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명의 도반·제자가 전하는 영허녹원 스님 회고담

법정 스님 추모글, 서정주·정완영 시인 추모시도

 

허공에 가득한 깨달음 영허 녹원

유철주 지음

조계종출판사

32,000원

 

 

 

최근세의 직지사 가풍엔 고스란히 녹원(綠園) 스님(1928~2017)의 원력과 헌신이 깃들어 있다. 녹원 스님은 13세에 출가해서 열반에 들 때까지 77년간 황악산문을 떠나지 않았다. 1958년 교구본사로 승격된 직지사의 초대 주지로 취임한 이래 일곱 차례에 걸쳐 주지직을 연임했다. 1981년 조계종 중앙종회의장을 맡아 종단중흥의 기틀을 다지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었고, 1984년 조계종 총무원장에 취임한 뒤에는 통합의 지도력으로 종단의 시급한 난제들을 해결했다. 1985년부터 2002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동국대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경주, 포항, 분당, 일산에 동국대병원을 개원해 불자들에게 의료혜택을 제공하는 업적을 남겼다.

이 책은 녹원 스님과 반연(絆緣)이 깊은 출·재가자들의 회고담(懷古談)이다. 책에는 녹원 스님의 정화불사 참여, 김천 직지사 중창불사,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 종단 행정 참여, 조계종 총무원장 취임, 동국대 이사장 취임, 동국대 일산병원 건립불사 등에 함께 했던 출·재가자들의 생생한 증언이 담겨 있다.

1970년대 녹원 스님(가운데)이 관응 스님(오른쪽에서 두번 째) 등과 직지사 경내를 걷고 있는 모습.
1970년대 녹원 스님(가운데)이 관응 스님(오른쪽에서 두번 째) 등과 직지사 경내를 걷고 있는 모습.

 

녹원 스님의 평생 도반이자 녹원 스님의 행장을 직접 정리한 도원 스님(전 조계종 원로의장)은 게송으로 담담하게 당신의 심경을 드러냈다. 찬란했던 그림자 거두니 한 물건도 없어라 燦影息了無一物/ 허공을 비추듯 밝고 맑아 티끌 한 점 없네 瑩若暎虛絕點瑕/ 이에 함께 걸었던 70년 세월이 생각나 因憶同行七十年/ 지팡이 짚고 푸른 동산에서 떨어진 꽃을 밟아본다 携笻綠園踏殘花

상좌 법등 스님은 은사 스님으로부터 받은 세 가지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있다. 명분이 없는 행동은 일절 하지 말라는 것, 삼보정재를 허투루 쓰지 말라는 것, 공금과 개인 돈을 혼용해 쓰지 말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들은 결국 애종심 혹은 애사심으로 귀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큰스님의 애종심, 애사심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항상 불교와 종단을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포교와 교육을 그렇게 강조하셨지요.”

1984년 조계종 종정 성철 스님으로부터 총무원장 임명장을 받고 있는 녹원 스님(오른쪽).
1984년 조계종 종정 성철 스님으로부터 총무원장 임명장을 받고 있는 녹원 스님(오른쪽).

 

녹원 스님과 함께 동국대 중흥을 이끌었던 송석구 전 동국대 총장의 증언도 생생하다. “큰스님께서는 어떤 사적 부탁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학교 운영은 철저하게 저한테 맡기셨고 뒤에서 후원자로서 역할에 충실해 주셨습니다. 아마 녹원 큰스님께서 좀 더 이사장을 하셨으면 동국대는 몇 단계 더 상승한 최고의 대학이 됐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유발상좌로 오랫동안 녹원 스님을 모신 주호영 국회 정각회장은 스승의 가르침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다. “‘위공무사몽역한(爲公無私夢亦閑)’이라고 하잖아요. 공을 위하고 사사로움이 없으니 꿈조차 한가롭다는 말입니다. 큰스님 당신에게 ‘개인’은 없었습니다. 항상 불교와 대한민국만 있었어요. 인사드리러 갈 때마다 나눴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 역시 공(公)이 중심이었습니다. 공직에 있는 저는 지금도 큰스님의 이 당부를 생각합니다.”

이렇게 밀운(전 조계종 원로의장), 설정(전 조계종 총무원장), 암도(조계종 명예 원로의원) 등 녹원 스님과 함께한 수행자들 15명과 혜창(문경 김룡사 회주), 법보(서울 학도암 회주), 장명(직지사 주지) 등 녹원 스님의 길을 따르는 수행자들 12명의 이야기가 책에 담겨 있다. 책 말미에는 홍사성 〈불교평론〉 편집위원,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월하·진제 스님, 《무소유》의 법정 스님, 서정주·정완영·이근배 시조시인 등의 추모글과 추모시도 들어 있다.

9월 11일 열린 책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주호영 국회의원, 법등 스님, 장명 스님, 묘장 스님(왼쪽부터)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9월 11일 열린 책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주호영 국회의원, 법등 스님, 장명 스님, 묘장 스님(왼쪽부터)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책을 기획한 녹원 스님의 손상좌 묘장 스님(조계종 사회복지재단 대표이사)은 “손상좌들의 뜻을 모아 만들어낸 이 책을 통해 수행자이자 교육자였고 불자들에게는 더없이 자비로운 스승이었던 노스님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발간 취지를 전했다.

조계종 종정 성파 스님은 책 앞에 실린 추천법어를 통해 “이 회고담의 출간을 계기로 물길에 맞춰 노를 저으셨고, 물때에 맞춰 닻을 내리셨던 대종사의 선교방편(善巧方便)이 후대에 전해지길 바란다”면서 “또한, 이 회고담을 읽고서 눈 밝은 후학들이 대종사께서 펼쳐 보이신 어초문월(語超文越)의 예봉(銳鋒)을 거울삼아 건곤(乾坤)을 일축(一蹴)으로 무너뜨리는 기량을 보여 모든 중생에게 법익(法益)이 되고 귀감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설했다.

-최승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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