⑥ 묘음 다라니와 미가 장자

선재동자가 지남도의 그림에서 미가장자를 찾아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자
보리가 물었다.
“오빠, 우리는 왜 자꾸 남쪽으로만 가는 거야? ”
“으응…. 남쪽으로 가는 길은 문수보살 님이 가셨던 길로, 따뜻하고 밝은 길에 자비와
지혜 광명이 깔려 있는 거야, 너도 여태 오는 길이 춥지 않았잖아?”
“응, 그러고 보니 춥지 않고 늘 따뜻했네, 역시 선지식 스님들은 좋으신 분들이야.
흐흥...”
보리가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는지, 나비처럼 팔을 벌리고 팔랑팔랑 춤을 추는데 어디선가 여태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신비하고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소리에 이끌려 간 것은 드라비다국. 부처님의 넉넉한 가르침으로 초라한 생각들을 녹여 없애고 풍요함으로 자비를 베푸는 나라라는 뜻의 드라비다국이다. 그런데 보리는 선주 스님을 만날 때 너무 많이 울어서인지 배가 몹시 고팠다. 마침, 시장 근처에 다다르자 가던길을 멈추고 선재에게 말했다.
“오빠, 배고파.”
“응? 미가 장자님 만나러 가야 하는데…”
“나, 계란프라이에 따뜻한 밥을 비벼 먹고 싶어.”
보리는 엄마가 바쁠 때면 따뜻한 밥에 계란프라이 진간장을 넣고 맛있게 비벼준 생각이 떠올랐다. 거기다 고소한 참기름 한 방울 떨어뜨려서…
“그런 음식도 있냐? 나는 카레가 제일 맛있는데.”
둘은 시장 모퉁이의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식당 주인인 할머니는 달걀은 없다고 하면서 우유죽을 따뜻하게 데워 주셨다. 보리가 허겁지겁 먹는 동안 선재가 물어보았다.
“할머니, 달걀이 왜 없어요?”
할머니는 그 말에 한숨을 쉬는데 눈에는 찐득찐득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뱀이, 뱀이 다 물어갔어요. 닭장에 닭들도 다 죽이고, 메추라기 농장은 그 많은 알까지 죄다 먹고 아예 거기서 자기 집처럼 뱀들이 우글우글 살아요.”
“우웩!”

삽화=서연진 화백
삽화=서연진 화백

 

보리가 뱀들이 우글거린다는 말에 먹던 죽을 토해버렸다.
할머니가 놀라서 달려오고 선재는 수건으로 보리의 입을 닦아주며 놀렸다.
“에헤이, 뭘 그 소리에 토하기까지… 우리 동네에서는 뱀들이 피리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데…”
“춤추는 뱀하고 달라요, 아주 마음씨 나쁜 독사들이 새끼까지 낳아서 농장 전체에 우글거린다니까요.”
“메추라기알이면 우리가 장조림 해 먹던 메추리알 말씀인가요?”
“장조림은 모르겠고 메추리알은 맞아요.”
“동네 사람들은 왜 뱀들을 처단하지 못하고 내버려 두는 거예요?”
“뱀들이 살모사라 무서운 독 때문에 가까이 갈 수도 없고 뱀들도 여기저기 새끼가 생기자 똬리를 틀어 새끼를 안고 다니는 통에 잡아 죽일 수가 없어요.”
할머니는 눈에서 다시 찐득한 눈물을 닦으며 하는 말은, 딸이 있었는데 뱀을 물리쳐보려고 하다가 독사에게 물려 죽었다고 했다. 너무나 슬프고 원통해서 울다 보니 눈에서 피가 나고 결국은 눈이 짓물러서 고름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럼, 거기 한 번 가봐요.”
선재가 말했다. 오빠! 무서워진 보리가 선재를 잡아끌었지만, 오색주머니에서 붉은 구슬을 꺼내 들고 선재는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우물쭈물하던 보리와 할머니도 주춤주춤 그 뒤를 따라갔다.
그때, 신비하고 아름다운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 나아아 아 아 — 이, 이 이이에 야아 아 – 오오 - 오 오오오 아아 무우 - 그 윽 락 도오사 아아 – 아미 타 아불 -
“앗! 미가 장자님이시다.”
선재가 시장 한복판에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바퀴 륜’ 자 장엄법문을 하고 있는
미가 장자를 찾아 그의 발 아래 엎드려 절을 하였다. 미가 장자가 말했다.
“착한 남자여, 그대는 무상 보리심을 내었는가?”
“그러하나이다.”
그러자 미가 장자가 갑자기 선재 동자 발 아래 엎드려 오체투지로 큰 절을 세 번 올린 뒤
“착하다, 착하다. 무상 보리심을 내었으니 너의 모든 세계가 이제 깨끗해지고 모든 중생이 깨달아 탐욕을 없애게 할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런데 붉은 구슬을 들고 어디로 가는 게냐?”
미가 장자가 선재에게 큰절을 올리는 것을 보고 보리와 할머니도 덩달아 선재에게 절을 하였다.
“아이고, 이렇게 훌륭하신 분인 줄 몰라 뵈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메추라기 농장에 살고 있는 뱀의 무리를 처단하러 가는 길입니다. 아무쪼록 저희를 도와주시어 불쌍하고 처참하게 죽어간 제 딸의 영혼을 달래주소서.”
할머니는 선재와 미가 장자를 번갈아 쳐다보며 사정하였다. 눈에는 계속 진물이 흐르고 화가 난 손은 벌벌 떨고 있었다. 미가 장자가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가 다시 합장을 한 채 기도하듯 말하였다.
“보살행을 하고, 보살도를 닦으며, 보리심을 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이미 선재는 무상 보리심을 내었으니 나쁜 악의 무리를 처단하고 물리칠 수 있는 부처님의 가피가 생겨났도다. 다행히 내가 묘음 다라니로 사악한 뱀들의 마음을 바로 잡아놓고, 억울하게 죽은 딸은 한을 풀어주어 잘 천도 할테니 선재는 뱀의 무리를 화탕지옥으로 가게 붉은 구슬을 뱀의 소굴로 던져버려라.”
“예”
선재는 이 선지식이야말로 차별 없이 깨끗하고 지극한 신심을 가지신 분이라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지고 한없는 존경심에 눈물이 났다. 부처님의 가피가 함께 한다니 용기백배, 보리의 손을 잡고 뱀들의 소굴 메추라기 농장으로 들어갔다.때를 맞추어 미가 장자의 신묘한 묘음 다라니가 농장에 가득하였다.
“항마진언... 오오옴 소마니 소마니 후움, 흐리한나 흐리한나 후움, 흐리한나 바나야 훔, 아나야 혹, 바가밤 바즈라 훔바탁 !!! 49번 아니 108번!!!”
묘음다라니 소리에 새끼 뱀들이 꿈틀거리고 아빠 독사와 엄마 독사는 위험을 감지했는지 입이 찢어져라 벌려 독을 뿜으면서 선재 쪽으로 빠르게 기어 오기 시작했다.
보리와 할머니는 선재 뒤에 숨고 선재는 있는 힘을 다해 붉은 구슬을 뱀들에게 던졌다.
“이야압. 닭들과 병아리, 메추라기를 잡아먹은 사악한 뱀들은 모두 화탕지옥으로 가거랏!!!”
하지만 뱀들은 서로 엉키어 죽어가면서도 독을 있는 대로 뿜기 시작하였다. 독들은 하얀 안개처럼 서서히 퍼져서 선재 동자와 보리는 정신이 몽롱해지고 할머니는 이미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이를 어쩌지…. 나는 참을 만한데…. 보리가 걱정이네. 으으 으응! 눈을 감지 않으려 하는데 자꾸만 눈이 감겨온다. 얼마가 지났을까. 꿈을 꾸듯 몸이 둥실 떠오르는 사이를 비집고,
아아아--- 아아아 아아아 – 아 – 아아아 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아아---
달콤한 천상의 노랫소리가 머리 속의 어두운 장막을 걷어내며 그의 눈을 뜨게 했다. 미가 장자가 한 손으로 보리를 안고 선재를 쓰다듬는다.
“이제 정신이 드는가? 그 독뱀은 염구라는 아귀 대장으로 아주 지독한 놈이지, 내가 다행히 그들의 말을 알아듣고 화탕지옥으로 빨리 보내버렸어.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날 뻔했구먼. 아귀 대장 염구인지는 꿈에도 몰랐네. 모두를 사랑만 하는 마음이 넘치다 보니 이런 실수를 하게 되었다. 이게 다 바퀴 륜 자의 윤회법이니 내가 모르는 것은 남쪽 주림마을의 해탈 장자에게 보살도를 물어보시게나.”
“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가장자님.”
그 후 선재는 보리와 함께 할머니의 메추라기 농장을 깨끗이 청소한 후, 미가장자의 배려로 닭과 병아리, 메추라기들이 함께 살 수 있도록 잘 만들었다. 일주일 뒤, 할머니와 하직 인사를 하는데 그들의 손에 금방 삶은 듯 따뜻한 달걀을 쥐어주었다.
“선재 동자님 드릴 게 이것밖에 없네요, 저를 구해주시고 보살펴 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더 이상 진득한 눈물은 흘리지 않게 된 할머니가 선재에게 예를 갖춰 절을 하며 밝은 미소로 웃고 있었다.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거예요. 할머니, 아무 걱정 마시고 오래오래 사세요.”
보리가 할머니를 꼭 안아주니 엄마 같은 포근함이 느껴진다. 선재와 보리는 다정한 남매가 되어 주림마을로 발을 옮겼다.

-2022한국불교신문 신춘문예 동화부문 입상자

미가 : 아름다운 노래 (묘음다라니)
장조림 : 소고기를 간장에 오래동안 졸여 먹기좋게 찢어놓은 반찬
인도에서는 소를 먹지 않기 때문에 소고기 장조림은 만들지 못하고 없음.
바퀴 륜자 장엄법문 : 바퀴는 돈다는 뜻으로 륜을 의미하며 이를 윤회 사상에 비유한 법문을 말함.
무상 보리심 : 모든 것이 상이 없음을 깨닫는 마음.
오체투지 : 불교에서 절하는 방식으로 두 팔과 두 다리를 쭉 뻗어 바닥에 엎드리는것.처단 : 결단하여 처지하거나 처리 함.
천도 : 죽은 영가를 좋은 곳으로 올려보내는 것.
화탕지옥 : 불이 펄펄 끓는 지옥, 팔만사천 지옥 중의 하나.
항마진언 : 마귀와 마구니를 이겨 항복받게 하는 진언.
윤회 : 죽고 사는 것이 계속 돌아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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