않고 죽지 않음.
신선: 도교 사상에서 나온 신, 불로불사약을 인간에게 줌(선인과 같음).
지혜 광명: 옳고 그름을 빨리 깨닫고 밝고 환하게 처리하는 것.
해탈 삼매: 몸과 마음의 걱정으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서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것.
마하: 실담범자로 마하의 뜻은 크고 밝고 위대함.
반야; 실담범자로 쁘라즈냐라고 함. 완성된 지혜. 깨달음.
바라밀; 실담범자로 빠라미타 라고 함. 깨달음의 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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