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태고종 제20세 종정을 지낸 지허당 지용 대종사가 10월 2일 주석처인 순천 금둔사에서 입적해 8일 선암사에서 종단장으로 영결식을 봉행했다. 지허 대종사는 만 15세에 만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이후 경남 합천 해인사 용탑선원과 양산 통도사 극락선원, 통영 미래사 토굴 등지에서 용맹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종파를 초월해 고암, 경붕, 전강, 구산 스님 등 당대 제방의 큰스님들을 찾아 불법을 물을 정도로 수행과 구도의 열정이 남달랐다. 이러한 구도열정은 폐허가 된 비로암에 토굴을 짓고 3년간 두문불출하며 수행에 매진한 사실만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또한 선암사 주지를 지내며 적묵당, 조사당, 선각당을 순수한 사찰 자력으로 신축하고 성보박물관을 국·도비로 신축했으며, 폐사된 대승암을 복원했다. 또 대웅전을 비롯한 선암사 전체 당우를 거의 해체 복원했다. 아울러 지허 대종사는 1979년 7월 금전산 금둔사지에 금둔사를 복원 중창불사를 하여 입적할 때까지 금둔사에서 주석해왔다.

지허 대종사는 후학들에게 수행의 전범을 보여준 구도자다. 나아가 선암사 주지를 지내며 보여준 사판승으로서의 뛰어난 의지와 열정도 후학들이 배워야 할 애종심과 공명심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큰 별이 세연을 마치고 입적하였으니 종단으로서는 큰 손실이며 슬픔이다. 이를 이겨내는 방법은 대종사의 평소 가르침과 유지를 받들어 실천해 나가는 길 외엔 없다. 종도들이 함께 대종사의 사상과 업적을 길이 기리는 일을 만들어 나가길 바란다.

기억해야할 법난의 역사

국왕이나 정치권력이 불교를 박해하거나 탄압한 것을 불교에서 법난(法難)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에는 3무1종(三武一宗)의 법난이 있었고, 우리에겐 10.27법난이 있다. 10.27법난은 1980년 10월 27일 당시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가 ‘불교계 정화’를 명분으로 군인과 경찰 3만 2,076명을 동원해 전국 5,731개 사찰을 짓밟고 2,000여 명의 스님과 신도를 강제로 연행해 수사한 사건이다.

10.27법난 발생 직전에 불교계는 불교 관계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종단의 자율정화 지침을 마련하고 있었다. 반면 신군부세력은 불교계의 불교재산관리법 철폐와 자율정화에 대한 두려움, 1980년 5월 18일부터 발생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국민의 반발과 의식을 전환하려는 의도 등 다양한 목적으로 이 법난을 기획했다.

1980년의 종교계를 보면 불교보다는 기독교나 가톨릭의 일부 세력이 정권의 안전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었다. 불교계가 가진 위험성이 높지 않았음에도, 불교계를 정화대상으로 삼은 것은 신군부의 내란에 의한 국가권력의 남용이며, 불교계에 대한 자의적인 폭력 행사와 다름없다.

10월 12일 10.27법난 43주년을 앞두고 열린 ‘10.27법난 명예회복과 치유’ 주제의 세미나에서 참가자들의 의견은 일치했다.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과 진정한 사과, 피해보상과 배상이 그것이다. ‘10.27법난 피해자의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으나 법 내용의 완전한 이행은 이뤄지지 않고 피해자들의 상흔과 아픔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물론 불교계가 더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법난의 역사를 기억하고 모두가 연결된 공업 중생임을 자각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다. 이 뼈아픈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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