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진년 새해를 맞이하며

불기 2568년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가 밝았다. 힘차게 떠오른 태양은 희망과 기대, 설렘이라는 새해 선물을 우리에게 안겨줬다. 해가 바뀔 때마다 덕담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격려하는 일은 우리의 오랜 풍습이다. 하지만 우리 앞에 놓인 엄혹한 현실과 불안한 미래를 보며 막연한 희망과 기대에만 머물 수는 없는 일이다.

나라 안팎의 사정이 매우 어렵다. 경기침체와 가계부채 등으로 서민들의 팍팍한 삶은 개선될 기미가 안 보인다. 정치권은 민생문제를 외면한 채 다가오는 총선거를 앞두고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쟁에만 바쁘다. 노사문제를 비롯, 각종 갈등 현안을 둘러싼 대립과 충돌로 곳곳에서 막대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치르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참혹한 전쟁은 그칠 줄을 모르고,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동북아 정세는 격랑의 연속이다. 남북관계도 최악의 상태다. 북핵 문제는 좀처럼 해소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김정은 정권은 시도 때도 없이 미사일을 발사해 긴장국면을 조성하고 있다. 돌발 사태 발생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수록 국가 전체가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시선을 교계 쪽으로 돌려보면 종교편향은 한층 더 노골화되고 있다. 국가 최고 지도자가 헌법의 근간이 성서에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대한민국 탄생 배경에 한국교회의 공헌이 지대했다는 ‘1948년 건국론’ 주장을 옹호했다. 그 어느 해보다도 정부 인사에서 불자 배제 현상이 심화되는 가운데 뉴라이트계 인사 임명이 두드러졌다. 가장 큰 공분을 산 것은 서울 종로 한복판 송현공원 안에 대한민국 ‘최초·최대 종교편향 대통령’으로 꼽히는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한다는 서울시의 계획이었다.

이렇듯 나라 안팎과 교계가 처한 현실을 인지한 불자들에게 이를 극복하려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한국불교태고종 종정 예하 운경 대종사는 신년 법어에서 신심(信心)의 고양(高揚)을 제안했다. “우리나라 모든 불자들의 신심이 발로(發露)해 참불교인의 신행을 갖추면 현하 어려운 우리나라의 정치구도나 경제의 난국도 해결될 것이고 국가안보나 국가위기극복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셨다. 불교에서의 신(信)은 마음이 어떠한 것인가를 똑바로 알아서 그대로 실천하고, 그대로 실천하면 반드시 훌륭한 일이 생긴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다. 신라의 원효는 신을 ‘크게 그렇다(大然)’고 믿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승기신론소》에서 신심을 직심(直心)과 심심(深心)과 대비심(大悲心)을 함께 갖춘 것이라고 정의했다. 이때의 직심은 세상을 동체(同體)의식을 가지고 평등하게 보는 마음이고, 심심은 지극히 선한 마음이며, 대비심은 자비스러운 마음이다.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장 상진 스님은 신년사에서 “올해 우리는 국민의 대표를 선출하는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있다”면서 “주권시민의 한 표를 현명하고 눈 밝게 행사해 어질고 능력 있는 사람을 선출함으로써 동체대비(同體大悲)의 대동사회(大同社會)를 만들자”고 역설했다. 가는 곳마다 우리가 주인이라는 의식을 고취하면서 종교 본래의 책무인 사회 그늘진 곳을 향한 관심을 지속하겠다고도 했다.

종정 예하의 법어와 총무원장 스님의 신년사는 올 한 해 동안 종단이 지남(指南)으로 삼아야 할 가르침이다. 길은 정해졌다. 격변하는 세계정세와 주변환경은 더 이상 우리 내부의 분열과 갈등을 용납하지 않는다. 청룡의 힘과 용기를 바탕으로 탐(貪)·진(瞋)·치(癡) 삼독을 제거하고 굳건한 신심을 다져가자. 화합한 육부대중이 동체대비심으로 세상과 소통해나갈 때 자유와 정의, 공정과 상식이 넘쳐나는 대동사회는 우리 앞에 다가올 것이다. 갑진년 한 해 부처님의 가호지묘력으로 온 나라 가정에 건강과 평안이 가득하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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