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범 북한불교연구소 소장.
이지범 북한불교연구소 소장.

 

우리 사회에서 영웅에 대한 비판은 일종의 넘사벽이다.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대표적 예이다. 또 하나는 일제 강점으로부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이다.

최근 사회적 통념을 단숨에 뛰어넘은 사건이 발생했다. 영웅에 대해 수준이 낮은 이념의 잣대까지 들이댔다. 현 정권에서 최근 독립군의 홍범도 장군이 레닌 공산당 가입을 문제 삼아 우리 역사와 기억 속에서 지우려 하고 있다.

1920년 6월 중국 만주 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그해 10월 백야 김좌진 장군과 연합작전으로 청산리대첩을 이끈 대한독립군 홍범도 장군의 흉상 철거가 논란의 발단이다. 2021년 8월, 서거 78년만에 ‘장군의 귀환’으로 명명된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안 행사가 열렸다. 이때 호위 임무를 맡은 대한민국공군 전투기 6대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홍범도 장군님의 귀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공군이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필승!”이라고 예우했다.

지금의 정부에서는 육군사관학교 교정에 세워진 홍범도 장군 흉상을 단순 철거가 아닌 아예 지우려 하고 있다. 육사 내에서 흉상 철거는 그 시작일 뿐이다. 현 정부가 내세우는 공산당 가입설을 문제화하는 것은 일종의 미끼이다. 이미 해군 잠수함인 홍범도함의 이름도 바꾸겠다고 하고, 홍범도 장군에게 수여된 건국훈장도 취소하는 방안까지 검토하는 실정이다.

그 이유에는 현 정권의 검은 복선이 깔려 있다. 지난 정부 지우기도 아니고, 홍범도 지우기도 아니다. 현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게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더욱이 지난 독립운동의 역사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관과 양립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은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문재인 정부가 국군의 뿌리를 독립군과 광복군에 있다고 본 반면에, 현재의 정권은 미군정 국방경비대를 국군의 시작으로 보는 결정적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독립군은 좌파・우파와 관계없이 우리나라를 지키고자 하는 모든 국민들이 참여했다. 그런데도 현 정권에서는 “국군은 한미동맹을 지키고, 반공 투쟁을 하기 위해 존재해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렇게 해야 친일 기조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밑바탕에는 극우 세력들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현 정권에서 나타나고 있는 미・일 사대주의는 누군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면 안심할 수 없는 사대주의 근성을 띤 보수 기득권의 뿌리 깊은 폐해이다. 이들의 사대주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그렇게 생겨 먹었다는 꼴이다.

지난 역대 정부에서도 독립군과 광복군을 이념의 잣대로 본 경우는 없다. 현 정권이 홍범도, 김좌진 장군 등의 독립운동 역사를 인정하는 순간. 친일에 따른 아픈 역사와 일제의 엄청난 만행이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현재, 대통령까지 애써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역사를 극구 부정하는 꼴이 그 핵심이다. 단순히 대통령이 일본을 좋아하기에 일본에 불리한 역사는 모두 지우고 있다. 그래서 독립운동의 역사를 부정하고, 뛰어난 사격술로 일본 군대를 소탕해 ‘날으는 장군 홍범도’라는 별명을 얻은 홍범도 장군부터 하나씩 제거하고 있다.

현 정권에서는 문재인 정부를 지적하거나 탓할 때마다 잘못된 이념에서 비롯된 것이라 규정해왔다. 이념이라는 용어를 현 정권이 가까이해서는 안 될 부정적인 단어로 인식되도록 만들어 왔다. 역설적으로 현 대통령은 여당 연찬회에서조차 지난 정부의 이념은 좋지 못한 것이고, 본인의 이념은 좋다는 모순적이고 무책임한 말을 했다. 작금의 국정에 대한 실용이나 민생이 아니라 이념에 맞서야 한다는 말을 대통령 스스로 대놓고 말한 것은 듣는 사람의 귀를 의심케 만들었다. 그간 본인에게 반대하는 이들은 모두 악으로 규정하는 도발성 멘트를 이어왔다. 국민들을 위해 일해야 하는 공무원이 국민이 싫어하는 일에만 몰두하고, 심지어 이걸 싫다고 말하는 국민들을 미개인 취급할 정도다.

이런 사람과 그 위정자들은 역사적으로 좋게 기록되기 힘들다. 지금까지 본인이 내뱉은 말들은 거의 다 자신과 자기가 하고 있는 행태가 고스란히 거울에 비치는 모양새다. 아마도 역대 최악의 대통령으로, 이미 루비콘의 강을 넘은 것 같아서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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