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본 육조단경 다시보기④

上座神秀思惟 諸人不呈心偈 緣我爲教授師 我若不
呈心偈 五祖如何得見我心中見解深淺 我將心偈上五
祖呈意 即善求法 覓祖不善 却同凡心 奪其聖位 若不
呈心 修不得法 良久思惟 甚難甚難 夜至三更 不令
人見 遂向南廊下中問壁上 題作呈心偈 欲求於法
若五祖見偈 言此偈語 若訪覓我 我宿業障重 不合得法
聖意難測 我心白息

 

신수 상좌는 생각했다. ‘모든 사람들은 내가 교수사인 연유로 심게(心偈:마음을 깨친 바의 게송)를 지어보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만일 심게를 보이지 않으면 오조께서 나의 마음을 어찌 보시어 내 심중의 견해가 깊고 얕음을 볼 수 있겠는가. 내가 장차 오조에게 심게를 올려 마음을 드러내면 법을 옳게 구하는 것이 되지만 조사 지위를 구한다면 옳지 않은 일이다. 사뭇 범부의 마음으로 성인의 지위를 빼앗는 것과 같다. 만일 마음 닦음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법을 얻지 못할 것이다. 잠시 침묵하고 생각해 봐도 어렵고 어렵도다. 밤 삼경에 이르면 사람의 눈을 피해 남쪽 회랑 밑 중간벽에 심게를 적어 법을 구해야겠다. 만약 오조께서 게를 보시면 이 게에 대해서 말씀하시리라. 만일 나를 불러 찾으시면 내가 숙업토록 업장이 무거워 성인의 뜻을 헤아리기 어려워 법을 얻음에 합당치 않음이니 나의 마음을 쉬어 밝혀나가겠다고 하리라.’

秀上座三更於南廊下中間壁上 秉經爛題作偈 人盡不知
偈曰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拂拭 莫使有塵埃.
神秀上座題此偈畢 歸房臥 並無人見

신수 상좌는 삼경에 남쪽 회랑에다 규범에 맞춰 미려하게 게송을 지어 써놓았으나 알아보는 이가 없었다.
게송 왈: 몸은 보리(깨달음)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의 대와 같으니. 수시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 티끌이 없게 하라.
신수 상좌는 게송을 마치고 자기의 방으로 돌아가서 누었다. 아무도 그를 본 이가 없었다.
몸을 깨달음의 나무로 비유한 것은 어린 묘목을 키워나가듯 자신의 몸을 잘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고 마음을 경대(鏡臺:화장대)에 비유한 것은 거울은 본래 맑고 깨끗하지만 수시로 쓸고 닦아 주지 않으면 사물을 밝게 비춰내지 못하는 것처럼 마음도 번뇌의 먼지를 수시로 점검하여 소멸시키지 못하면 바른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어찌 보면 수행자가 당연히 지녀야 할 기본 소양을 상기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신수의 게송은 그 당시 북종선의 점오점수(漸悟漸修)를 잘 나타내고 있다. 하지만 다음에 등장하게 되는 혜능의 게송은 상대적으로 돈오돈수(頓悟頓修)의 입장을 취하여 북종선과 대비되는 남종선이라는 파격적인 주장을 등장시키게 되지만 사실 혜능은 돈황본에서 만큼은 점오점수(漸悟漸修)와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초월하는 걸림 없는 대승의 가르침을 전하고 있다. 단지 후학들이 두 개념을 지나치게 현학적인 편협한 논쟁을 하다 보니 가르침의 낙처를 잃어버리고 서로 간의 개념적 차이에만 몰두하게 된 것이다. 이는 정작 깨달음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 논쟁거리만 남긴 꼴이 됐다. 하지만 본서의 돈황본 다시 보기의 시도를 통해 둘의 통합적 가르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五祖平旦 遂換盧供奉來 南廊下畫楞伽變 五祖忽見
此偈 請記 乃謂供奉曰 弘忍與供奉錢三十千 深勞
速來 不畫變相也 金剛經云 凡所有相 皆是虚妄 不如
流此偈 令迷人誦 依此修行 不墮三惡 依法修行 有大利益

오조는 새벽에 노공봉을 불러 남쪽회랑 밑에부터 능가변을 그리게 했다. 오조가 문득 그 게송을 보고 기록하고 있던 노공봉을 불러 말하길 “홍인이 노공봉에게 멀리서 온 노고로 돈 3만 전을 줄 것이니 변상도를 그리지 않아도 되네. 금강경에 말하길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다 했을 진대, 이 게송을 전하여 미혹한 사람으로 하여금 외우게 하는 것만 못할 것이다. 이것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며 이 법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이익이 클 것이다.” 하였다.

중국의 불교도 계와 교학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래서 많은 경서를 번역하고 논서들도 활발하게 탐독되었으며 간행도 활발히 이뤄졌다. 이를 바탕으로 밀교의 불교 의례도 발달하면서 격식과 형식이 점점 강화돼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데 오조가 변상도를 포기하는 일화에서 전통을 중시하던 격식불교가 차츰 붕괴될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벽화로 전하는 것은 그 자체로 공경의 대상이었던 부동의 자리를 일개 젊은 학승의 작은 게송에 밀려 사라지게 되는 상황이 도래했으니 말이다. 아울러 오조 홍인은 이런 과감한 혁신적인 시도의 근거를 금강경에 두고 있다. 그간의 지나치게 형식과 격식에만 매몰되어 비대해지면서 불법의 대의가 소실되던 실정에서 불교의 무아(無我), 공(空)사상을 다시 회복하는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과연 신수의 게송에는 오조의 이런 혁신적 사상을 밑받침해줄 만한 철학이 있느냐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홍인은 이에 대응하는 혜능의 게송에서 그 대안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격식을 생략하고 과감하게 자신의 의발을 전하는 파격을 감행했는데 그 사상 또한 금강경의 ‘무유정법(無有定法)’의 가르침을 따른 것이 될 것이다. 이 육조단경은 정확히 금강경의 가르침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조사선이 여래선 보다 우월하다는 주장의 배경에는 중국 조사들을 여래의 반열에 올려놓아 조사선을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확립하고자 했던 중국불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다.

大師遂喚門人盡來 焚香偈前 衆人見已 皆生敬心
汝等盡誦此偈者 方得見姓 於此修行 即不墮落 門人
盡誦 皆生敬心 唤言善哉
​​​​​​1)(褐)祖遂喚秀上座於堂內門 是汝作偈否 若是汝作
應得我法 秀上座言 罪過實是神秀作 不敢求祖
願和尙慈悲, 看弟子有少 智慧識大意否

대사가 문인들을 모두 불러 모아 게송 앞에 향을 사르게 했다. 스님들과 사람들이 모두 공경심을 일으켰다. “너희들 중 이 게송을 다 외우는 자는 바야흐로 견성할 것이며 이를 수행하게 되면 즉시 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문인들이 모두 암송하며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내니 불러 말하길 “착하구나!” 했다. 오조가 신수 상좌를 불러 자신의 방에 들게 하여 “네가 이 게송을 지었느냐? 네가 이렇게 지은 것은 나의 의법을 얻기 위함이겠지?” 신수 상좌가 말하기를 “과오가 많사오나 제가 지었습니다. 하지만 감히 조사(祖師)를 구함이 아닙니다. 바라옵건대 화상께서는 자비를 베푸시어 제자가 대의를 알아낸 지혜가 조금이나마 있는지 살펴주십시오.”

-한국불교신문 2022년 신춘문예 평론부문 입상자

【각주】
 1)돈황본 이본 참조하여 수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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