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넓고 넓은 바다의 해운 스님

 사람들의 떠들썩한 소리에 즈냐상어는 눈을 감았다. ‘큰일났네... 뱃속에 아기들은 어떡하지 ? 좀 더 깊고 조용한 데를 찾아 아기를 낳고 싶었는데 운이 나빠 그물에 걸렸구나. 정말 큰일났다, 좀 있으면 아기들이 나올 텐데... ’ 즈냐상어는 저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제 곧 태어날 아기 걱정에 하늘이 캄캄해졌다. 눈을 떠봐야 그물 속에 잡힌 신세라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탓도 있지만….
“우와아, 이 상어는 다른 상어 보다 크네…. 배도 통통하고… 아저씨, 이 상어 제가 살게요. 손님들도 살이 많아 좋아하겠어요.”
뚱뚱하고 마음씨 좋게 생긴 횟집 아줌마가 기분이 좋아 싱글벙글 웃으며 즈냐상어를 횟집 수족관에 넣어보려 하는 데 너무 커서 수족관이 꽉 차버렸다.
“아이고, 상어가 너무 크네. 오늘 당장 요리를 해야겠다. 돔배기 탕이랑 전을 맛있게 부쳐봐야지. 근데 배가 너무 불러 보이네.”
아줌마가 배를 툭툭 건드리자 배에 힘을 잔뜩 주고 있던 즈냐는 아기를 저도 모르게 쑥 낳고 말았다. ‘첫 번째 아기는 ‘금강(바즈라)이라고 짓고 싶었는데 수족관에서 낳게 되다니’ 즈냐는 다가올 위험에 몸이 떨렸다. ‘이 아이는 강하고 단단하게 키우고 싶었는데 오늘 밤을 못 넘기게 생겼으니 바즈라 한테 넓은 바다를 보여주지 못해 안타깝구나.’ 하지만 배는 진통으로 계속 아파 오고, 그걸 모르는 아줌마는 새끼 상어를 보더니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어머, 어머, 상어가 새끼를 낳았어. 아유! 귀여워라. 살이 찐 게 아니라 새끼를 가졌나 봐.”

 

삽화=서연진 화백
삽화=서연진 화백

 

사람들이 상어가 새끼를 낳았다는 소리에 우르르 횟집으로 몰려들었다. 선재동자와 보리도 수족관 앞으로 다가갔다. 엄마 상어는 괴로운지 눈을 뜨지 못하고 새끼 상어는 똘망똘망한 모습으로 엄마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잠시 뒤에 새끼들이 줄줄이 태어났다. 어떤 새끼들은 두 마리가 겹쳐 나오려 해 아줌마가 손을 넣어 차례로 한 마리씩 빼주었다. 보리가 세어보니 모두 열두 마리가 나왔는데 그중 첫 번째로 나온 아기가 제일 건강하고 씩씩해 보였다. 새끼들은 엄마 옆에 붙으려고 좁은 수족관 사이에서 서로 마주치지 않게 헤엄치며 엄마 배와 자신의 등을 어떻게든 붙여보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아이고, 오늘 장사는 다 했네. 비싸게 주고 사 왔는데 잡아먹을 수도 없고. 하지만 경사스러운 날이기도 하네요. 수족관에서 새끼를 낳았으니 좋은 징조 아니겠어요.”
“맞아 맞아, 엄마 돔배기 살려줍시다.”
사람들이 모두 손뼉을 치며 경사가 났다고 축하해주었다
그러나 수족관이 좁아 숨쉬기 힘들었는지 새끼 상어들이 비실비실 바닥에서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즈냐가 입으로 툭툭 건드려 보지만 여러 마리의 새끼들은 숨을 쉬지 않았다. 그때, 선재가 말했다.
“참, 우리는 해운 스님을 만나러 왔는데….”
보리도 깜짝 놀라 바다를 쳐다보았다. 우렁우렁 바다에서는 십 미터가 넘는 범고래를 타고 해운 스님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선재를 불렀다.
“ 야, 이놈들아! 바다에 왔으면 나를 찾아야지. 거기서 뭣들 하는 게냐.”
선재가 깜짝 놀라 엎드려 해운 스님의 발 앞에 절을 하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기를 마치고 이렇게 말했다.
“거룩하신 스님이시여, 저는 자비의 바다에서 욕심을 날려버리고 모든 난관과 나쁜 길을 없애고 악연을 선연으로 바꾸고자 합니다. 어떻게 도를 이루어야 하는지요.”
해운 스님이 범고래의 등에서 내려 선재동자의 이마에 손을 대었다.
“착한 선재동자야, 너는 그래서 한없는 자비의 깨달음을 얻고자 하느냐?”
“예, 여기 보리도 함께 깨닫고자 같이 왔습니다.”
“그럼, 저기 악연을 선연으로 바꾸는 곳으로 가보자.”
해운 스님은 그들을 횟집 앞으로 데리고 갔다. 그사이 즈냐는 많은 새끼를 낳느라 기운이 빠져 기진맥진해 있었다. 바즈라는 동생들이 자꾸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도 죽을까 봐 즈냐 옆을 뱅뱅 돌며 ‘엄마 죽지 마세요. 제발 눈을 떠 봐요’ 하면서 수없이 엄마에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바즈라가 다가오면 즈냐도 있는 힘을 다해 아기에게 사랑스러운 입맞춤을 해주려 애썼다. 수족관 앞에서 사람들은 다 죽고 세 마리만 남은 새끼상어와 지친 모습이 역력한 엄마 상어가 불쌍해서 발을 동동 굴렀다.
“무얼 먹여야 할텐데…. 뭘 주나? 저러다 나머지 애들이랑 어미도 곧 죽을 것 같네.”
“깊은 바다에 사는 상어라 깊은 바다의 물고기나 오징어를 먹는다고 하던데, 그거라도 줘봐요.”
“우리는 오늘 산오징어가 없어요.”
횟집 아줌마가 말했다.
“아, 우리 집에 있어요. 몇 마리나 가져올까? ”
옆집 아저씨는 얼른 뛰어가 산오징어를 갖고 오다가 해운 스님을 발견하고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아이고, 바다를 지켜주시는 스님 오셨네. 용왕님보다 더 높으신 분이시여!”
그 소리에 모두 깜짝 놀라 스님의 발 앞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해운 스님이 손을 양옆으로 벌리더니 주변 사람들에게 마정수기를 내려주고 바다를 향해 소리쳤다.
“착하고 착한 사람들이여, 여러분들의 선한 마음씨가 즈냐와 바즈라를 살렸구나. 하지만 저 아이들이 언제 죽을지 모르니 얼른 딴 데로 옮겨야겠다. 오, 옴… 평등과 자비로운 부처님이시여! 백만 다라니의 보배로움으로, 저 불쌍한 중생들에게 보안 법문을 내리시어 본래의 바다로 들어가는 서원을 이루어 주소서. 원성취진언 !!! 옴 아모카 사르바 다라 사다야 시베훔 (108번)”

그러자 바다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해운 스님이 진언을 108번 외우는 동안 범고래가 백사장 쪽으로 물을 뿜어 주었다. 어느새 튼튼한 유리 장벽이 세워지고 그 속에 바닷물이 가득하였다. 보리는 믿을 수 없는 눈앞의 광경에 가슴이 두근두근, 사지가 벌벌 떨렸다. 하지만 선재동자는 보리의 손을 꼭 잡아주며 괜찮다고 말했다. 집채만 한 아쿠아리움이 생기자, 물속에 따라 들어온 물고기와 오징어들이 헤엄치고 사람들은 커다란 수건으로 즈냐의 눈을 가려 들어 옮기고 바즈라와 동생은 뜰채로 건져 아쿠아리움으로 옮겼다. 즈냐가 입을 벌리지도 않았는데 물고기들이 약속이나 한 듯 차례로 그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즈냐는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바즈라도 엄마가 먹이를 먹고 기운 차리는 모습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이때 해운 스님이 말했다.
“자, 이것이 악연을 선연으로 바꾸는 모습이다. 그물에 잡힌 것은 악연이지만 새끼를 낳았으므로 사람들은 착한 마음이 생겨 이들을 돌봐주기로 한 거지. 그게 선연이야.
하지만 새끼들은 밥 먹는 법을 모르니 선재와 보리가 당분간은 먹이를 먹여줘야 해.”
보리가 아쿠아리움을 어떻게 들어가나 걱정하는 사이, 선재동자는 옆집 아저씨가 가져온 산오징어를 잘게 잘라 바즈라에게 먹여주고 있었다.
“아니, 저기를 어떻게 들어갔지?”
“일체유심조라 마음만 먹으면 들어갈 수가 있단다.”
해운 스님이 보리를 안아 아쿠아리움에 쓱 넣어주자 보리는 물속이지만 숨쉬기가 편해졌다. 바다 수영을 한 번도 안 해본 보리였으나 마음먹은 대로 몸이 움직여졌다.
‘이게 일체유심조라는 건가.’ 하지만 선재는 바즈라가 아무것도 먹지 않아 속이 상했다. 그 후 사흘 동안 새끼상어들은 먹이를 거부한 채, 움직이지도 않았다. 선재와 보리는 억지로 그들의 입을 벌려 오징어 조각을 넣어주었다. 바즈라가 며칠 사이 생긴 습관으로 자기도 모르게 받아먹게 되자 나머지 동생들도 본능적으로 먹기 시작하고 즈냐는 유리 벽에서 깊은 바다로 내려가려고 머리를 부딪쳐가며 사방을 빙빙 돌았다. 비쩍 말랐던 새끼들이 정신을 차릴 때 쯤, 해운 스님의 법력으로 이들은 유리 장벽이 걷힌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즈냐는 깊은 바다로 혼자 유유히 내려가서 심해를 확인한 뒤, 다시 올라와 새끼들을 데리고 갔다. 떠나가면서 바즈라와 즈냐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듯이 뒤돌아보며 사람들을 향해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눈을 껌벅거리더니 씩씩하게 헤엄쳐갔다. 사람들은 그 모습에 감동하고 훌쩍훌쩍 울었다. 비록 물고기지만 서로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선재와 보리가 크나큰 존경심으로 해운 스님께 엎드려 절을 하자 스님이 말했다.
“나는 부처님이 계신 데서 천 이 백 년 동안에 보안 법문을 받아 날마다 보배 광명인 다라니를 외운 덕분에 깊은 바다 가득한 보배 다라니의 이치를 깨달았다. 하지만 이 세상을 두루 넓게 보는 보안 법문을 알아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세상을 복되게 하는 자비를 베풀어 해탈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게 나의 소원이다. 선재 동자는 이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행동할 수 있는 선주 스님을 찾아가서 해탈의 보살도를 물어보거라.”
선재가 합장을 한 채, 인사를 하는 동안 보리는 갑자기 엄마와 동생이 사무치게 보고 싶어졌다.
“나, 집으로 돌아갈래. 엄마가 보고 싶어. 엄마! 엄마아…”  (다음 편 계속)
 

즈냐: 산스크리트어로 지혜로움을 뜻함. 노력하다는 뜻도 있음.
바즈라 :산스크리트어로 금강, 혹은 금강저라고도 함. 모든 악을 물리침.
범고래 : 바다에서 최고의 포식자로 알려져 있으며 자식 사랑이 남다른 고래로서
지능이 아주 높다. 몸에는 흰 반점이 있어 귀여워 보임.
난관 : 일을 헤쳐 나가기 어려울 지경.
역력 : 모습이 뚜렷하게 보임.
마정수기 : 이마를 만져주면서 부처님 법의 지혜와 능력을 부여해줌.
다라니 : 산스크리트어로 된 불교용어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외우는 진언이며 신비한
힘을 가짐.
보안법문 : 넓은 세상을 두루두루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법문.
장벽 : 밖을 가로막은 벽.
일체유심조 :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말.
심해 : 깊은 바다
보살도 : 보살들이 닦고 실천하는 수행의 길. 보살이라함은 보리 살타의 준말로
깨달은 사람, 혹은 지혜를 가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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