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후명의 '둔황의 사랑'

달밤이다. 먼 달빛으로 사막을 사자 한 마리가 가고 있다. 무거운 몸뚱어리를 이끌고 사구(砂丘)를 소리 없이 오르내린다. 매우 느린 걸음이다.

쉬르르쉬르르. 명사산의 모래가 미끄러지는 소리인가. 사자는 아랑곳없이 네 발만 차례차례 떼어놓는다. 발자국도 모래에 묻힌다. 달이 더 화안히 밝자, 달빛이 아교에 이긴 은니(銀泥)처럼 온몸이 끈끈하게 입혀진다. 막막한 지평선 끝까지 불빛 한 점 반짝이지 않는다. 사막의 한복판에 사자의 그림자만 느릿느릿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다.〈중략〉
누란(樓蘭)을 지났는가.
돈황(敦煌)을 지났는가.
가도 가도 끝없는 허공을 사자는 묵묵히 걷고 있다. 발을 옮길 때마다 모래 소리가 들린다. 달빛에 쓸리는 모래 소리인가, 시간에 쓸리는 모래 소리인가. 아니면 서역 삼만리를 아득히 울어 온 공후 소리인가. 그때 누군가가 중얼거린다.
아이야, 사내애였다면 혜초처럼 먼 곳으로 법(法)을 구하러 떠났다치렴. 계집애였다면 사막 속에 곱게 단장하고 있다고 치렴. 그렇다고들 치렴.

 

한국 소설에서 문체미학으로 손꼽히는 윤후명의 〈둔황의 사랑〉의 말미이다. 〈둔황의 사랑〉은 ‘윤후명식 서사’의 기틀을 마련한 작품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시적(詩的)인 소설 쓰기”라고 규정하고 있다. 윤후명의 작품들은 스토리 라인이 없다. 그 대신 작가가 차용한 방법은 다양한 메타포들을 별자리처럼 연결시켜 하나의 알레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윤후명 소설의 압권은 결미에 있다. 다소 지루하다 싶었던 문장들이 끝에서 하나로 귀결되면서 모두 살아서 운다. 인고의 세월을 견딘 끝에 피어난 ‘진흙 속의 연꽃’처럼.

각기 제재가 다르지만 결국 그의 글들은 ‘영원성의 희구’ 때문에 ‘시원성의 회귀’를 한다. 비유하면 윤후명식 서사는 두 개의 바퀴로 굴러가는데, 첫 번째 바퀴가 문체라면 두 번째 바퀴는 주제다. 작가가 평생에 걸쳐 탐착(貪着)한 것은 ‘영원성’이다. 유한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입장에서는 영원이라는 시간은 절대자의 영역에 해당한다. 즉, 인간의 시간은 ‘영원’의 반대급부인 ‘찰나’에 가깝다. 장구한 우주의 역사에 비하면 한 사람의 생애가 얼마나 보잘 것 없는가? 윤후명 작품의 문학성은 찰나의 사랑을 영원의 시공간으로 끌어올린다는 데서 확보된다.

〈둔황의 사랑〉은 제3회 녹원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이 작품에는 둔황·혜초스님·북청사자춤·탈춤 형성에 공을 세운 기생 금옥(錦玉)의 일화·누란과 미이라·고대 악기인 공후 등 수많은 신화적 (혹은 설화적) 제재들이 등장한다. 소설의 줄거리를 간단히 살펴보자.

주인공 ‘나’는 어제 친구와 술을 마시고 만취되어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철제 침대에서 잠이 깬다.
연극 연출가인 친구는 항상 자기와 함께 일할 것을 권유해 왔다. 어제도 창작 극본의 소재가 될 둔황 석굴에 관한 자료를 가져와 화자에게 ‘둔황의 사랑’이란 제목으로 신라시대 스님 혜초의 사랑과 구도의 길을 바탕으로 극본을 만들어 보길 권유했지만 화자는 거절했다. 아내가 자궁근종 병원치료를 받으러 간 사이 화자는 다시 친구를 만난다. 화자는 친구와 사자놀이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화자는 조선시대 탈춤의 역사와 관련된 ‘금옥’이라는 기생과 그녀를 사랑한 한 사내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둔황 벽화의 유물이 우리나라 국립 박물관 지하에 있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화자는 혜초와 사자춤이 연관돼 있다고 생각한다.
저녁이 되자 화자는 병원 치료를 받고 온 아내와 음식점에서 만나 함께 식사를 한다. 화자는 사자꿈을 꿨다고 꾸며서 말한다. 아내는 ‘개꿈’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화자는 집으로 돌아와 창 밖의 달을 보며 북청사자 놀이의 사자와 돈황벽화의 사자를 떠올린다. 그리고 시공을 넘나드는 환영에 휩싸인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가 꿈꾸는 ‘둔황’은 현실과 환상이, 색(色)과 공(空)이, 전생과 현생이 뭉뚱그려져 있는 이상세계라는 점이다.
소설 속에서, 수천 년 전의 둔황의 사자는 사자놀이로 재현되고, 용(用)을 잃어버리고 체(體)만 남은 악기 공후인의 소리는 소녀의 음성을 통해 되살아난다.
무거운 몸뚱어리를 이끌고 먼 달빛의 사막을 가로질러온 사자는 화자 자신이 되고, 사자의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모래가 잔뜩 엉겨붙은 쉰 목소리는 화자의 음성이 된다. 그리하여 화자에게는 찰나(刹那)는 영겁(永劫)이 되고, 일념(一念)은 무량겁(無量劫)이 된다.
운후명 문학의 미학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단 한 번 꽃을 피움으로써 생명을 다하는 대나무처럼 도저하고 처연하다. 슬프고 아름답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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