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로에서 벗어나 어서 골목으로 가야 한다. 병석은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대로의 인파는 느리게, 짧은 보폭으로 앞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종로 1가와 2가 도로가 바로 내다보이는 사무실 창가에서, 몇 사람이나 모이겠어, 혀를 차던 동료의 말에 자리에 앉은 채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 나왔는데, 8차선 대로가 이렇게 꽉 차다니. ‘몇 사람이나’의 기준이 무엇이었나, 앞뒤 생각도 안 하고 거리로 나선 것이었다. 빨리 벗어나자는 생각에만 빠져 걷다 보니 어느새 사람들의 물결에 갇힌 꼴이었다.

사람들은 마치 진흙더미처럼 찐득하게 뭉쳐 한 방향으로 쏠리면서 느리게, 걷는다기보다는 흐르고 있었다. 차들은 어디서부터 끊겼는지 한 대도 보이지 않았다. 신기했다. 이 거리의 회사를 12 년째 다니는 병석도 난생처음 보는 장면이었다. 쩌렁쩌렁 울리는 스피커나 앰프 같은 건 언제 다 갖췄을까 의아했다. 사람들은 조금 거들먹거리면서 거리 분위기를 즐기는 것 같았다. 마치 놀이공원에라도 온 것처럼 들떠 보였다.

안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 중계방송을 보니 광화문을 중심으로 종로, 안국동, 을지로, 서소문, 사직동 할 것 없이 사방팔방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방송국 드론 카메라나 신문기자들이 빌딩 옥상에서 망원 카메라로 찍은 영상과 사진들이 SNS에 속속 올라오고 있었다. 무선망 연결은 끊어졌다 이어졌다 오락가락했다. ‘트래픽 폭주’ 때문일 것이다. 트래픽이 몰리면 서버가 다운될지도 모른다.

대기업 정보통신회사에 다니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병석한테는 다른 말보다 ‘트래픽 폭주’, ‘서버 다운’ 같은 말들이 더 실감 나게 다가왔다. ‘디지털은 영장류 최후의 문명이다’라는 말을 어느 책에서 읽은 적이 있었는데, 책에 따르면 경제나 사회 현상뿐만 아니라 생물의 움직임이나 인간의 두뇌 작용도 전부 디지털로 표시할 수 있다. 병석은 아날로그보다는 디지털로 표시된 것들을 믿었다. 이 거리의 엄청난 사람들의 물결도 그런 말들로 훨씬 더 실감 나게 다가왔다. ‘트래픽이 폭주하듯 사람들이 몰려들고 마침내 서버가 다운되듯 세상이 멈춘다.’ 어딘지 있어 보이는, 그럴듯한 말이다.

불과 30분 전, 회사에서 나올 때는 인파가 없는 종로2가 방향 골목으로 빠져나가자고 마음 먹었다. 아내는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부터 일찍 들어오라고 몇 번씩이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병석은 꼬박꼬박 ‘당연하지’, ‘난 관심 없어’, ‘일찍 들어갈 거야’, ‘염려 마’, ‘오늘은 더 피곤해’, ‘동참은 무슨’ 따위로 응답했다. 그런데 어쩌다 광화문 방향으로 길을 잡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한 발 한 발 궁금해하며 걷다 보니 대열 한가운데 끼어 있었다. 이제 가지도 오지도 못하면 어쩌나 불안해졌다. 마음이 조급해진 병석은 앞으로 조금씩 끌려가듯 종종걸음을 치면서도 또 얼마간은 게처럼 자꾸 옆걸음으로 나아갔다. 이 대열에 속한 사람이 아니어서 눈치가 보였지만 구호를 따라 외치지는 않았다. 눈치 보는 게 차라리 나았다.

사람들은 이번 사태로, 마땅히 온 국민이 대열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병석은 시큰둥했다. 언제는 안 그랬나 싶을 뿐이었다. 술자리 언쟁에서도 이편저편을 들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다. 외려 이런저런 사건들의 뒷이야기를 더 많이 안다고도 할 수 있었다. 인터넷은 병석의 놀이터다. 늘 끼고 살면서 온갖 진실, 거짓, 미스터리, 엽기행각, 비밀스러운 영상이나 사진, 문서 들을 어지간히 훑었다. 숱한 인물에, 많은 사건에, 오래된 과거사에 언제나 ‘이면의 진실’이나 믿기지 않는 의혹이 있었다. 흔히 상상할 수 없는 음모설이나 소름 돋는 이야기들도 넘쳤다. 믿자니 어이없고 웃어넘기자니 묘하게 끌렸다. ‘에이, 말도 안 돼’ 하면서도 이미 중독되어 있었다.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되다 보니 새로운 정보가 주는 호기심이 사라지고 이내 시들지기도 했다. 신기했다가 시들했다가, 날마다 오락가락했다. 아는 건 많아져서 좋은데 머리가 아팠다. 불면에 시달리는 날도 점점 늘었다. 영상을 보고 비슷한 카테고리의 영상들을 또 찾아보고 나중에는 SNS 댓글들을 검색하다가 늦잠이 들었다. 늦잠을 자는데도 새벽에 깨는 생활이 반복됐고, 숫제 새벽까지 말똥말똥한 채 있는 날도 많았다. 대중없이 그런 날들이 이어졌다. 아침 일찍 배가 고팠고 저녁도 많이 먹었다. 왜 그런지 몰랐다. 아내는 “벌써 당뇨병인가 보네.” 하며 눈꼬리를 치켜떴는데 병원에선 아니라고 했다.

술에 취해서라도 기절한 듯 잠들기를 바랐으나 그런 날은 드물었다. 거의 매일 몸이 피곤했고 머리가 몽롱했다. 워낙 단순하게 반복되는 일이라 일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다. 일하는 시간보다 고객사까지 이동하는 시간이 길었다. 담당자를 기다리는 시간이 더 지치게 했다. 일과 일 사이의 지루한 시간, 집과 회사 사이의 그 긴 시간이 병석은 더 피곤했다.

지금은 인파를 빠져나오느라 진땀이 나고 긴장도 바짝 했는데 피곤하지는 않았다. 약간의 긴장이 도리어 몸을 가뜬하게 한 것 같았다. 갑자기 배가 고팠다. 머리를 많이 쓴 날 배가 더 고팠다. 열량의 20%는 머리가, 18%는 근육이 쓴다는 글을 읽었었다. 오늘 쓴 건 무엇이었나, 병석은 생각했다. 몸도 썼고, 머리도 썼다. 한 시간 남짓 지났을 뿐인데, 가다 서다 멈칫거렸고 눈알을 수없이 굴리면서 갖가지 장면들을 머리에 담았다. 무언가 이해하려고 머리를 쓴 건 아니지만 용량은 넘쳤다. 상사들은 흔히 “씨피유를 좀 써라. 데이터만 채우지 말고.”, “얘 또 버벅대는 거 봐라. 벌써 용량 초과네. 메모리 비싼 것 좀 달고 다녀.”라고 질책하곤 했다. 일할 때 빠릿빠릿하게 판단을 잘하고, 보고할 때 잘 외워서 말하라는 뜻이었다. 병석은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모르지만 그런 말을 들을라치면 더 잘할 의욕 같은 건 없이 배부터 고팠다.

‘영장류 호모사피엔스가 포유류인 사자나 백곰보다 많이 먹는다’는 말을 자연 다큐메터리 영상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사자나 백곰의 ‘어쩌다 한 번의 포식과 여러 날의 굶주림’을 고려한다면 인간은 매일 먹으니 결국 더 많이 먹는다는 말이었다. 영상을 골똘히 보면서 익힌 음식의 영양분까지 감안하면 인간은 얼마나 더 먹는 것일까, 잠시 머리를 굴렸었다. 다 보고 나서 ‘영장류’, ‘포유류’라는 말이 머리에 남아 종종 입에서 튀어나왔다. 씨피유, 메모리, 데이터 같은 말은 시시했다. ‘영장류’, ‘포유류’라는 말은 낯설어서 그런지 멋스러웠다. 병석은 배고플 때 ‘영장류’에게 말을 걸었다. “야, 영장류. 영장류 대수님 올라가자.” 단짝 이대수 대리가 병석한테 제일 만만한 ‘영장류’였다. 이름에 ‘님’자를 붙여 부르는 건 회사의 공식 방침이었다.

구내식당은 꼭대기 층에 있었다. 11시 30분에 일어나 엘리베이터를 타야 시간을 아낄 수 있었다. 이 대리는 “야, 영장류 병석님. 오늘 ‘아아’는 네가 쏴라.” 하고 되받았다. 회사 빌딩 1층에도 카페가 있지만 둘은 굳이 옆 빌딩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 마셨다. 이 대리는 사원급들이 ‘아아’라고 줄여 부르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보다는 냉커피가 더 어울릴 외모에 ‘아아, 아아’ 하면서 어린 척을 하고 있었다.

사자나 백곰보다 많이 먹는 ‘영장류’들이 구내식당에도, 카페에도 날마다 우르르 모여 있었다. ‘영장류’들의 표정이나 말투, 젓가락질과 커피 취향은 다들 제각각이었다. 마침내 오도 가도 못 하게 되었을 때 병석은 ‘영장류들이 많이도 모였구나’ 하고 얼핏 생각했다. 대로가 ‘영장류들’로 넘치고, 넘치다 못해 골목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자신이 이 거리의 물결에 휩쓸린 게 ‘영장류’로서 동류의식 탓일지도 모르겠다는 우스운 생각이 떠올랐다. 머리로는 종로2가를 향하는데 발이 광화문 쪽으로 이끌렸다. 무엇에 홀린 듯 아무 저항감도 없이 ‘영장류’의 물결에 합류했다.

병석으로서는 딱히 합류할 만한 이유가 없었다. 일도, 월급도, 하다못해 구내식당 메뉴도 다 만족스러웠다. 정부에 대한 불만은커녕 관심마저 거의 없었다. 1인 방송을 하는 사람들은 100만 명이 넘을 거라고 흥분했다. 100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머리를 쓰는 셈이면 얼마나 많은 먹이와 영양이 필요할까. 병석은 도로변 골목에 즐비한 음식점들에서 파는 밥과 반찬, 안주와 술의 양은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배가 너무 고팠다.

병석이 게걸음으로 골목 어귀를 향해 가는 동안 사람들은 어떻게든 길을 터주려는 몸짓을 했고 팔을 들거나 등으로 버티면서 길을 뚫어 주었다. 큰물이 지류로 갈라지면서 속도가 나듯, 사람들이 골목으로 쓸려 들어가는 모양도 그랬다. 골목이 그나마 여유 공간이던 시간이 지나 있었다. 마침내 골목 어귀에 이르렀을 때 병석은 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몸이 덥고 목이 탔다. 배가 더 고파졌다. 대로는 꽉 막혔고 이 골목을 지나 광화문 쪽으로 가야 했다. 더 많은 사람이 몰려 있을 테지만 광화문역에서 전철을 타는 게 최선이었다.

목표를 정해 골목길로 내처 나아가는데, 몸통을 옆으로 틀어야만 겨우 오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아져서 자꾸 어깨나 발이 툭툭 부딪혔다. 그렇게 부대끼면서도 사람들은 웃는 얼굴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아,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요.” 서너 명씩 무리를 지은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면서 잠깐 멈춰 서 있기도 했다. “타도 타도, 퇴진 퇴진.” 구호 소리가 웅성웅성한 소음에 묻혀 입만 벙긋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교복 차림 학생 몇은 아예 노래를 흥얼거리고 건들건들 춤을 추면서 좁은 틈새를 헤치며 지나갔다. 다들 표정이 밝은데 슬쩍 불안한 빛도 엿보였다. 대로의 군중들도 대개 비슷했다. 사람들이 신나서 소리는 지르지만 이 소리가 어디에 닿을 수나 있을까 불안한 눈치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불안한 속내가 낯빛에 드러나고, 그 낯빛을 읽는 서로의 눈빛들이 묘하게 닮아 있었다. 문득 비라도 쏟아지면 어쩌나 조바심이 생겼다. 아닌 게 아니라 낮부터 하늘이 꾸물거렸다. 비가 온다는 기상예보는 없었는데 물기가 느껴졌다. 병석은 아까부터 거리의 열기와 물기를 느끼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점점 어둑해지고 있었고 음식점들의 간판 조명은 밝아지고 있었다.

골목에서 병석의 걸음은 좀체 진전이 없었다. 한두 발 뗐다가 멈추고, 다시 조금 나아가다 멈칫했다. 골목길의 음식점이나 술집, 카페에도 사람들이 와글와글했다. 주인들로서는 오늘 같은 대목이 없을 것이었다. ‘퇴진하는 날 주인이 쏩니다’라고 문 앞에 써 붙여 놓은 집도 눈에 띄었다. 대낮부터 일찍 나선 사람들은 이제쯤 어디 앉아 쉬고도 싶을 것이었다. 병석도 이 골목 어느 술집에 들어가 허기라도 달래고 싶은 유혹에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와 동행이었다면 벌써 어느 술집에라도 들어가서 ‘수입 병맥주’를 마시거나 소주잔이라도 기울이고 있을 것이었다. 맥주는 두 병까지, 소주는 반 병 정도 마시지만 분위기 좋으면 조금 더 마실 수도 있었다. 이런 날 안주는 아무거나 좋을 것이었다. 병석은 조금 들떠 있었다. 회사 빌딩에서 나와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릴 때부터 마주친 장면과 소리가 전부 낯설어서 설레었고, 정시에 ‘칼퇴근’을 하는데도 상사들이 눈총을 주지 않은 게 기분 좋았다.

평소에 병석은 상사들의 눈치를 잘 보고 비위를 잘 맞추는 편이었다. 별명이 ‘비빔면’이었다. 병석으로서는 정작 챙기는 것 없이 미움이나 사지 않는 정도여서 ‘비빔면’이라는 별명은 좀 억울했다. 병석은 소심하고 귀도 얇고 남 비위 잘 맞추는 자신에게 딱히 불만이 없었다. 고집부리지 않고 분위기 따라 자주 변신하는 인생이 편했다. “변신은 해도 병신만 안 되면 돼.”라며 격려인지 조롱인지 모를 말을 해 주던 상사도 있었다. 몇 년 전 갑작스레 기술영업직으로 발령을 받았을 때도 불만은 반나절뿐이었다. 금방 새로운 상사에게 아메리카노보다 1,000원 더 비싼 커피와 비타민 음료까지 사다 바치며 유쾌하게 웃고 떠들었다. “영업을 알아야 개발도 하는 거야.”라는 상사의 말이 가슴에 콕 박히기까지 했다.

오늘 누군가와 동행했다면 병석은 그의 말에 솔깃해서 술집 한구석에 벌써 틀어박혔을지 몰랐다. 하지만 한두 잔 정도 빠르게 마시고 안주나 몇 점 얼른 집어삼키고는 곧장 일어났을 것이었다. 아내가 그냥 두지 않았을 것이다. 아내는 진작, 문자메시지가 아니라 직접 전화를 걸어 오늘의 행동 방침을 정해 주었다. “자기, 오늘 같은 날은 돌아다니는 거 아니야. 깔려 죽어. 일찍 와. 나도 퇴근하고 유치원 들렀다 집에 갈 거야. 참치김치찌개 끓여 줄게. 소주 한 병, 맥주 한 병 사 와.”

병석도 집에 일찍 들어갈 요량이었으나 귀찮은 잔소리였다. “마누라 잔소리가 귀찮지. 원래 그런 거야.” 동료, 선배들의 말은 다들 엇비슷했다. “세상사가 원래 다 귀찮은 거지, 뭐 하고 싶어 하는 놈이 어딨어. 마누라한테 세뇌돼서 사는 게 편한 거야.” 회식 자리에서 마흔 후반 김 부장이 걸고 느릿한 말투로 못 박은 적이 있었다. 그 자리의 제일 윗사람이 별로 취하지도 않고 툭 내뱉는 바람에 뭐라 대거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병석은 아마 그날, 인생의 어떤 방향을 정한 것 같았다. 처세의 방침이라 해도 좋았다. 꼭 해야만 해서 한다기보다 할 수 없이 하면서 사는 것. 산다는 게 그런 것이다, 마음먹었다.

병석은 이제 발끝만 내려다보며 나아가고 있었다. 빠져나가든 삐져나가든 어서 골목 끝이 보여야 할 텐데 아직 더 가야 했다. 감자탕집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맥주 간판도 보였다. 술집 문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는 듯 보였다. 비좁은 골목을 빠져나가기보다 대로와 광장의 집회가 끝나 버스나 택시가 다닐 때까지 기다려 보자는 작정일 것이었다. 병석은 그럴 수 없었다. 저녁 시간을 넘기면 아내가 쌍심지를 켤 것이었다. 어서 이 골목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무엇보다 이 골목에 머물고 싶은 유혹에서 벗어나야 했다. 대로에서 골목으로 빠졌듯이 이 골목에서 다시 대로로 가야 한다.

병석은 이제 사람들을 좀 억지로 밀치며 나아가야겠다고 작정했다. 자꾸 멈칫거리면서 예의를 차릴 게 아니었다. 일단 그러기로 마음먹으면 단순하게 앞만 보고 행동하는 게 병석의 기질이었다. 무언가 시키는 일을 행동으로 옮길 때 병석은 희열을 느꼈다. 상사들은 그런 병석을 좋아했다. “일할 때는 무념무상. 생각이라는 걸 버리는 거야. 잔머리 굴리지 말고 위에서 시킨 대로 하면 돼. 얼마나 이뻐, 자, 건배.” 병석은 칭찬에 약했다. 칭찬을 들으면 마음이 녹다 못해 흐물흐물했다. 회사가 야박하게 굴더라도 이런 칭찬을 듣는 맛에 다닐 맛이 났다. 아내도 가끔씩 칭찬을 해 주었다. “흐흐, 자기는 장점이 있어. 나만 바라보고 우직하고, 변치 않고, 단순하고, 세심하지 않아도 시키는 대로 잘하고. 흐흐흐.” 그날 식탁에도 찌개에 소주와 맥주가 있었다.

오늘도 저녁 시간에만 맞추어 가면 칭찬을 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마음이 바빠졌다. 비 오면 큰일이라는 생각을 다시 떠올리면서 얼마나 남았나 앞쪽을 주시하는데, 옆쪽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가 병석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도카니 서서 병석을 바라보는 단발머리 여자였다. 워낙 밀리고 밀치는 터라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는데 여자는 용케도 술집 문 앞에 바짝 붙어 서 있었다. 술집 안팎의 환한 불빛들 덕에 병석은 말쑥한 정장 차림의 민정을 알아볼 수 있었다. 민정이 대열의 한 사람으로 참여한 것인지, 병석처럼 지나는 길인지 알 길은 없었다. 병석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일단 눈길은 피했지만 아는 척을 할 건지 말 건지 망설여졌다. 어깨에 멘 노트북 가방의 무게에 후줄근히 흘러내린 어깨춤, 너무 먹어 튀어나온 뱃살, 비좁은 골목에서 우스운 모양새로 낑낑대는 꼴, 숱도 없이 땀에 젖은 머리칼 같은 꼬락서니를 꼭 민정한테 들켜야 할 것인가. 진땀이 났다. 병석이 다루는 서버는 0.0001초 만에도 병렬처리로 어떤 결정을 하는데, 정작 병석은 그런 처리를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흔히들 정보통신 회사의 프로그래머가 뭔가 복잡한 함수 계산이나 멀티플레이를 하는 줄 알지만, 알고 보면 정반대였다. 몇 가지 프로그래밍 언어, 디지털 주소, 오류, 패턴, 규칙 정도만 알면 나머지는 단순 반복이었다. 복잡하게 보이지만 실은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컴퓨터만 똑똑해지고 그 컴퓨터를 똑똑하게 만든 사람들은 더 멍청해지는 게 디지털 세계였다. 사람들은 대개 거꾸로 알고 있었다. 그런 면이 어이없으면서도 재미있게 여겨졌다. 병석은 이런 우쭐한 기분으로 일을 즐기고 있는지도 몰랐다.

병석은 나름 복잡한 속셈으로 민정의 눈길을 피하고 있었다. 먼저 신경 쓰이는 것은 민정이 알아챘을까, 하는 거였다. 그 자리에 서서 한곳만 바라보는 것으로 봐서 가능성이 있었다.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아내의 쌍심지였다. 민정을 아는 척한다면 안부나 묻고 헤어질 수는 없었다. 길에서 말을 주고받더라도 시간이 좀 걸릴 것이었다. 그러면 저녁 시간에 늦을 것이다. 어떡하나. 병석은 고작 몇 가지 변수를 병렬처리하지 못하고 안절부절했다. 민정을 모른 척하고 내처 가더라도 길이 막혀 늦을 것이다. 사람들을 밀치고 나갈 수 있는 물리적 능력과 걸리는 시간, 군중의 숫자와 밀도, 경찰 방어막의 위치와 통로가 변수였다. 어찌어찌 골목을 빠져나간다 하더라도 대로의 사람들이 다 순방향만은 아닐 것이다. 역방향으로 돌아 나오는 사람들도 많아 그들과 부딪히며 빼앗기는 시간도 어쩌지 못할 것이다. 지하철로 들락거리는 숫자는 얼마나 될지, 생각할수록 골치가 아팠다.

하기야 이미 저녁 시간에 맞추기는 애초에 틀렸었다. 처음부터 행로가 잘못되었다. 아내가 일러준 병석의 행로는 종로3가나 5가에서 3호선이나 1호선 전철을 타고 적당한 역에서 갈아타는 코스였다. 거리가 멀더라도 택시를 타도 좋다고까지 말했었다. 병석이 홀연히 사람들의 물결에 휩쓸리고, 그나마도 얼마쯤 가다 되돌아 나오는 게 아니라 되레 골목길로 나아갔을 때, 이미 늪에 빠진 셈이었다. 허우적대다 더 헤어 나올 수 없는 늪의 시간이었다. ‘영장류’로서 동류의식 때문이든 호기심 탓이든 이제 되돌릴 수 없었다. ‘영장류’가 우글거리는 골목에서 다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고 만 것이다.

병석은 거기까지 나름의 ‘병렬처리’를 마치고 눈을 먼데 둔 채 피식 웃었다. 입력된 데이터가 뻔하므로 ‘아웃풋’도 뻔했다. ‘웃으면서 아는 척하기’가 ‘결과값’이었다. 병석은 어색하지 않게, 놀랐다는 표정을 짓지 않고 자연스레 입꼬리를 올리며 웃으려고 했다. 민정이 활짝, 마주 웃었다. 병석은 민정이 서 있는 곳으로 재빨리 나아갔다. 살짝살짝 몸을 틀어 “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를 반복하면서 곁으로 다가갔다. ‘변신’은 늘 재빨랐다. 재빨리 마음을 바꿔 먹은 병석은 민정 앞에 금세 닿았다. “어, 뭐야. 어떻게 여기서 만나. 너 집회하러 나온 거야?” 여전히 말이 빨랐다. 병석은 얼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말이었다. 병석은 집으로 가는 중이었다. 길을 잘못 들어 그렇지 갈 곳은 오직 집이었다. 그런데 마음이 변했다. 병석은 재빨리 고개를 좌우로 젓지 않고 위아래로 흔들었다.

거짓말을 하고 나자 기운이 솟구쳤다. 거리의 분위기처럼 시원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병석은 얼굴 근육을 활짝 폈다 오므렸다 하면서 “너도?” 하고 물었다. 민정은 대답은 없이 “오랜만이다. 잘 지냈지. 근데 어디로 가는 중이었나 봐. 허둥지둥 서두르던데.” 하고 되물었다. 적당히 대답을 해야 했지만 마땅히 둘러댈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디 가는 중이 아니라는 뜻으로 도리질만 쳤다. “너도 가만있자니 답답해서 나왔구나.” 민정은 병석을 올려다보면서 말했다. 머쓱해진 병석이 “가자, 내가 빠져나가게 해 줄게.” 하며 앞장서자 민정은 병석의 등 뒤에 바짝 붙었다. 병석은 민정의 손목을 꽉 쥐고 한 팔을 뻗어 앞길을 헤쳤다.

약간 드세게 달려들 듯한 기세로 팔을 휘젓자 길이 뚫리기 시작했다. “휘, 휘. 지나갈께요.” 병석은 입소리까지 냈다. 사람들이 움찔 놀라며 피해주었다. “거기 앞에 좀 비켜주세요.” 하고 뒤편에서 외쳐주는 사람도 있었다. 병석은 좀 민망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손목을 꼭 쥔 민정이 있기에 더 뻔뻔해지고 용감해야 했다. 민정은 민망해하기보다 안심하는 것 같았다. 잡은 손으로 그런 기운이 전해졌다. 병석은 더 힘차게 팔을 휘저었다. 땀이 났다. 잠시 멈추고 돌아서 뒤에 빠짝 붙어 따라오는 민정을 보았다. 민정이 멈칫하면서 병석의 가슴에 머리를 ‘콩’ 부딪혔다. 민정의 어깨를 팔로 감싸자 고개를 들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병석은 거친 숨을 내뿜었다. 고개를 어떻게 처리할 수 없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얽히고설킨 전깃줄, 삐뚤빼뚤한 건물의 이층과 삼층들, 불규칙한 모양의 돌출간판들이 보였다. 골목의 불빛이 제법 밝은데도 아직 하늘의 푸른빛이 옅게 퍼져 있었다. 비가 오면 분위기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건 좀 이상했다. 비가 오면 난리가 날 것 같은데 그 난리가 외려 기다려졌다. 민정을 오랜만에 보기는 했다. 얼마쯤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뜻밖에, 하필 이런 골목에서 부딪히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병석은 더 들떠서 이 만남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고 있었다. 병석은 아직 아무런 결정을 못 하고 망설이는 중이었다.

민정이 빼꼼히 병석을 올려다보았다. 병석은 머쓱해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민정은 병석이 허둥댄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이것도 저것도 결정하지 못한 채 허둥대다가 민정과 헤어졌던 것처럼, 여전히 병석은 허둥대고 있었다. 거리의 구호들이 정신이 사나울 정도로 많아서 중구난방 흩어져 버리듯, 오랜만에 우연히 만난 이 남자의 마음도 어딘가 흩어지고 있으려니 했다. 그런 생각에 빠질수록 민정은 환히 웃었다. 병석은 민정의 이름도 차마 부르지 못 했다. 둘은 대학 시절 소문난 커플이었고 한때 결혼까지 하려고 했던 사이였다.

말이 끊긴 둘은 골목 끝으로 눈을 돌렸다. 몇 걸음만 더 나아가면 골목 끝이었다. 대로의 군중이 점점 더 많아졌는지 골목으로 유입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났다. 민정은 병석의 말을 기다렸다. 그의 행동에 따라 대로변으로 나가서 헤어지거나, 이 골목 어딘가에 좀 더 머물 거나 둘 중 하나였다. 길은 늘 갈래길이었다. 영영 헤어지거나 다시 만나거나 한 길을 골라야 했다. 민정의 머릿속은 이제야 복잡해졌다. 일행이 기다리는 장소로 가거나 병석과 회포를 풀거나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다. 몸은 이미 병석의 꽁무니에 바짝 붙어 있었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생하며 대학원을 다닐 때 병석은 민정보다 서너 살 어린 여자와 결혼했다. 둘은 몇 개월 동거도 하던 사이인데, 하필이면 민정이 가장 힘든 시기에 병석이 떠났다. 직장을 더 다닐지 공부를 더 할지 고민하던 때였다. 몇 년 만인가, 민정은 셈을 해 보았다. 20대 후반의 고생과 눈물겨움이 30대 중반의 여유와 반가움으로 어떻게 변할 수 있는지 계산이 되지 않았다. 병석은 천연스레 아는 척하고 반가워하고 있었다.

병석을 미친 듯이 그리워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매끈한 생김새에 숱이 적은 머리, 아담한 키, 직업은 엔지니어, 손가락이 굽어 있었다. 학과에서 눈에 띄는 남자는 아니었는데, 술 한 잔 입에 대지 못한 채 술집에서 내내 수줍게 앉아 있는 모습이 믿음직스러웠다. 장난을 걸면 수줍어하는 어린 여자애처럼 깡똥거리며 뛰어가는 모습이 귀여웠다. “야, 바지 꼈어, 엉덩이 힘 빼.” 하고 놀려 대면 그는 진짜 화가 나서 한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민정은 그런 병석을 잘 다독였다. 그런 기억들은 내내 병석을 그립게 했다. 병석이 그리운 밤에 민정은 남자를 끌어들였다. 그의 체취가 남아 있는 작은 자취방에 그날그날 남자들이 다녀갔다.

남자들은 흔히 뭐 갖고 싶은 거 없냐고 물었다. “무슨 일 해.” 하고 물으면 “그냥, 뻔한 일 해.” 하고 대답했다. “어떤 뻔한 일.” 하고 다시 물으면 “그렇고 그런, 다 그렇잖아, 회사 다니면 다들 하는 일.” 하며 얼버무렸다. 막상 “갖고 싶은 게 있어.” 하고 말하면 남자들은 “내가 알아서 적당히 좋은 거 사줄게.” 하고 눙쳤다. 그렇게 손에 쥐어지는 건 정말 적당히 그렇고 그런 것들이었다. 차라리 상품권으로 줄 것이지 인터넷 쇼핑몰을 뒤지고 뒤져 건져 올린 중고품이라니. 한숨이 나왔다. 신상품도 대개 실속 없는 허튼 패션 소품들이었다. 민정의 술자리 하소연에 유부녀인 선배가 “30대 중반의 여자가 혼자 산다는 건 그만큼 포기하는 게 많다는 거야.” 하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헤어진 애인이나 남편을 헐뜯다가 신세타령으로 끝나는 30~40대 여자들의 술자리는 중독성이 있었다. 여자들 수다의 모든 화제는 남자였다. ‘남자, 어디까지 믿을 수 있나.’ 하는 주제가 단골이었다. 씹어도 씹어도 맛이 우러나는 안주감이 ‘남자의 정신상태’였다.

그런데 차츰 여자들끼리의 술자리 횟수가 적어졌다. 하필이면 여자 대통령이 이 지경이었다니 하는 자괴감에 여자끼리 모여서 남자 욕을 하기도 민망해져서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의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가 덜컥 ‘광화문’, ‘토요일’, ‘모이자’라는 말이 즉흥적으로 튀어나왔고 다들 눈을 크게 뜨고서 “그래, 그래.”하게 된 것이다. 여자들끼리 의리라는 게 있는데, 철석같이 약속했다가 안 지키면 아주 ‘못된 인간’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었다. 하지만 민정 옆에 지금 병석이 있었다. 첫정을 준 남자다. 유머도 많고 정도 많은 민정이 병석을 더 좋아했다.

병석은 순했다. 온순하고 단순하며 결심이 자주 바뀌는 팔랑귀였다. “왜 이리 변덕이야. 남자가.” 하고 잔소리하면 병석은 못 알아들었다. 두 눈의 검은자위가 쏠리면서 골똘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민정은 잔소리를 하다 하다 포기하고 그냥 내버려 두었다. 그래도 좀 봐줄 만한 것은 한번 정한 건 누가 뭐래도 지킨다는 점이었다. 당번으로 정해진 날에 개수대까지 깨끗히 설거지를 했고, 빨래감의 종류와 양에 따라 적당한 버튼을 눌러 세탁기를 돌렸으며, 포장재를 일일이 분류하고 접착된 종이들을 싹 다 제거하고서야 분리수거를 했다. 어떤 일에는 한없이 게으르기도 했다. 한번 싫다는 일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패턴만 알면 병석을 다루기는 쉬웠다. 민정은 한때 잘 다뤄지는 병석이 너무 편해서 사랑이 새록새록 솟아났다.

병석이 떠난 건 민정의 사랑이 한창 솟아나고 있는 동거 4개월 차를 앞두고서였다. 정나미 떨어진 회사 생활 중에도 하루 종일 병석한테 무얼 해 먹일까 궁리하는 게 낙이던 시기였다. 민정은 어이가 없었다. 이제 병석은 결혼도 했고 세월이 어느 만큼 지났으니 묻고 싶었다. 왜 나를 떠났느냐, 따위가 아니었다. 그 정도는 알만했다. 얼마 동안은 도무지 알 수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훤히 알 수 있었다. 뭐랄까, 서로 기분이 잘 안 맞았다. 민정이 달아오르는 밤에 병석은 차갑게 식었다. 병석이 기분 좋아 일찍 퇴근한 날 민정은 술에 떡이 되어 늦게 들어와서 회사 돌아가는 꼴을 탓하며 욕을 해댔다.

병석은 어리바리한 얼굴로 식탁에 마주 앉아 캔 맥주를 마시는 민정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월급을 떼먹는 것도 아니고, 부당한 지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회사가 망하지도 않는데 왜 화를 내는지 병석은 답답했다. 민정이 속상하다는 핑계로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시는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술을 잘 못하는 병석은 술에 취해 덤벼대는 민정이 무섭고 정떨어졌다. 연애 초기부터 그랬다. 병석은 오래 참은 셈이었다. 어떻게 헤어지자고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 만나다가 동거까지 하게 된 것이었다. 겉보기에는 별 탈 없이 연애하고, 까탈 부리고, 잠을 자고, 밥을 먹었다. 신혼부부처럼 알콩달콩 즐거웠다.

이별은 갑작스러운 돌발사태였다. 민정이 모처럼 일찍 퇴근한 날 병석의 짐이 싹 없어졌다. 나흘 뒤에야 두 사람은 통화를 했다. 병석은, 자기로서는 오랫동안 작정하고 있었는데 그걸 얼굴 보면서 말하면 민정이 술에 취해서 소리라도 지를까봐 몰래 짐을 뺐다고 말했다. 병석은 사무적인 목소리로 “너 그런 적 많았잖아.”라고 말했다. 어이가 없었지만 민정은 물어볼 게 있었다. “너 사랑이 뭔지 알고나 했니?” 나중에야 알았는데 동거 석 달 만에 짐을 뺀 날 병석은 지금의 아내가 일러준 대로 했고, 나흘만의 통화와 민정에게 했던 말까지 시킨 대로 한 것이었다. 나중에 알았기에 망정이지 당시에 알았다면 피가 거꾸로 솟았을 것이다.

어이가 없어 화를 주체할 수 없던 시간이 지나서 가만히 더듬어 보니 어떤 조짐도 없이 갑자기 짐을 뺐다는 게 아무래도 수상했다. 평소의 버릇과 너무 달랐다. 선배나 언니들한테 물어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만 했다. 회사 선배는 ‘이제껏 못 만나 본 깜찍한 스타일’이라고 했다. “직접 전화해서 물어봐. 전화 못 할 건 뭐야.” 누가 그랬던가, 그 말이 가슴에 꽂혔다. 꽤 긴 시간 긴가민가하던 참이었다. 전화를 걸어 지레짐작으로 추궁하자 병석은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양다리’였냐고 묻자 아니라고 했다. 당시에는 연애 고민을 털어놓을 정도는 되는 친한 오빠, 동생 사이였다고 했다. 민정도 더 의심하지 않았다. 병석한테 바람을 피울만한 배짱이나 재주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민정은 차라리 후련했다. 그래도 사랑이라는 게 무언지 알고 자신을 대했을까, 그런 게 궁금할 뿐이었다.

모호한 질문이지만 대답을 듣고 싶었다. “넌 사랑이 뭐라고 생각했어.” 하는 물음에 “글쎄.”라고 대답할 수도 있었다. “최소한 예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봤니.”라거나 “헤어지는 것도 프로세스가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니.” 따져 묻고도 싶었다. 아무리 이공계 출신 엔지니어라지만 연애 생활을 ‘1, 0’처럼 ‘모 아니면 도’로 딱 부러뜨리는 짓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긴 연애를 하루아침에 일방적으로 끝내고서 여차저차 설명도 없고, 미안한 마음조차 별로 없어 보였다. 민정은 병석에 관해 어느 정도 알만 했는데도 오랫동안 우울감에 젖어 지냈다.

병석은 말이 없었다. 골목을 빠져나가자는 말도, 어디 술집이건 카페건 들어가자는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다음 행로가 떠오르지 않는 듯했다. 눈을 쳐다봐도 어딘지 맹하고 텅 빈 눈빛이었다. 어딘가 먼 데를 골똘히 쳐다보기는 하는데 자기 품에 옛 애인이 안길 듯 붙어 있다는 건 안 보이나 보았다. 결정은 민정이 해야 했다. 병석을 이대로 떠나보내고 이만 헤어질지, 석연찮은 감정의 찌꺼기를 털어낼 시간을 가질지 선택해야 했다. 길은 늘 두 갈래였다. 강의 지류처럼 작은 골목길들도 여기저기 뚫려 있지만 결국 두 갈래 길 중 한 길을 선택하는 게 첫 순서였다. 그것은 방향을 먼저 정하는 것과 같다. 방향을 정해도 가다 보면 반대 방향의 끝에 닿아 있을 수도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변수가 생기고, 마음이 변하면 어쩌다가 정반대 길의 끄트머리에 서 있기도 한다. 어쩌면 끝이라는 게 없을지도 모른다. ‘처음’도 잊고 방향마저 잃어버릴 수 있는 게 연애일지 몰랐다.

병석을 지나 다른 남자들을 겪다 보니 민정도 터득하는 바가 있었다. 민정은 아직 병석을 다 지우지 못 했다. 막상 만나니 끝이 도로 처음이었다. 잠시 감정의 요동일 수도 있지만 다시 뒤숭숭해졌다. 우울감하고는 달랐다. 민정은 ‘모든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골치가 덜 아프고 수월히 한 발 내딛는다’는 말에 이끌렸다. 수월하게 한 발 내딛는다는 건 여자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한 여자 선배가 말했었다.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대학 선배인데, 독립해서 조그만 사업을 키워나가느라 애를 먹고 있었다. 가끔 만나면 명함이 바뀌어 있었고 패션도, 머리 모양도 달라 있었다.

한때 그 선배를 잘 따르던 민정의 친구가 “아직도 오르락내리락 하나 봐. 근데 이혼했나. 어째 예전 같지 않다 그 선배.” 하고 말해서 민정은 놀랐었다. 선배는 비결이라도 되는 양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일러주었다. 여자한테 수월한 한 발을 약속하는 남자들이 있는데, 그게 결정적인 유혹이라고. 그걸 잡을 거냐 말 거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고 했다. 어울린 일행들은 “에이, 언니두.” 하면서 눙쳤지만 잠시 조용해졌다. 민정은 그 조용한 시간에 무슨 생각을 했던가. 아무튼 수월히 한 발 내딛어야만 했다. 처음도 아니고 끝도 아닌 상태에서 공중에 붕 뜬 마음으로 언제까지 살아갈 수는 없었다. 우울감을 걷어 내야 했다. 빨래를 널 듯이 우울감을 널어 햇볕에 말려야 했다.

민정이 병석의 팔을 잡아 이끌었다. 병석이 뜬금없는 듯 멀거니 민정을 쳐다보았다. “오랜만인데 술 한잔하자.” 민정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을 때 병석은 갑자기 복잡한 표정이 되었다. 골목길은 더 북적이고 있었다. 대로와 광장의 집회는 끝났는지 이제 시작인지 알 수 없었다. 민정이 다시 이끌어야 했다. “나 배고프다. 저기 감자탕집 있다. 술 사라. 밥 살게.” 병석은 이제 늦어버린 저녁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도 민정과 다시 마주 앉는 건 어색한 노릇이었다. 어딘지 찔리는 구석도 있었고, 아내한테는 뭐라고 할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딱히 할 말도 없었다. 회사에 불만도 없고, 이 거리의 대열에 속한 사람도 아니어서 주의나 주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민정은 무슨 마음으로 이 거리에 나왔을지 조금은 의아했지만 궁금하지는 않았다. 누구나 그럴 수 있는 일이니까 민정이가 앞장을 선 데도 뭐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골목은 모든 ‘영장류’의 골목이었다. 포유류의 골목이 아니었다.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뇌를 쓰는 영장류인 인간들의 거리였다. 이 골목에서 오직 한 여자밖에 몰랐던 시절에 사귀던 민정을 다시 만났다. 민정은 병석을 미워하기는커녕 환히 웃으며 대했고, 왠지 애틋한 얼굴로 바라봐 주었다. 자기를 믿고 태연히 졸졸 쫓아 왔고 지금은 안기듯 옆에 딱 붙어 있었다. 갑자기 배가 고프다며 밥을 먹자고도, 술을 사라고도 한다. 병석은 선택해야 했다. 술을 마실 것인가, 안 마실 것인가. 민정한테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데 말을 아예 안 하고 밥만 먹어야 하나. 회사에서 다양한 영장류들을 관찰하던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할까. 이 대리가 누군지도 말해줄까. 둘이 얼마나 친한지. 왜 옆 빌딩 카페에서 ‘아아’를 사 마시는지. 고객사에서 일하기 전에 기다리는 시간의 지루함에 대해, 그 시간이 멍하니 잘 가더라는 말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리고 집에는 언제 가야 하나. 변수가 많아 결정하기 힘들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병석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민정이 감자탕집으로 이끌었다. 눈에 뻔히 보이는 데도사람들 사이로 빠져나가기가 만만치 않았다. 허름하나 깔끔한 감자탕집은 겨우 한두 테이블이 남아 있었다. 민정은 기다리고 있을 일행들한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사람이 너무 많아. 길을 잘못 들었어. 밟혀 죽을지도 모르겠다. 덩치 작다고 이리 밀치고 저리 밀쳐. 팔다리에 멍투성이야. 못 갈지도 모르겠다. 그냥 각자 있는 자리에서 떠들다 가자. 사진 찍어 공유하고.” 다들 사정이 비슷했다. “우리가 만나는 건 하늘의 별따기야. 이렇게 많을 줄 몰랐지. 우리 없이도 일은 다 되겠네. 각자 있는 자리에서 파이팅.”, “어떻게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냐. 와 진짜 깔려 죽겠다. 나 깔려 죽거들랑 부조나 많이 해라. 집회도 밤새 할 것 같아.”

문자메시지가 영 점 몇 초 단위로 오가고 있었다. 다들 모이는 건 포기하는 분위기였다. 마음이 놓였다. 병석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뭔가 하고 있었다. 민정이 “감자탕 이인분 뚝배기로 시키고, 소주도 한 병 시켜줘. 화장실 좀 다녀올게” 하고 자리를 뜨자 병석은 “어, 어, 어.” 건성으로 대답했다. 시키는 건 잘할 것이다. 민정은 믿었다.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민정이 화장실 간다는 핑계로 집회 장소 근방에 있다는 표시를 남기기 위해 ‘인증사진’을 찍으러 간 동안 병석은 비가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비가 오면 핑계가 그럴듯할 것이다.

민정이 시킨 대로 뚝배기 두 그릇을 주문했다. 침이 고였다. 소주도 한 병 시켜야 했다. 그런데 어떤 상표로 골라야 할지 몰랐다. 병석이 좋아하는 건 도수가 약한 소주였다. 민정이 어떤 소주를 좋아하는지 몰라 놔두기로 했다. 민정이 자리에 앉으면 따로 한 병씩, 다른 상표, 다른 도수의 소주를 주문할 것이다. 정확하지 않으면 하기 싫었다. 병석은 피식 웃었다. 이곳은 ‘영장류의 골목’이었다. 사자나 백곰보다 많이 먹는 영장류는 버릇도, 먹성도, 취향도 다 달리 이 골목에 모여 있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떠들어 대느라 실내가 시끌시끌했다. 민정이 어느새 앞자리에 앉아서 병석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심사평】주인공 심리묘사에서 오랜 숙련기간 짐작돼
 

윤후명 작가, 유응오 소설가.
윤후명 작가, 유응오 소설가.

 

태고 보우 국사는 《태고집(太古集)》에서 “마음 밖에 부처가 없고, 부처 밖에 마음이 없으며, 마음과 부처와 중생의 세 가지가 본래 차별이 없다”고 설했다. 소설 창작도 다르지 않아서 글 쓰려는 마음이 좋은 소설을 만들고, 좋은 소설이 인간군상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그리는 것이리라.

많은 응모작 중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그해 여름〉, 〈양밥〉, 〈영장류의 골목〉 등 세 편이었다.

〈그해 여름〉은 일제강점기 감포 지역에서 펼쳐지는 감은사의 성보들을 밀반출하려는 사람들과 이에 대항하여 성보들을 지켜낸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입체적 서사를 확보한 것이 장점이라면, 단편소설치고는 등장인물이 많아 가독성이 떨어지고, 의고체(擬古體)의 문장이 안정적이지 않은 것은 단점이었다. 이런 단점들을 보완해서 장편소설로 확장해 개작할 것을 권하고 싶다.

〈양밥〉은 한국의 전통적인 동종주술인 ‘양밥’을 제재로 하고 있다. 구순의 시어머니를 쫓아가는 화자의 시선은 1인칭 관찰자 시점의 모법답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장남과 장녀를 잇달아 잃은 까닭에 천도재에 집착하는 시어머니의 모습에서 질곡의 근대사를 이겨낸 한국의 어머니상을 읽을 수 있었다. 시어머니가 증손자인 재민의 손을 잡는 말미는 감동적이거니와 “부레옥잠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돌아야 했던 여인이 설운 울음 끝에 설핏 지어보이는 웃음이었다. 재민의 눈망울 속에는 아득한 시공간을 가로질러온 영원의 별빛 같은 것이 서려 있었다.”라는 문장에서 알 수 있듯 문체미학도 돋보였다. 다만, 작품 속 장남과 장녀의 죽음이 구체적인 역사 사건에서 비롯된 것으로 묘사했다면 시어머니의 상흔이 한국사의 상흔으로 확대되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당선작인〈영장류의 골목〉은 앞서 언급한 두 작품에 비해 서사가 평면적인 반면, 문장의 밀도가 높았다. 신춘문예는 당선작을 뽑는 동시에 당선자를 뽑는 제도이다. 밀도 있는 주인공의 심리묘사에서 응모자의 오랜 숙련 기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더 많이 먹고 더 많이 뇌를 쓰는 영장류의 골목”을 향해 “앞으로 조금씩 끌겨가듯 종종걸음을 치면서도 또 얼마간은 게처럼 자꾸 옆걸음으로 나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정보화혁명 시대의 속도경쟁 사회에는 어울리지 않는 아날로그형 인간이다. ‘영장류의 골목’에서 방황하는 주인공은 숭고미가 사라진 시대의 문학인의 초상인지도 모르겠다.

당선자는 ‘문학’이라는 영장류의 골목에 진입한 만큼 확실한 자신의 족적을 남기길 바란다.

당선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신 두 응모자는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나라. 이 이치를 벗어나서 일어서기를 바라는 것은 옳지 않다.”는 보조 지눌 국사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서 다른 지면에서 만나길 바란다.

심사위원 : 윤후명, 유응오(예심, 대표집필)

【당선소감】 아름다운 우리말로 진실한 마음에 대해 쓰는 작가 될 터

 

 

문학에 병들었으나 치료할 시기를 놓치고 나자 과연 어떤 병을 앓았는지조차 까마득히 잊었습니다. 잊었다고 병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메마른 바닥을 딛고 한 발 한 발 떼어야 했습니다. 뗄 수나 있을지 겁이 났으나 막상 떼어 보니 내디딜 수밖에 다른 길이 없었습니다.

나날이 아득했고 번거로웠고 어지러웠습니다. 하루하루 마음의 사막을 걸으며 왜 걷는지, 어떻게 걷는지 몰랐습니다. “말하자면 어젯밤에도 은하수를 건너온 것이다.”, “몸에 별똥별을 맞으며 우주를 건너야 한다.”는 시처럼 무시무종(無始無終) 건너야 한다는 뜻인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포기하지 않았을 뿐이어서 당선의 영광을 누리게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아름다운 우리말’로 ‘진실한 마음’에 대해서 쓰는 소설가가 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프로필〉
-서강대 사회학과 졸업
-'낭독은 입문학이다' 저자
-KBS1라디오 '라디오 전국일주'-'우리땅 예술기행' 패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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