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의 숲길은 쓸쓸하고 으스스하다. 이파리가 다 떨어진 나무들은 이제 엄동의 추위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 나뭇가지 사이를 넘나들며 지저귀던 이름 모를 새들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18일 기간을 정해 개방하는 태릉강릉 숲길을 맨발로 걸었다. 차가운 땅의 기운은 맨발을 타고 올라와 몸을 움츠리게 한다. 살짝 얼어 있는 땅의 습기는 따뜻한 내 몸의 열기를 대지로 끌어내린다. 모래가 되지 못한 굵은 돌부스러기들이 주는 자극은 아프기만 하다. 익숙하지 않은 맨발 걷기는 내겐 고통이자 고행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은 출가한 이후 진리를 찾아 황량한 사막과 히말라야의 설산을 맨발로 걸었다. 6년여의 고행 끝에 득도한 이후에도 45년 동안 맨발로 인도 각지를 돌면서 중생을 교화했다. 불교의 맨발 걷기 전통은 동남아 승가에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등지의 사원에서 스님들이 맨발로 수행하는 장면은 대중매체를 통해서도 자주 접할 수 있다.

중국 선종의 초조 달마대사와 양무제 이야기에서도 맨발이 등장한다. 자신의 불심과 공덕을 확인받고 싶어 했던 양무제에게 달마대사는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화가 난 양무제가 달마대사를 죽이려 했다. 도망가는 달마대사는 가랑잎 하나를 따서 강물에 띄우고 거기에 올라 유유히 강을 건넜다. 그때 모습을 그린 동화사 대웅전 벽화에서, 달마대사는 맨발인 채 가랑잎 위에 서 있다.

기독교의 예수도 맨발로 길을 걸었다. 나사렛 고을과 갈릴리 바닷가, 골고다 동산에서의 모습을 그린 성화들은 맨발의 예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라파엘로의 유명한 그림 ‘아테네 학당’에 등장하는 철학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맨발이다. 20세기 현대무용의 개척자 이사도라 던컨과 한국 전위무용을 대표하는 홍신자는 자신들의 예술혼을 토슈즈를 벗어버린 맨발의 춤으로 표현한다. 오래된 종교와 철학, 예술에서 맨발은 수행과 사유, 그리고 순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약간의 고통이 있을지언정 맨발로 걸으면 아무튼 기분이 좋다, 생명의 모체인 대지의 에너지를 나눠 받는다는 느낌 때문이다. 스트레스와 우울증 같은 오늘의 문명병은 대지와의 격리에서 비롯됐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은 ‘온국민 맨발 걷기의 날’이다. 대지의 사랑을 회복하기 위해 더 자주 신발을 벗어야겠다. 남이 아닌 나 스스로 건강하고 활력 있는 삶을 만들어가기 위해서다. 

-월간〈불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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