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앞둔 연말이면 세간의 이목을 끄는 뉴스가 있다. 2001년부터 교수신문이 발표해 온 ‘올해의 사자성어’다. 교수신문은 매년 12월 교수들의 추천과 투표를 거쳐 올해의 사자성어를 결정한다. 주로 한 해를 돌아보고 시대를 통찰하는 뜻이 담긴 단어가 등장했다.

2023년은 견리망의(見利忘義). ‘이로움을 보느라 의로움을 잊었다’는 의미다. 이를 추천한 어느 교수는 “우리나라의 정치인은 바르게 이끌기보다 자신이 속한 편의 이익을 더 생각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2022년은 과이불개(過而不改).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잘못이 일어나도 서로 남의 탓만 하고 고치지 않는 것을 보고 선정했다. 2021년은 묘서동처(猫鼠同處). 고양이와 쥐가 함께 있다는 말로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편이 되었다’는 뜻이다. 2020년은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는 뜻의 ‘내로남불’과 같은 아시타비(我是他非), 2019년은 좌우대립이 심화함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새’를 의미하는 공명지조(共命之鳥)를 각각 뽑았다.

최근 5년 치를 살펴보면 긍정과 희망이 담긴 사자성어와는 거리가 멀다. 첫해(2001년)는 오리무중(五里霧中), 다음 해는 이합집산(離合集散), 그다음 해는 우왕좌왕(右往左往)이었으니 ‘올해의 사자성어’는 출발부터 사바세계의 복잡다단한 현상을 드러내 비판하는 의미를 담아 세상에 나온 것이다. ‘올해의 사자성어’ 발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국립대 석좌교수를 역임한 어느 학자는 SNS를 통해 “교수들이 행동은 하지 않고 한자로 하는 문화놀음이라 역겹다, 국민들이 평소에 쓰지도 않는 단어로 가르치려 드는가, ‘과이불개’를 알아듣는 한국인이 얼마나 되겠는가”라고 혹평했다. 이에 대해 어느 네티즌은 “한 해를 돌아보면서 지식인 교수 집단이 시대를 성찰해보는 계기가 되고, 사자성어의 압축미가 복잡한 사안의 본질을 단번에 꿰뚫어 보게 하는 순기능이 있다”는 의견을 달기도 했다.

지나간 한 해를 돌아보는 ‘올해의 사자성어’는 그렇다 치고, 기왕이면 ‘새해의 사자성어’도 있으면 어떨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긍정과 희망과 출발의 의미를 담은 사자성어로 말이다. 누가 필자에게 묻는다면 ‘어디서든 주인이 돼라’는 임제 선사의 수처작주(隨處作主)를 추천하고 싶다. 새해에는 심기일전(心機一轉)으로 수처작주(隨處作主)해서 만사형통(萬事亨通), 복덕원만(福德圓滿), 일신월성(日新月盛)하시길 기원드린다.

-월간〈불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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