⑧ 반야바라밀다의 해당 비구

해탈 장자가 일러준 데로 마리가라국에 도착해보니 길옆에 가부좌를 틀고 깊은 삼매에 빠진 해당 스님을 볼 수 있었다. 마치 죽은 듯 숨을 쉬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그의 발바닥에서 수많은 거사와 장자, 브라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화려한 옷을 입고 보석으로 만든 왕관을 썼으며 예쁜 꽃들과 향기로움으로 주위를 장엄하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스님의 무릎에서는 수없는 브라만과 크샤트리아 같은 왕족들이 튀어나오고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도 우르르 나오자 크샤트리아 왕족들이 가난한 이는 넉넉하게 해주고 병든 백성들을 병이 낫게 해주며 마음이 지친 이는 따뜻한 말로 다독거려주었다. 또 허리에서는 신선들과 중생들이 같이 쏟아져 나오더니 신선들이 꽃과 풀잎으로 약물 만들어 갖은 방편과 지혜로 중생들의 지은 죄를 물병으로 씻어내 주고 있었다.

卍자가 새겨진 해당 스님의 가슴에서는 수많은 용이 날아와서 아수라왕들을 에워싸며 하얀 유리 보석 연꽃과 보배 구름, 아름답고 보배로운 꽃들로 장엄하면서 아수라왕은 나쁜 마귀들을 쫓아내고 지옥 중생들에게는 법비를 내려 불안과 근심을 덜고 극락으로 인도해 마음의 평화를 얻게 해주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해당 스님의 머리 앞부분인 정수리에서는 여래의 모습이 뿜어져 나왔다. 거룩하고 잘생긴 얼굴에 깨끗하고 찬란한 광명이 사방에 비추어 그 당당한 모습이 나타나자 위엄에 눌려 모두가 찬탄하고 고개 숙여 존경을 표하였다.

선재와 보리는 만화 영화를 보는 것처럼 발바닥에서 이마까지 여러 형상이 쉴 새 없이 몸에서 나왔다 들어가기를 반복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해당 스님이 삼매에서 깨어나기만 기다렸다. 그것은 하룻낮, 하룻밤, 사흘, 일주일, 보름, 한 달…. 얼마나 오래 기다렸을까, 6개월의 시간이 번개처럼 빠르게 흘러가고 스님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듯 큰 숨을 쉬며 눈을 떴다. 선재와 보리는 크게 엎드려 절을 하며 물었다.
“거룩한 스님이시여, 이토록 신기하고 희한한 형상을 보여주시는 데는 무슨 까닭이있습니까?”
해당 스님이 말하였다.
“여기 마리가라는 장엄의 세계를 나타내는 말이다. 부처님의 자유자재로 한 신통력과 불법을 누구든 평등한 지혜로 받을 수 있는 광대원만 무애대비심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이것이 곧 삼매이며 넓은 눈으로 보아 많이 얻었다가 또 모든 것을 버려야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 게 반야 바라밀이라 한다.”
“오빠, 무슨 말씀하시는지 어려워서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네.”
보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중얼거렸다.
“가만있어, 이따가 설명해 줄게.”
해당 스님은 가슴에 새겨진 만자를 가리키며 오랜 삼매로 인해 한없이 빛나는 눈동자로 보리를 쳐다보았다.
“나는 반야 바라밀다를 닦았으므로 부처님의 한량없는 묘법과 반야 지혜로 백만 아승지 삼매를 얻었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보다 더 없는 세계의 것들을 눈으로 보고 들어서 내가 다 가지고 있어 커다란 만족감이 나를 지배할 때 그것을 과감히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어리석은 중생들은 부처님을 만나지 못할 것이다.”
선재는 참다운 선지식의 말씀에 깊이 감동하며 세간의 지혜와, 출세간의 지혜가 이렇게 다르다는 것에 머리 숙여 공경의 뜻을 전하고 보리를 데리고 구석진 곳으로 갔다.
“자, 보리야. 내 말 잘 들어봐! 너의 사랑하는 엄마가 맛있는 떡과 과자, 사탕을 사 오셔서 너 혼자 다 먹으라고 했어. 근데 너는 너무 맛있으니까 조금씩 아껴 먹으려고 숨겨 놓았는데 친구들이 와서 그걸 달라고 하면 다 줄 수 있겠니?”
“아니, 몇 개는 몰라도 다 달라하면 어떡해?”
“그러니까 말이야.”

삽화=서연진 화백
삽화=서연진 화백

 

“그러면 걔들은 나한테 무얼 주나?”
“아무것도 안 주고 받아먹기만 할 거야.”
“그러면 화가 날 거 같아.”
“그것 봐. 너는 가진 것을 다 주었는데 걔들이 안 주면 화가 나지? 화가 난다는 것은 네가 친구들에게 바라는 게 있어서 화가 나는 거야. 엄마는 너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다 먹으라고 했지? 근데 엄마는 화를 냈어? 안 냈어?”
“아…!”
보리는 그제야 해당 스님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부처님도 그러셨다. 보리가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기도해서 내가 왔노라고…
선재동자가 깜짝 놀라며 마음속 깊이 깨달은 표정의 보리를 보고 팔을 벌려 꼭 안아주었다.
“너희 둘은 친남매 같구나, 생긴 것은 다르게 생겼는데 말하는 것이며 행동이 비슷해.”
선재와 보리는 늘 같이 다녀서 그렇다고 하면서 두 손을 마주 잡고 하하하 웃었다.
“너희들은 내 몸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그게 저, 발바닥에서…. 아저씨들하고…. 가슴에는 수많은 용하고…. 이마에서는 부처님이….”
보리가 당황하여 말을 더듬자 선재가 넙죽 땅바닥에 엎드리며 말했다.
“아이고, 스님. 보리는 아직 어려서 잘 모릅니다. 스님의 몸에서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엄당으로 꾸며져 있었고 저희가 본 것은 오로지 형상들이라 아무 것도 본 게 없습니다.”
“역시 선재는 선지식들을 만나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구나. 내가 온몸으로 찬란한 빛을 내며 갖가지 형상을 나타낸 것은 반야바라밀을 깨달아 여러 형상의 본질이 본래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금강 반야바라밀의 사구게를 통해 말씀하셨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 비상 즉견여래….”
선재는 사구게를 듣자 몸이 떨리면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해당 스님의 언행을 닮고자 그의 말소리와 동작을 큰소리로 따라 해보았다.
“맞아, 스님의 발바닥에는 브라만 대신, 범소유상! 무릎에는 크샤트리아 대신, 개시허망! 허리는 신선 대신, 약견제상! 가슴은 비상! 이마는 즉견여래!”
이에 보리도 두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맞아,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 비상 즉견여래! 근데 오빠, 이건 무슨 뜻이지?”
“아까 말해줬잖아,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으면 부처님을 뵐 수가 있다는 거...
바로 너를 두고 하는 말이야.”
해당 스님이 선재의 말이 흡족한 지 손뼉을 딱 치며, “그렇고 말고, 깨달음의 보리도를 얻는 것은 집착과 성냄도 없고 칭찬과 비방에도 흔들림이 없이 마음이 편안해야 함이지. 이 마리가라국은 아까 말한 것처럼 장엄의 나라이다. 장엄을 한다는 것은 부처님에 대한 지극한 존경심과 예의를 나타내는 것으로 예불을 올릴 때 목탁과 요령, 징과 북, 혹은 종을 치는 것은 의식을 여법하게 치르는 장엄 의식이란다. 또 사찰의 천정이나 벽에 단청을 칠할 때 밝은 녹색이나 초록색을 칠하는 것은 소나무의 푸른 솔잎 같은 변함없는 신심을 뜻하고 기둥은 소나무 커다란 줄기를 나타내는 것으로 든든한 믿음을 상징하는 것이야. 그래서 절에는 소나무 그림이 많은거란다.”
보리가 스님의 말씀을 듣고 눈동자가 커지면서 초롱초롱해지더니 선재에게 말했다.
“오빠! 그래서 절에 벽이나 문은 거의 다 초록색이고 고동색이었구나. 하항... 신기하다.”
선재도 보리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더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빙그레 웃고 있었다.
“자, 이제 선재는 남쪽으로 더 내려가 해조 마을의 보장원 동산의 휴사 보살을 찾아가거라. 나는 오직 한가지 반야 바라밀다 삼매 광명만 알 뿐으로, 보살들이 지헤의 바다에 들어가 삼매가 청정하고 신통력이 크게 변하고 원력이 생기는 문이 어디에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중요한 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여라.”
선재 동자는 6개월 동안 깊은 정이 들어 해당 스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렇게 깊은 삼매에 빠져 모든 것을 다 깨우침에도 한 가지밖에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너무 겸손하고 본받을 만한 일인 것 같아 두 손이 저절로 모아 지며 고개가 숙여졌다. 또 장엄 대한 설법을 들으며 마치 아주 좋고 귀한 재물을 얻은 것처럼 기뻤다. 삼매에서 이루어지는 환희심과 깊은 지혜가 생겨 부처님의 법을 바로 볼 수 있게 된 것도 마음이 평온해지며 온몸에 따뜻한 기운을 느꼈다.
사실, 보리도 뭔지 모르지만, 머리가 총명해지고 사리 분별력이 생기면서 조금씩 똑똑해지는 것 같아 그 지혜로움에 선재 오빠를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남쪽의 끝은 어디인지 걸어도 걸어도 끝없이 이어져, 보리는 지구가 왜 둥글까 하는 의구심이 생길 무렵 땅이 높은 곳도 없고 낮은 곳도 없는 보장원 동산이 나왔다. 그곳은 백만 궁전이 아름답고 화려한 보석과 황금과 백금이 섞인 지붕에 비로자나 마니보배가 궁전 곳곳에 깔려 있었다.

-2022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

【각주】

가부좌 : 다리를 반대쪽 넓적다리에 올려놓고 앉아서 수행하는 자세.
삼매 : 잡념을 버리고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것.
브라만 : 인도의 신분제도인 카스트의 사성제 중 가장 높은 계급인 승려를 말함.
크샤트리아 : 인도 신분제도는, 브라만(1급, 바라문이라고도 함, 승려), 크샤트리아 (2급, 귀족), 바이샤 (3급, 상인, 농민) 수드라 (4급, 노예)
방편 : 목적을 위해 이용되는 일시적인 수단과 방법.
: 卍자로 쓰며 산스크리트어로 스리바트사로 길상, 만덕으로 상서로운 일의 상징.
법비 : 부처님 말씀.
자재 : 저절로 나타나 있음.
묘법 : 훌륭하고 신기한 불법.
세간과 출세간 : 보통 사람과 속세의 생사 번뇌에서 벗어나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감.
장엄당 : 웅장하고 엄숙하며 화려하게 꾸민 집.
사구게 : 4구로 된 게문 (진리를 요약한 매우 깊은 뜻의 4구절).
범소유상, 개시허망 :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한 것.
약견제상, 비상, 즉견여래 : 만약 이 모든 형상이 진실 되지않고 허망한 것으로 보이면 곧바로 부처님을 뵐 수 있음.
단청 : 대궐이나 절 등의 벽·기둥·천장 따위에 여러 가지 빛깔로 그림과 무늬를 그림. 또는 그림이나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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