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권의 〈아내의 맨발−갑골문(甲骨文)〉

뜨거운 모래밭 구멍을 뒷발로 파며/ 몇 개의 알을 낳아 다시 모래로 덮은 후 / 바다로 내려가다 죽은 거북을 본 일이 있다/ 몸체는 뒤집히고 짧은 앞 발바닥은 꺾여/ 뒷다리의 두 발바닥이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다// 유난히 긴 두 발바닥이 슬퍼 보였다//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마취실을 향해/ 한밤중 병실마다 불꺼진 사막을 지나/ 침대차는 굴러간다/ 얼굴엔 하얀 마스크를 쓰고 두 눈은 감긴 채/ 시트 밖으로 흘러나온 맨발/ 아내의 발바닥에도 그때 본 갑골문자들이/ 수두룩하였다

— 송수권의 〈아내의 맨발−갑골문(甲骨文)〉전문

 

송수권은 2003년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아내 김연엽을 위해 〈연엽(蓮葉)에게〉라는 시를 써서 바쳤다. 김연엽이 과다출혈로 서울의 병원으로 이송되었을 때 의경들이 피를 나눠줬다. 의경들의 선행으로 말미암아 아내가 간신히 목숨을 건진 것을 감사하면서 송수권은 서울지방경찰청장에게 아래와 같은 편지를 썼다.

“저의 아내 연잎새 같은 이 여자는, 똥장군을 져서 저를 시인 만들고 교수를 만들어낸 여인입니다. 수박구덩이에 똥장군을 지고 날라서 저는 수박밭을 지키고 아내는 여름 해수욕장이 있는 30리 길을 걸어서 그 수박을 이고 날라 그 수박 팔아 시인을 만들었습니다. (중략) 몹쓸 ‘짐승의 피’를 타고난 저는 저의 아내가 어떻게 살아온 것인지를 너무나 잘 압니다. 청장님께 말씀드리지만 저의 아내가 죽으면 저는 다시는 시를 쓰지 않겠습니다. 시란 피 한 방울보다 값없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송수권은 2억 5천여만 원에 달하는 수술비가 부담스러워 골수이식을 거부하는 아내에게 “당신이 숨을 거두면 시를 쓰지 않겠다”며 간절하게 설득했고, 결국 그의 아내는 골수를 이식받았다고 한다.

이런 사연을 알고서 읽으면 〈아내의 맨발−갑골문〉의 비장미(悲壯美)가 더욱 극대화된다. 송수권의 〈아내의 맨발〉에는 유난히 길어서 슬퍼 보이는 두 발을 지닌 두 존재가 등장한다. 하나는 바다거북이고, 다른 하나는 화자(시인)의 아내이다. 모래에 몇 개의 알을 낳은 뒤 다시 바다로 돌아가다가 몸체가 뒤집힌 채 죽은 바다거북의 두 발과 수술을 앞두고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마취실을 향해 가는 침대차에 누운 아내의 시트 밖으로 흘러나온 두 발에는 갑골문자가 새겨져 있다.

《장자(莊子)》에는 ‘한단지보(邯鄲之步)’라는 고사가 등장한다. 자신의 본분을 잊고 함부로 남의 흉내를 내다가 본래 가졌던 것마저 잃는 상황을 의미한다. 초(楚) 나라 사람이 조(趙) 나라의 한단(邯鄲)에 갔다. 이 사람이 보기에 한단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멋져 보였다. 하여 한단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다가 한단 사람들의 걸음걸이를 익히기는커녕 자신의 걸음걸이마저 잊어버렸다는 내용이다.

흔히 인생의 궤적을 이력이라고 한다. 이력(履歷)의 뜻은 신발이 걸어온 길이다. 사람마다 하는 일이 다르고 걸음걸이가 다르다 보니 신발의 모양도 제 각각일 수밖에 없다.

인생이라는 길에는 두 가지 걸음걸이가 존재한다. 하나는 자신만의 걸음걸이로 걷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이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자신만의 걸음걸이로 걷는 사람들은 적은 반면, 한단지보의 고사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자신의 걸음걸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타인의 걸음걸이를 흉내 내는 사람들은 많다.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에서 반복에는 ‘동일자의 반복’과 ‘차이의 반복’이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동일자의 반복’이 다른 사람의 걸음걸이를 모방하는 것이라면, ‘차이의 반복’은 자신만의 걸음걸이로 걷는 것에 해당할 것이다.

두 가지 걸음걸이 중 어느 걸음걸이가 옳은지는 너무도 자명하다. 다른 사람의 걸음걸이를 따라 하는 사람은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엑스트라 내지는 조연밖에는 맡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만의 걸음걸이로 걷는 사람은 주인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인생길에서 자신만의 걸음걸이로 걷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가시밭길도 마다하지 않고 함께 걸어온 도반의 부르튼 두 발을 바로 보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삶이라는 고투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다. 두 발에 새겨진 ‘궤적의 무늬’ 그 ‘갑골문자’만큼 도저하고 웅숭깊은 오도송(悟道頌)이 어디 있겠는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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