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두 / 종교평화연구원장

‘세계의 화약고 중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 사이에 유혈 충돌이 일어난 뒤 그 기세가 수그러들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가 심해지고 있다. 서로 “저 놈들 때문”이라며 ‘거칠다’는 표현만으로 담아낼 수 없는 독기毒氣 가득 찬 말을 쏟아내고 한 발짝도 물러설 태세를 보이지 않는다.

이 지역의 분쟁은 이곳을 수백 년 동안 지배했던 오스만 터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위임 통치(1920~48)했던 영국이 전쟁 초기 아랍민족주의를 자극하여 터키를 상대로 봉기하게 하려고 ‘아랍인들에게 이 지역을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깨고 유대인 국가 수립을 지지하면서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태인들의 이주를 허락한 데서 비롯된다. 결국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되면서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에서 추방당해 거의 100년에 가깝게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난민촌에서 살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몇 차례 치른 ‘중동전쟁’에서 아랍 국가들이 패하여 이스라엘 점령지가 넓어지면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 현재 이스라엘이 임의로 설정한 국경선 안의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570만 명에 가까운 팔레스타인인이 집단 거주하고 있다.

2016년 1월 이후 팔레스타인의 강경파가 집권하면서 이스라엘은 서쪽 바다와 동·북 육지 쪽 국경을 봉쇄하여 생활필수품과 구호품의 반입을 차단했다. 유일한 통로였던 남쪽도 이집트가 국경을 봉쇄하여 팔레스타인인 수백만 명이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으로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민간인의 피해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지만 최소한의 필수 의약품과 식량 공급을 차단하고 있어서 지옥에 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 지역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화약고가 되어 언제 어느 정도의 힘으로 폭발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된 데에는 앞에서 말한 대로, 멀리는 ‘오스만 터키와 영국’에서부터 ‘미국과 소련’의 대립에 이르기까지 강대국들이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을 펼치는 과정에서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한편 이 지역의 평화 정착 가능성을 봉쇄하고 있는 근본에는 똑같이 아브라함을 믿는 신앙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서로를 원수로 몰고 가는 종교 근본주의가 있다. 한편 서구 기독교 국가들이 과거 2천 년 동안 유대인을 악마로 몰고 가며 숱한 인명 피해를 주었던 자신들의 원죄를 감춘 채 ‘유대인 대 무슬림’의 갈등을 심화시켜 그 책임을 돌리려는 고도의 책략도 작용하고 있어서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든다.

사키야 족과 꼴리야 족이 두 부족 사이를 흐르는 로히니 강물 문제로 다투다가 전쟁 직전에까지 이르렀을 때 부처님께서 분쟁 현장에 나타나 말씀하셨다.

“여러분, 왜 이같이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려 합니까? … 여러분들은 상대방을 적으로 여겨 증오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시작하려는 싸움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원인이며, 이 싸움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불행을 부르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그대들의 손에 다시는 칼과 활을 잡지 마십시오.”

《화엄경》에서는 “일체중생이 모두 같은 뿌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決定了知一切衆生皆實同根)”고 하였다. 인간 사회를 함께 이루고 있는 나와 이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인간과 자연 생태계가 결코 남이 아니고, 이 지구가 생겨나 초미세 존재에서부터 진화해 오는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같은 뿌리에서 나온 똑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그런데 만물의 영장靈長이라는 인간이, 그 중에서도 거의 대부분이 유대교와 이슬람 신도로 신앙심이 매우 높다고 하는 이 지역 사람들이 똑같은 ‘하느님’의 이름을 내세우며 상대편의 피를 흘리게 하고 죽음으로 몰고 가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피도 흘리고 죽음의 골짜기로 달려가고 있다.

‘과연 인간이 만물의 영장일까? 분노 ‧ 증오 ‧ 원한 ‧ 복수심으로 평화와 행복을 가져온 적이 있었나?’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는 ‘이-팔, 팔-이’ 지도자들 스스로 답을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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