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신문 제 619호(2014년 2월 25일자) 사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제아무리 보배로운 구슬일 지라도 조직화 되지 못한 채 흩어져 있다면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다는 말일 것이다.
정통적인 면에서 한국불교의 적자종단을 자임하고, 종세에 있어서 제2종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우리 한국불교태고종이 최근 그 위상과 앞날이 우려할 만큼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종도라면 누구나 체감하고 있다. 한 마디로 종단이 침체에 빠져있는 것이다.
그러한 종단의 침체 원인을 살펴보면 한두 가지가 아니겠지만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전국신도회를 비롯한 각 교구와 사찰의 신도회가 조직화, 활성화 되지 못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태고종을 대표하는 전국신도회는 그동안 명목상으로만 존재하였을 뿐 그 실체가 과연 있는가 하는 정도로 빈약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불교에 대해 몰이해한 자유당 독재 권력을 등에 업고 등장한 일부 세력에 의해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어쩔 수 없이 종명마저 바꾸어야 했던 당시 종단의 처지에서는 무엇보다 시급한 것이 종세를 회복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종단관이나 종단운영을 위한 재정적 부담을 담보하지 하지 않은 채 양적인 종세 확장에 치우친 나머지 질적 향상을 꾀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개인주의 내지는 분파주의에 빠진 폐단이 이제 나타나고 있지 않은지 심히 우려된다.
우리 종단의 신도회 역시 마찬가지다. 개별 사찰의 신도회는 그나마 유지되고 있지만 자신이 속한 사찰에만 치중할 뿐 교구나 전국신도회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어쩌면 세속의 일에 밝은 재가불자들이 사찰이나 종단에 참여함이 오히려 귀찮거나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에서 적극적으로 육성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불교교단은 초창기부터 분명히 출가대중과 재가불자를 아우르는 사부대중으로 이루어졌고, 이는 새의 양 날개이자 수레의 두 바퀴로 비유된다. 따라서 재가불자가 참여하지 않은 교단은 나를 수 없는 새이자 구르지 못하는 수레라고 하겠다.
모든 일이 이루어짐은 시절인연이 있다고 했다. 종단의 개혁과 발전을 내세운 도산 총무원장 집행부의 출범과 더불어 연륜과 능력을 갖춘 정경조 전국신도회장의 등장은 종단의 한 축인 우리 종단의 재가불자들을 하나로 꿸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이다. 정경조 회장은 군 장성 출신으로 조직과 운영에 있어서 누구보다 능력을 갖춘 분으로 평가되는데, 전국신도회는 우선 우리종단의 신도들이 태고종도라는 정체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100만 서명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종도스님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주어야 한다. 종단 출범 이후 세 분의 전국신도회장이 있었지만 지방은 물론이고 전국신도회 조직마저 유명무실한 채 방치된 현실에서 조직의 기반을 갖추는 일은 각사의 주지스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전국신도회의 목표대로 100만인이 서명하여 그다지 부담 없는 약간의 신도회비를 납부해 준다면 우리 종단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정도의 신도회가 구성되면 정치, 사회, 경제적인 면에서 종단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고, 대 사회적인 막강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종도들은 ‘100만 서명운동’이야 말로 종단을 일으키는 대작불사라는 점을 깊이 생각하여 혼신의 힘을 다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적극 나서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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